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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 홈피가 복구 되었네요~

    • 관리자 (gtbc)
    • 2020-09-17
    • hit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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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5.143.145.195

    활용의 여부를 떠나 열린 것과 닫힌 것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는군요. ㅋ

    요 몇 주는 개인적인 일로 너무 바빴습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병원에서 6개월에 한 번씩 하는 검사 중 CT를 찍었는데,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여서인지 쉬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점심 때가 지나 사무실에 도착했으나 무언가 할 수가 없어 6시가 되기 전 나왔네요. 모두 체력관리 잘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체력이 부실하면 영성조차 부실해지는 것 같군요. ㅎㅎ

    좋은 저녁시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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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틀을 비웠습니다.

    • 관리자 (gtbc)
    • 2020-09-03
    • hit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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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요. 
     
    집안 어르신의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먼길 떠나며 이런 저런 걱정이 많았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없으시며 하루 이틀 정도가 고비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요즘 코로나로 인해 면회도 거의 불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자동차도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갈 수는 있을런지 고민되니 
    내려가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면서 잠을 뒤척이다가 잠시 기도를 했습니다.
     
    "가야겠습니다. 하나님.
    기왕 내려가는 거 주께서 오가는 길 지켜주시고
    어르신 면회도 가능하게 해주시고
    뵐 때 의식이 회복된 상태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생떼가 어디 있겠습니까만 해야 할 일이니 가는 것이고 
    만나야 할 분이니 여건 만들어주시기를 기도해야겠고 
    기왕 만나는 것 의식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어렵게 도착한 창원 파티마 병원에서..
    코로나로 가족들도 1명씩만 면회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아내를 알아보실 수 있을런지도 모르니
    저만이라도 들어가겠다고 했더니 
    친절한 간호사가
    두 사람이 같이 들어갈 수 있게 배려해 주시더군요.
     
    감사한 일입니다.
     
    중환자실에 들어서니 모두 누워서 의식이 없는 분만 계시는데
    일으켜진 침대에 기대어 앉아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분이..
    제가 만나러 간 바로 그 어르신입니다. 세상에~
     
    말씀은 하시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아 
    좀 답답하기는 했지만 손으로 글씨를 써가면서
    대화가 가능할 정도여서 너무나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면회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고 간호사가 두 번이나 이야기 했으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를 두 번이나 하고서
    대화를 마친 뒤 나오며 간호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사소한 기도에도 외면치 않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제부터 또 해야 할 일들이 밀려있으니..
    부지런히 달려갈 길을 달려야지요.
    모두의 기도로 잘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먼길 다녀와도 차는 끄떡 없었습니다.
    알고보니 제 차가 아직 힘도 대단한 차였습니다. ^^
     
    올라오는 길 함안의 한 목사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함안의 일영교회근처 톨게이트를 지나쳤다고 합니다.
    담번엔 꼭 들러서 뵙기로 하고 그냥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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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가 가져야 할 자세

    • 관리자 (gtbc)
    • 2020-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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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더믹의 한복판에서 광화문 집회는 분명히 경솔하고 무모한 시도였습니다. 광화문 집회이후 여러 음모론들이 나오지만 신뢰할만한 내용이나 근거도 없는 부실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귀가 얇고 집단이기에 빠지는 사람들은 그 어떤 진실의 소리에도 귀가 닫히게 됩니다. 더구나 신앙적 가치를 빌린 주장이라면 더욱 분별력을 갖기 어려워집니다.

    교회의 리더를 자처하는 이들이 사회적 가치와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무지한 저들을 따르는 성도들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신앙적 가치를 우선 순위에 두는 성도들이 자신의 신앙적 리더라 여기는 목회자의 주장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의 가치는 우리가 사는 정치나 사회와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적 신념이 힘을 가져 정치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신앙인이 자기역할이 부패한 정치와 싸우는 것이고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만들어 낸 이념이 마르크스 레닌주의였다는 것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 아니었나요?

    물론 그들이 빌려온 이념의 배경도 성경적 가치라 믿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도리어 지도자의 부정에 대해 강력한 비난의 화살을 쏘아댄 세례요한이 있었으나 그 역시 집단으로 저항하겠다는 의식을 갖지도 않았거니와 강요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역시 그의 그런 성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칭찬하거나 권고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세상에 태어난 남자 중 가장 큰 자일지 모르나 주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

    우리가 역사로 배우는 것은 중세로부터 교회가 힘을 가지면 일으키는 빈번한 불행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왜 그런 행동을 신앙적 가치라고 여길까요? 힘을 가졌는데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의식이 아닐까요?

    겸손하지 못한 공동체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고통하는 때에 교회는 이렇게 나서야 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나와 같은 신앙인이라는 것이 심히 부끄러워집니다. 그리고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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