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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평속의 교회
예전에는 교회를 비방하고 조롱하는 이들이 교회 밖 사람들이었으나 요즘은 교회의 행태를 책망하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더 많이 들려오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에 대한 신뢰보다는 교회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늘어가고 그 부정적 사고의 중심에는 성도들보다 목회자들의 존재와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언젠가부터 시작된 목회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매스컴의 보도를 통해 흘러나오는 성추행범 목회자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대형교회 목회자의 세습이나 논문표절 등의 파렴치 논란이 있어왔는데, 시간이 지나도 비난의 대상이 된 그들이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 자리에서 목회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성도들의 자괴감이 더 컸다.
사이비의 몸집은 점점 비대해지는 상황이 이어졌고 그 사이비의 몸집이 커질 수 있게 한 요인이 성도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교회에서 이탈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은 남은 이들을 더욱 아프게 한다. 제대로 된 성경교육 프로그램을 갖지 못한 대부분의 교회는 교회를 대적하는 그들과 싸울 능력이 없고,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사이비 집단은 더욱 적극적으로 교회내부로 파고 들어간다. 악순환의 연속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런 피해를 입고서도 성도교육에 관심이 없는 교회들 때문이다.
예전에는 사이비 집단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며 포교를 하였으나 이젠 대놓고 자신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말하며 기존교회를 부패하고 무능력한 집단으로 선언한다. 자신감이 오른 사이비 집단은 심지어 신학교에까지 진출하여 성경논쟁을 하자거나 학교 앞에서 '너희 하나님은 죽었다'며 상복을 입고 시위를 하기도 하고, 사이비 집단의 문제와 실체에 대한 정체를 공개하며 방송한 기독교 방송국에는 떼로 몰려가 도로를 메우며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교회를 대신하여 싸우는 방송국이 초토화 될 때 대부분의 교회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불똥이 자기들에게 튈지 모른다는 생각이었을지 모른다.
이런 와중에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은 가뜩이나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던 교회에 치명적 독이 되고 모임을 갖지 못하는 작은 교회들은 결국 문을 닫아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이제 교회에 젊은 세대는 거의 보이지 않는 시대가 되었고 학교에서 한 학급에 독실한 신앙인이 한 명도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교회의 미래는 희망이 아니라 더 깊은 절망의 그림자만 보일 뿐이다.
황당한 교회들의 대책
교회들은 위기의 상황들을 맞을 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조치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사회가 어떤 사고와 생각을 가졌는지 도무지 모르는 이들이 교계의 어른들이랍시고 위에 앉아서 내놓는 대책들은 같은 그리스도인들조차 경악하게 만드는 조치들로 채워져 가고 세상 사람들로부터는 이제 거의 정신병자 취급을 당해야 하는 일들을 벌이기까지 했다. 죄없는 성도들은 단지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부끄러워져야 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사이비를 대처하는 방식은 대표적인 조치처럼 인식된 "***출입금지"라는 포스터를 붙여놓는 것이 가장 보편적 대책이고, 코로나 대응에 대해선 정부의 시책을 비난하고 부정하는 일들에 앞장서며 소통이 되지 않는 교회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목회자 은퇴연한을 70세에서 75세로 전환한다는 소식들은 또 무엇이었을까? 교회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사이비들에게 신나는 먹잇감을 던져주고 성도들에겐 주의하라고만 할 뿐 이미 마음이 넘어간 사람들에게는 "떠날 놈은 떠나라"고 하는 듯한 분위기만 이어진다. 흔한 말로 "너 없어도 교회는 돌아간다"는 말일까?
정신차리는 것도 시기가 있다.
이제 교회가 정신을 차린다 해도 대책이 쉽지 않다. 고작 몇 명 남은 성도들로 위안 삼으며 앞으로의 좋은 날을 기다린다면 그건 한낮 개꿈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지켜주실 것이라고 말하기 전에 내가 하나님의 지켜주실만한 교회인지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건물과 조직을 지켜주시는 분이라 믿는다면 어리석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런 교회가 아니다.
언제가 되어야 정신을 차릴지 알 수는 없지만 이게 그 시기 마저도 늦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는다. 아직까지 옛 어른들의 기도와 헌신의 결과를 먹고 살지만 이제 앞으로의 교회는 그렇게 지켜질 교회가 아니다. 올바른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최전선을 지켜야 할 제대로 된 훈련자들이 양산되어야 한다. 솔직히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이미 최전선에 설 준비가 되지 않았다.
GTBC 성경교육원은 단지 교회를 지킬 수비대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적을 부수고 파괴할 능력자를 양산하는 교회 만들기를 꿈꾸며 달린다.
치명적 가치
곰팡이는 보기에도 좀 그렇지만 치명적 독성과 함께 집안의 곰팡이는 아이들의 건강에도 좋지 않다. 그러나 곰팡이에서 추출해 낸 페니실린은 인류의 건강을 지켜준 효자라 할 수 있다. 포도상구균의 번식을 억제하는 효과를 발견한 플레밍에 의해 추출해 낸 페니실린이 가져온 효과는 인류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기게 된다.
핵 역시 비슷한 의미로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한 물질이기는 해도 또 핵으로 인해 얻는 여러 혜택들은 핵의 사용유혹을 떨쳐내기 어렵게 한다. 의료기기로서의 핵물질 사용은 물론이거니와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핵발전소의 문제도 양면성을 가진 핵의 모습을 우리가 익히 알기 때문이다. 위험하지만 필요한 것들이라는 말이 어색하지만 우리 주변엔 적지 않게 존재한다.
신앙의 가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신앙은 삶의 그 어떤 것들 보다 중요한 가치이지만 어떤 이들에게 신앙적 가치가 치명적 독이 되는 것은 신앙의 왜곡과 굴절로 인한 것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분명하지 않은 이들에게 올바른 신앙적 가치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말하는 신앙의 확장엔 좀더 신중한 자세를 견지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이탈된 사이비의 창궐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가르침 없는 신앙의 위험
올바른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체 성도를 만들고 직분자를 만드는 것은 더 큰 위험을 양산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성급히 양산해낸 수많은 신학생과 직분자들이 교계에 얼마나 크고 심각한 파탄을 몰고왔는지 자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르치지 않는 교회에 대해 말하니 많은 분들이 우리교회는 성경공부 시간이 있다고 말한다.
성경공부.. 어쩔까..
하지말라고 할 수도 없고 하라고 할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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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자 신문에서 전 인디텍스 CEO였던 파블로 이슬라는 이런 말을 했다고 나왔다. 한 발짝 앞서야 혁신이다. 타이틀은 이렇게 적혀 있다.
실패, 두려워말고
변화, 피하지말고
현재, 멈추지말라
비지니스를 하는 이들도 끊임없이 생존을 위한 싸움을 이어가며 자기를 변화시켜 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지며 사라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대한민국에 변화가 불가능한 세 곳이 있는데, 그 첫째는 공무원, 두 번째는 군대, 세 번째는 신학교라는 말이다. 최근엔 이제 남은 곳은 하나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자조섞인 푸념처럼 하나님도 바꿀 수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신학교가 바뀌지 않는다면 교회도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되는데 엄밀히 교회가 달라지지 않는데 신학교가 달라질 일이 없다.
앞에 파블로가 한 말을 교회에 적용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실패, 시작되었고
변화, 불가능하고
현재, 움직이지 않는다
성도들이 언제까지 모르는 척 할 것이라 믿는 것일까..
미래의 어느날 아래의 허물어진 유적처럼 되지 않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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