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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용의 여부를 떠나 열린 것과 닫힌 것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는군요. ㅋ
요 몇 주는 개인적인 일로 너무 바빴습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병원에서 6개월에 한 번씩 하는 검사 중 CT를 찍었는데,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여서인지 쉬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점심 때가 지나 사무실에 도착했으나 무언가 할 수가 없어 6시가 되기 전 나왔네요. 모두 체력관리 잘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체력이 부실하면 영성조차 부실해지는 것 같군요. ㅎㅎ
좋은 저녁시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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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더믹의 한복판에서 광화문 집회는 분명히 경솔하고 무모한 시도였습니다. 광화문 집회이후 여러 음모론들이 나오지만 신뢰할만한 내용이나 근거도 없는 부실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귀가 얇고 집단이기에 빠지는 사람들은 그 어떤 진실의 소리에도 귀가 닫히게 됩니다. 더구나 신앙적 가치를 빌린 주장이라면 더욱 분별력을 갖기 어려워집니다.
교회의 리더를 자처하는 이들이 사회적 가치와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무지한 저들을 따르는 성도들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신앙적 가치를 우선 순위에 두는 성도들이 자신의 신앙적 리더라 여기는 목회자의 주장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의 가치는 우리가 사는 정치나 사회와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적 신념이 힘을 가져 정치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신앙인이 자기역할이 부패한 정치와 싸우는 것이고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만들어 낸 이념이 마르크스 레닌주의였다는 것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 아니었나요?
물론 그들이 빌려온 이념의 배경도 성경적 가치라 믿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도리어 지도자의 부정에 대해 강력한 비난의 화살을 쏘아댄 세례요한이 있었으나 그 역시 집단으로 저항하겠다는 의식을 갖지도 않았거니와 강요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역시 그의 그런 성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칭찬하거나 권고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세상에 태어난 남자 중 가장 큰 자일지 모르나 주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
우리가 역사로 배우는 것은 중세로부터 교회가 힘을 가지면 일으키는 빈번한 불행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왜 그런 행동을 신앙적 가치라고 여길까요? 힘을 가졌는데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의식이 아닐까요?
겸손하지 못한 공동체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고통하는 때에 교회는 이렇게 나서야 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나와 같은 신앙인이라는 것이 심히 부끄러워집니다. 그리고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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