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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너무 아파요..

    • gtbc (gtbckim)
    • 2022-10-07
    • hit1386

    자학? 자폭?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너무 아프게 때리지 마세요.' 최근 올리는 글들을 읽으며 불편하고 마음이 아픈 것이다. 남들이 보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토록 매섭게 회초리를 드는가 묻는 것이다. 여기의 남들은 사이비를 비롯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차라리 그들에게 우리 자신을 향한 채찍을 우리 스스로 드는 것이 더 나은 선택 아닐까? 우리 스스로의 문제를 지적하고 고쳐나가야 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 자학이고 자폭일까?

    개혁, 혁신

    남들이 우리의 부끄러움을 말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스스로 먼저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부분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지적할 뿐만 아니라 돌이켜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 당장 받는 비난보다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다른 어떤 교회를 향해 드는 채찍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내게 향한 채찍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므로 이렇게 말하는 나는 괜찮은데, 그렇지 못한 너희는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 고칠 것을 고치지 못하면 훗날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될 것이다. 개혁과 혁신은 뼈를 깍는 수고가 있어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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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 교회생활과 신앙생활 1

    • gtbc (gtbckim)
    • 2022-10-06
    • hit1764

    교회생활과 신앙생활 1

    이 두 가지가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본래 교회생활이 신앙생활이고 신앙생활이 교회생활이 아니면 무엇인가 말이다. 그러나 굳이 이것을 분리해서 말해야 할 이유들이 있다는 것은 슬픈일이다. 교회생활은 무엇을 말하고 신앙생활은 무엇을 말할까?

    교회생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모임을 말한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지는 몰라도 교회는 십자가가 있는 건물이 되었고, 건물 안의 공동체 개념으로 발전되어 왔다. 교회에는 목회자와 성도라는 구분이 지어지고 목회자와 성도의 계급적 요소는 섬김을 받는 사람과 섬기는 사람들로 구분된다. 목회자는 자신을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실질적 구도 자체는 그렇지 않다. 성도는 죽을 때까지 목회자에게 배워야 하고 지시(?)에 따라야 하는 몸종과 같은 존재여야 한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불편하게 여겨진다면 그렇게 생각되는 자신도 그런 사고에서 예외자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목회자 그룹 안에도 담임목사와 여타 부목사나 교육목사 등의 구분으로 조직이 구성되어 있다. 세상의 어떤 단체든 조직이 없는 단체는 오래 존속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교회의 조직도 발전과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일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이 구성되는 순간부터 조직은 스스로 유기체적 요소가 되어 자신을 보호하도록 발전해 간다. 마치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AI기술이 개발되고 모든 것이 자동화 되는 것을 목표로 달려가지만 인공지능의 편리함이 어느날 인류를 파괴할 날이 올 수 있다는 경고가 뜨는 것처럼, 거대한 조직으로 자란 교회조직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망가지지 않도록 단단한 조직을 구성한다. 조직의 생존을 위해 구성원은 연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교회는 더 큰 집단조직의 보호를 받는다. 교단이라는 조직이다. 교회가 집단조직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목회자만 보호될 뿐이다. 엄밀히 성도는 교회와 교단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구성원이지 보호대상이라 할 수 없다. 목회자의 눈에 들지 못한 성도가 교회의 중직을 맡기 어렵고 교단의 조직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늘 목회자들을 위해 희생해야 하고, 섬겨야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의 대상이 된다는 말같지 않은 논리에 오랜세월 속박되어 있었다. 물론 최근에 들어 이젠 그런 논리나 설교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목회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런 달콤한 권리를 누리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교회 조직은 현재의 목회자들이 만들어 낸 조직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만들어 둔 것일까? 글쎄.. 속성을 한 번 살펴보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교회조직은 오랜 세월 갈고 닦으며 만들어진 조직이다. 처음엔 복음을 전하는 자와 복음을 신뢰하는 자의 만남으로 구성된 것이 교회였다. 온전히 신앙적인 목적과 의지로 구성된 조직이다. 그러나 이것이 급격한 팽창을 이루면서 교회는 본래의 기능에 충실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는 사도행전에 복음을 전하던 베드로가 급격하게 팽창하는 규모로 인해 교회가 행하던 구제사역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집사들을 세운 것이 조직의 시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일곱 명의 집사들은 구제와 봉사를 위해 선발되었지만 그 일을 성실히 수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역할을 마친 뒤 그들도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고, 그 중에 한 사람이 최초의 순교자가 되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역할이다. 비대한 조직의 운영을 위한 희생양이 아니라 복음을 가르치고 전하는 전도자로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전도자를 세우려 하지 않는다. 그냥 주변 사람 몇 명 교회로 데리고 와서 구성원으로 만들면 자신의 역할을 다 한 것이다. 물론 많이 데리고 오는 사람이 최고의 전도자라고 말하지만, 전도된 사람들을 위한 신앙적 관리는 교회가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다. 전도자의 역할은 그저 출산이다. 강아지 사육장에서 평생 출산만 하다가 기능을 다하면 버려지는 강아지와 다를 바 없는..

    그 외에도 조직은 자체의 존속을 위해 성도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재정이다. 재정을 창출할 수 있는 구성원이 가장 필요한 것이 사실이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수단과 방법을 창출해야 한다. 조직은 이런 일에 정말 비상하다. 교회내 신분조직을 만들어 모든 성도들이 교회가 정한 교회생활의 규칙을 잘 따르고 헌신할 때 일정한 시간이 되면 조직내에서의 승급을 허락한다. 아주 그럴듯한 명분과 행사를 통해 한껏 자부심을 갖도록 만들지만 알고보면 역시 그저 조직을 위해 더 큰 희생이 필요한 성도일 뿐이다. 죽을 때까지 충성해도 성도일 뿐이다. 성도들이 꿈꾸는 하늘나라에서는 안그럴까? 상황이 역전될 수 있을까? 천만에.. 아닐까? ㅎ

    =============

    사실 매우 부정적인 논리로 전개를 하고 있지만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가장 중요한 최전선의 현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를 오합지졸로 만들어 가는 교회를 바라보면 부글거리는 속을 참기 어렵다. 이런 속성을 알지 못하고 속절없이 당하는 성도들을 보는 것은 참담하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성도들을 빼가는 사이비들은 더욱 사악한 자들이지만 오죽하면 성도들이 그런 자들의 꼬임에 넘어가고 있을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것이 좋겠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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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 건강한 교회

    • gtbc (gtbckim)
    • 2022-10-05
    • hit1850

    건강한 교회는 어디에?

    모두가 건강한 교회를 꿈꾸지만 건강한 교회를 찾기는 바닷가 모래에 떨어진 좁쌀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간혹 지인들로부터 출석할 교회를 추천해 달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얼른 생각 나는 교회가 없다. 교회는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찾는 것이 좋지만 모든 교회가 동일한 조건을 갖춘 것이 아니니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아진다. 교회가 갖추어야 할 그 조건이란 무엇보다 시설이 아닌 목회자를 의미한다. 훈련되지 않은 목회자 밑에서 오래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가까운 곳을 찾으세요 말하면서도 한쪽 마음이 무겁게 된다. 도대체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 할 수 있을까?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대부분의 교회는 성도들에게 전도를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전도를 하지 않는다면 여러 이유 중에서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은 요인이 가장 크다. 물론 오랜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은 주변의 지인이 대부분 그리스도인일 가능성이 크다. 더 이상 전도할 사람이 없어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 자신의 삶에 손해를 감수하고 싶지 않은 요인도 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ㅎㅎ

    아무튼 교회는 신자든 비신자든 처음 출석하려 할 때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모든 교회는 늘 말한다. '우리는 언제든 열려 있다'고 말하지만 열려 있는 것과 진입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ㅋ 교회를 다니지 않은 사람은 건강한 교회가 무엇이고 병든 교회는 또 무엇인지 헷갈린다. '교회는 다 똑같은 것 아니었나?'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건강한 교회와 병든 교회는 분명히 존재하고 안타깝지만 건강한 교회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몇몇 지인들에게 물어 보았다.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고 생각하시나요? 여기에 대한 답변은 대략 이랬다. 다섯 가지만 추리면..

    1. 헌금을 강요하지 않는 교회(의외로 많은 답변이었다)
    2. 새로운 성도들을 편안하게 하는 교회(조금 애매하다)
    3. 등록을 강요하지 않는 교회
    4. 성경을 잘 가르치는 교회(어떻게?)
    5. 설교가 짧은 교회..ㅎ

     

    건강한 교회를 찾기 위해

    교회의 건전성을 확인하기 전 교회 등록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두 가지만 언급하면 교회의 모임이 예배 중심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한 번 패스를 고려해봐야 할 교회로 남겨둔다. 예배와 설교로는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두 번째는 헌금의 사용처가 분명치 않은 교회도 훗날 후회하게 될 교회가 될 수 있으나 이를 공개하는 교회가 흔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은 재정적 구도에 매우 예민해진다. 재정적 투명성이 떨어지는 교회가 건강해지기는 어렵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부분에 매우 투명한 교회도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성도들이 설교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성도일지라도 성경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요즘 기독교계 방송에서 만들어 내는 성경공부 타임 중 꽤 괜찮은 프로그램도 있고, 기독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좋은 책자도 많다. 가장 경계해야 할 교회는 목회자와 평신도로 구분해서 목회자가 특권층처럼 군림하거나 성도들이 목회자를 떠받드는 교회는 첫 순위로 배척하는 것이 훗날 자신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

    안타깝지만 교회라고 모두 같은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 오늘 우리의 교회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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