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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 |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성경? | 2024-10-29 | hit46146 | |
| 공지 | 성경학습의 기회가 열린다 | 2022-08-25 | hit51304 | |
| 공지 | 서울 삼실 전경과 위치입니다. | 2021-06-13 | hit55579 | |
| 공지 | 목회자 구문강의 알림 | 2020-11-17 | hit54507 |
감사합니다.
교육원으로 출발한 이후 몇 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그 사이 교육원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교육원의 교육 프로그램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비록 일주일에
한두 번씩 참석하는 일일지라도
꾸준히 학습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함께 하는 모든 분들을 응원하며 축복합니다.
이제 올해부터는 정기적인 오프라인 모임도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학습을 진행하면서 다져진 실력을
오프라인과 연계하여
더욱 강력해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원의 주력강좌
교육원이 발족하고 난 뒤
에베소서를 비롯하여 갈라디아서, 로마서..
그리고 야고보서와 빌립보서, 골로새서 등의 서신서를 배웠고
또 사도행전과 기타 여러 권의 학습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미 학습에 첨여하고 있는 분들의 고백처럼
다른 곳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닙니다.
깊이를 더해가면서 얻는 만족감과 기대감은 더 커져만 갑니다.
기본적으로는 서신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으나
앞으로 점점 더 많은 학습과 강좌가 진행될 것입니다.
최근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그리고 에베소서입니다.
학습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고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 목표입니다.
2022년은 일취월장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또 새로운 학습생들이 더 많아질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망설이는 분들은 더 늦기 전에 참여하는 것이
아마 후회없는 선택이 되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로마서 강의에 참여하는 분들이
많이 했던 이야기는 늘 비슷하다.
“그동안 로마서 수없이 보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기억에 남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로마서가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고, 정말 중요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많은 분들로부터 강의도 듣고 책도 사 보았는데
이렇게 모른다는 것도 기적이라는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왜 모를까요?
책을 보는 기본이 없이 분석만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편지를 편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분석하고 적용하는 경전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다고 경전으로 충분히 이해가 되었는가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문제라 할까요?
로마서 중요하다고?
왜 중요한지 알고서 그렇게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니..
정말 중요한지 아닌지 스스로 확인이라도 해야하는 것 아닐까?
로마서 강좌에 참여하는 분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주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것을 교회에서는 안가르쳐줄까요?”
그건 내게 할 질문은 아닌 것 같다는.. ㅎㅎ
함께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늘 행복입니다.
3월에 시작할 새로운 로마서 학기에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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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중헌디?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
성도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성도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 역시 만만치 않다.
질문을 좀더 구체화 시켜 보자.
교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무엇이라 생각하게 되는지 생각해 보라.
교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십중팔구 '예배'라는 대답을 얻게 된다.
예배가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성도들의 생각속에 예배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고 믿는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예배만 드리면 한 주의 면죄부를 얻는 것과 같다.
예배가 없이는 신앙이 자라지 않을 것이며
예배가 없이는 하나님을 아는 방법이 없을 것이며
예배가 없이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없으며
예배가 없이는 교회라는 간판이 어울리지 않는다..
예배는 구약의 제사와 비견된다. 물론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제사적 개념을 배제할 수 없다.
성도라면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배를 통해 자신의 신앙적 성숙을 이룰 수 있다.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곡성'이라는 영화에서 딸 효진이 아빠 중구에게
절규하면서 딸의 속도 모르고
이것 저것 묻기만 하는 아빠에게 외친 말이다.
뭣이 중헌디?
이것 저것 하기만 하면 되는 상태
자기는 없고 우리만 존재하는 상태
집단적 행위에 스스로를 가두고
그 안에서 익숙한 것에 자기를 맡기는 상태..
신앙은 공동체이면서 자기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
한 개인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세워져 가는
더욱 돈독해지고 아름다워져 가는 관계..
공동체로서의 집단에 안주하는 자가 아니라
거룩한 개체로서의 성도로 세워져 가는 역할을
교회가 해주지 못한다면 교회는 이미 기능상실이다.
언제부터인지 교회는
공동체로서의 나만 존재하게 한다.
그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발견하고
그 속에서 행동도 제어되고
그 속에서 역할도 주어질 뿐이다.
그리고 거기서 자기가 만족을 얻으면 그만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이 이것이라고?
집단에 순응하고 따라가는 무기력한 존재
그러다 이탈하면 또 다른 집단에 소속되어
자기가 있던 집단과 전투를 하는 집단군..
여기도 예배가 있고 저기도 예배가 있으니
어떤 예배가 더 옳은 것인가를 따져야 하는걸까?
이렇게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뭣이 중헌디?"
인문학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문학에 접근하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된다.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지혜로운 판단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신학을 알면 전사로 만든다.
나와 다른 신학과는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의지는 신학적 주장 속에 존재한다.
성경은 그것을 뒷받침 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사이비들도 그렇게 한다.
자기들이 만들고 세운 터무니 없는 구조속에
성도들을 가두고 그것이 진리이며 진실이라고 강요한다.
강요라고 하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을 차단한 채 가르치기 때문이다.
성경 66권은 우리에게 수많은 것들을 보여준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열정도 있고,
실망도 있고, 기쁨이 있는가 하면 눈물도 있다.
그 마음에 접근하는데 특정한 신학이 필요한 것일까?
물론 신학의 중요한 역할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으나
성도들에게 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경이라도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야하지 않을까?
한 분의 목회자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일까요?
본래 성경은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보도록 만들어진 책이다.
그리고 거룩한 인격체로 세워지게 만드는 책이다.
문제는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 주는 것.
물론 그것을 읽고 느낀
자신의 생각을 서로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공동체로서의 모임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일방적이다.
한 쪽은 말하는 쪽이고.
한 쪽은 듣기만 해야 하는 쪽이다.
그것이 잠시 그런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그래야 한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그냥 설렁설렁 따라가면 된다.
그렇게 되면 구원이 자동적으로 주어질테니까..
"뭣이 중헌디?"라고 묻는 놈들은 퇴출 대상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이런 교회..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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