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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후 다섯 째 날
고난의 금요일
한 바탕 소동이 있었던 새벽에 예수께서는 불의한 자들에게 붙들리면서부터 안나스와 가야바 그리고 산헤드린의 공회와 빌라도 또 다시 헤롯과 빌라도 앞으로 끌려다니며, 육체를 찢는 채찍의 고통과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갖은 조롱과 멸시를 받게 됩니다. 그 어느 때보다 길고도 험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결국은 골고다의 언덕 위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게 되는.. 죽음보다 더한 고난의 금요일..
1. 체포
어쩌면 마지막이 될,
그 밤의 처절한 기도를 마치고
아직 채 날이 밝기도 전인 새벽 미명에
제자.. ㅠ
유다를 앞세워 몰려온 무리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보낸 사람들인
그들의 손에는 검과 몽치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영광스런 환상에 젖어 이런 사실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제자들은 아직 동트기도 전의 새벽부터 자신들의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이 경악스러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는데..
유다가
함께 온 무리들과 약속한대로
자신의 입맞추는 그가 예수임을 알렸고,
무리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려 하자
뒤늦게 위급한 상황을 인지한
제자들 중 한 사람이 검을 빼어
예수를 체포하려는 자를 내리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칼이 빗맞아 체포 하려던 자의
오른쪽 귀가 순식간에 떨어져 나갔는데
하마터면 목이 떨어져 나갈 뻔..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귀가 떨어진
그의 이름은 '말고'라는 자였고,
검을 휘두른 사람은 베드로였다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예수께서는 도리어
그 체포하는 자의 귀를 낫게 하신 뒤,
그들에게 결박 당한채 끌려 가게 됩니다.
그 순간
귀가 치료된 말고의 심정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안타깝고 놀라운 상황에
끝까지 주를 따르겠다고 호언하던 제자들은
어느 순간 두려움에 뿔뿔이 흩어져
도망하고.. 도망하고.. 도망..
아래 사진은
예수께서 잡히시던 곳이라는데..
2. 베드로의 부인
결박당한 채
끌려간 예수께서 먼저 도착한 곳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에게였습니다.
명색이 대제사장인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했던 자였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대제사장을 잘 아는 또 한 제자가 그 뒤를 따라갔다가, 예수님을 끌고 온 무리들이 대제사장의 집 뜰안으로 들어가자, 베드로는 밖에 머물고 제사장과 잘 아는 이 제자는 먼저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문지키는 비자 곧 여종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가려 합니다.
대제사장을 잘 아는 그 제자는
성경에 스스로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나
이 장면을 기록한 요한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그 비자가 베드로를 알아보고
'당신도 이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묻자
베드로가 두려움에 떨던 상황에 '나~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이 때의 상황을
이렇게 세밀히 알고 기록한 요한이
바로 그 제자가 틀림 없겠지요?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며 따르는 제자였지만, 또 관원들과의 관계도 잘 유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날이 밝기 전인지라
심문이 이어지는 동안 날도 추웠지만
마음조차 얼어붙은 제자 베드로는
초조한 마음으로 사람들 속에 끼어들어
하속들이 피운 숯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의 불안한 눈동자에 벌겋게 타오르는 숯불이 투영되고
어찌할 바 모르는 그의 표정 위에 불빛 그림자가 일렁이는데..
그때..
또 다른 한 사람이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더냐'
화들짝 놀란 베드로는
또 다시 '아니라'고 대답하지만..
대제사장의 종 중 하나는
바로 이 베드로가 귀를 베어버렸던
말고의 친척이어서 확실히 알아보고
분명히 베드로가 맞다고 소리쳐 말합니다.
이때 베드로는
이를 강력하게 부인하는데,
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저주하면서 부인하는 말을 하였다고 하는군요.
모든 사람이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결코 아니라고 했던 그 베드로가..
이때..
어디선가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당황한 베드로의 귀에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
순간 베드로는 지난 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하였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닭울기 전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는 말씀을 하실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럴 것이라고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베드로..
지난 밤 자신의 고난을 예고하시는 주 앞에서
누가 더 큰 자인지를 따지던 제자들이..
예수께서 잡히신 지금은
자신의 몸 둘 곳조차 찾지 못하고
숨어 웅크린 채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3. 심문과 결정
안나스가 예수님을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이자 사위인 가야바에게 보냅니다.
지체할 것도 없이 가야바는
넘겨받은 예수를 그대로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고가는데..
이날이 유월절 새벽이니
유월절 음식을 먹으려면 이방인인 관정인 그곳에 들어갈 수 없어
유대인들은 모두 밖에 서 있고, 이방인인 빌라도가 밖으로 나와 묻습니다.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심문 결과 빌라도가 죄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하자
사람들이 소리질러 외치기를
‘그가 갈릴리로부터 여기까지 사람들을 소동케 한 자'라고 떠들어댑니다.
마치 피에 굶주린 이리처럼
울부짖는 이들의 함성을 듣고 있던 빌라도,
곤란한 처지의 그에게 떠오른 생각이
마침 예루살렘에 와 있던 헤롯이
갈릴리의 관할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결박된 예수를 그, 곧 헤롯에게로 보내게 합니다.
헤롯은 자신에게 보내진 예수를 보자..
'크게 기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그가 예수의 소문을 들었고
만나고 싶어한지 오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한 이유는 단지
예수의 이적 행하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이었지만,
이 어리석은 요구에 예수께서 대답이 없고
눈치없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계속 소리질러 고소하고 야단들이니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한 후
빛난 옷을 입혀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냅니다.
본래 빌라도와 헤롯의 사이가 좋을 수는 없습니다.
분봉왕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파송된
총독 빌라도는 헤롯과 원수같은 사이였으나
이날은 마치
서로 배려하는 친구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둘 다 서로..
이 말도 안되는 사건을
자신이 맡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들 이방인이며 권력자들조차 발견할 수 없는 죄목을
그 자리에 모인 유대인들은 도대체 어디서 발견한 것인지..
빌라도에게 돌려보내진 예수님의 재판을 위해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관원들 그리고 백성들을 모아
자신이 사실한 결과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겠고,
헤롯 역시 자신에게 돌려 보냈으니
단지 예수를 때려서 놓아주겠다고 말합니다.
죄를 찾지 못했는데.. 때려서 놓겠다???
어떤 이유인지는 자신들이 알 수 없으나
분노하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달래 보겠다는 의도였지요.
그러나 이 터무니 없는 군중들은
더욱 소리질러 외치기를 예수의 사형을 주장합니다.
며칠 전 종려주일에 호산나 외치던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이날은..
동원된 것이 분명한 군중들의 외침에
누구 하나 선뜻 그렇지 않다고 나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빌라도는 유월절이면 한 명씩 죄수를 방면하던
전례의 방식을 이용하여 예수를 방면하려 했으나,
이 마저도 살인자 바라바를 풀어 주라는
그야말로 이상한 군중들이었습니다.
채찍으로 모진 매를 때려
백성들의 동정이라도 얻을까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칠 뿐입니다.
납득할 수 없을만큼 극성맞은 사람들의 소리에
빌라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하지만,
그들은 더욱 소리질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칩니다.
전후상황을 알지 못하는 빌라도는 민란을 우려해
죄가 없음을 알고도 놓아주지 못하는 유약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빌라도는 무리 앞에서 물을 가져다가 손을 씻으며 말하기를..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이에 흥분한 백성들은 모두 대답하여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하니,
이에 빌라도는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게 하고
예수에게는 더욱 채찍질하게 한 뒤,
십자가에 못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줍니다.
마치 굶주린 야수들에게
고기 한 점 던져 주듯 던져진 예수..
4. 고난의 비아돌로로사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넘겨받은 뒤
관정 안으로 들어가 온 군대를 그에게 모아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짓눌러 씌운 채
그 오른손에 갈대를 들려주고
그 앞에 무릎을 꿇으며 조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하며
그에게 침을 뱉고 가시 면류관 쓴 그의 머리를 치며 고통을 더합니다.
저희끼리 웃고 떠들며 온갖 희롱을 다 한 뒤,
다시 홍포를 벗기고 본래 그의 옷을 입힌 뒤,
십자가에 못박으려 끌고 나갑니다.
어쩌면 매맞는 수모보다
버려진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는 이 수모가
더욱 견디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 검으로 말고의 귀를 내리 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온갖 처절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끝내 견디고 계셨던 것은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하신 그 의지와 순종의 결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극렬한 고통과 죽음 뒤에 있게 될 인류의 구속사를 바라보시는 주님이셨던 것을 그들이 알리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기로 이 고통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어쩌면 죽음 보다 더한 아픔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구레네 시몬
십자가를 그에게 지우고 가는 길에 지난 밤부터 잠시도 쉴틈 없이 쫓기고 맞아 기진맥진 한 예수께서 계속 넘어지자,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에서 올라와 지나가다가 이 장면을 보는데, 그를 억지로 같이 가도록 붙잡아 예수의 십자가를 그에게 지웁니다. 영문도 모른 채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져야 했던 시몬은 자기도 모르게 그 고난에 동참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도착한 골고다 곧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병정들은 그를 다른 흉악한 죄수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그들은 예수의 옷을 누가 어느 것을 얻을까 하여 제비를 뽑고, 그 위의 죄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 썼으며 그 양편에는 강도들을 못박음으로 최악의 수모를 겪게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갖 조롱과 멸시로 얼룩진 처형장면이었습니다. 그 처절한 고통의 현장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있었으니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처절한 고통의 소리였습니다.
사람들이 조롱하기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해주나 보자'라고 하는 자도 있고, 지나가는 자들까지도 예수를 모욕하며 이르기를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말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그 희롱의 대열에 함께 하여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다'고 조롱하고, 심지어 곁에서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 마저도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하라'며 조롱합니다. 죄없이 죽어가는 이를 바라보는 이것이 그들의 기쁨이고 희열이었을까요?
그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데,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선 것을 보시고 제자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 말하며 마리아를 부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요한은 그 이후 위협을 피해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로 이동한 것을 오늘날 현장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갈증이 심해지면서 "내가 목마르다"하시니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그 입에 대니 예수께서 그 포도주를 받으신 후 "다 이루었다"하시고 머리를 떨구게 됩니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조차 외면된 채..
마태의 기록에 따르면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 되더니 제 구시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신 것이 곧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였다고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운명하시자 성소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었고, 땅이 진동하여 무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였다고 기록합니다. 심지어 백부장과 및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때늦은 후회는 그 자신을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저녁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는 사람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신을 넘겨달라고 부탁하여 허락을 얻어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시고 돌을 굴려 막습니다.
그 밤, 그 앞에 슬퍼하는 모친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가 함께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둠의 금요일 밤은 깊어만 가고..
출처: 김강래의 바이블 소식 밴드
종려주일 후 넷째날..
이 날은 무교절의 첫 날 유월절로 양을 잡는 날이었습니다.
가나안력으로는 아빕월이라 하고 바벨론력으로는 니산월 14일입니다.
이때로부터 일주일 간 무교절로 지키고 무교절 첫 날은 유월절과 합쳐져서
유월절은 무교절 첫 날로 간주됩니다. 태양력으로 보면 요즈음인 3-4월에 해당됩니다.
유월절은 출애굽의 마지막 재앙 장자의 죽음이 있었던 날로
히브리인 가정은 명령대로 양 한마리를 잡아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르게 하였고
그렇게 한 집은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던 날 passover를 기념합니다.
유월절 저녁에는 일 년 된 수컷 어린 양을 잡고
뼈를 꺾지 않아야 하며 불에 구워서
무교절 기간에 먹는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과 함께 먹으며
조상들이 황급히 애굽을 벗어나던 때를 기억하며 지키는 날입니다.
유월절 만찬
제자들은 유월절 음식 드실 곳을 어디서 예비 하면 되는지 주께 여쭙고, 주께서는 제자 둘을 보내시며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이를 만나게 될 것이니, 그를 따라가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그대의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고 지시하십니다.
1. 도대체 누가 주를..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습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갑자기 예수께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신 뒤, 대야에 물을 담아 그동안 함께 해왔던 제자들의 발을 하나씩 어루만지며 씻기시고 수건으로 닦아주십니다.
낡은 샌들을 신고 하루 종일 먼지나는 길로 다녔으니
때묻고 더러워진 그 발을 다른 사람에게 내밀기도 불편하지만,
더구나 주의 손에 그 발을 맡기기에는 참으로 송구스러웠을 것입니다.
더러워진 자기 발을 누군가에게 내밀고 닦아 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종을 거느린 상전들이나 할 일이었지요.
그런데 하물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 찬송 받으신 하늘같은 주께서 발을 내밀라 하시다니요.
예수님의 갑작스런 행동을 지켜보던 베드로는 자기의 순서가 되자 황급히 일어나며 말하기를
"주여,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하시니 베드로는 곧 태도를 바꿔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주여,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시면 안될까요?"
예수께서도 피식 웃음이 나셨을 듯 합니다.
베드로의 이런 넉살은 지금도 부럽기 이를데 없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닦으시는 주께서
그들의 발을 어루만지시며
함께 해 온 삼 년의 시간들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주의 이름으로 그들이 가야 할 그 험난한 길을 걷게 될 그들의 발을 생각하며 마음으로 눈물을 삼키며 축복하셨을 것입니다.
부디..
그 험한 날들을 이기고
승리하기를 축복하고 격려하시며
한 사람, 또 한 사람 발을 닦으셨겠지요.
그들의 발이 얼마나 사랑스러우셨을까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에
또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주께서 정성스럽게 닦아 주신 발을 거두고
제자들은 마음 깊은 감동과 함께
조용히 떡을 떼고 있을 때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이 왠 청천벽력 같은 말씀일까요?
충격적인 말씀에 깜짝 놀란 제자들이
서로 그 사람이 자기인지 묻습니다.
물론 결코 아니라는 강한 부정의 몸짓이지요.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시니, 유다가 짐짓 태연한 척 말하기를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어떻게 그 일을 아셨을지 궁금하기도 했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지체할 일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겠지요.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나 다른 제자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차라리 지금은 모르는 편이 좋다는 생각을 하셨을지도..
주님을 팔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인지.. 제자들이 더 묻기도 난감합니다. 아니 어쩌면 지금 그들의 머리 속에 채워진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은 지금 이 순간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이 순간에 대해 누가의 기록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가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이 긴장된 순간에.. 철없는 제자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훗날
이들이 선택하고 걸어간 그 길은 대부분 순교자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 곁에 비스듬히 누워 듣던 요한은 이 때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베드로가 머리 짓으로 '주께서 말씀하신 자가 누군지 말하라'고 하실 때, 예수께서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는 곧 한 조각을 찍으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하시니 제자들은 이 말씀이 무슨 뜻으로 하신 것인지 알지 못하고,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주를 따르는 이들이 헛된 곳에 마음이 팔리면 주의 말씀도 들리지 않지만, 이런 헛된 마음은 무엇이든 자신의 생각을 믿어 버리는 습성이 생깁니다.
이어지는 기록엔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은 요한복음 15장의 기록을 통해 이 부분을 상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아마 예수님을 의지해 기대어 들었던 요한이 가장 정확히 기억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 이를 기념하라
그 밤에 대한 마태의 기록은 계속 이어집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떡과 잔을 나누시면서 마지막을 준비하시는 것이었으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에 제자들이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향하였다고..
그곳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지 못한 채..
머리 속에는 여전히 누가 더 크고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지 내심 기대를 가지며..
누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인자는 이미 작정한대로 가거니와.."
아마도 훗날..
이 기록을 남기는 제자들은 이날을 회상하며
뜨거운 눈물과 함께 이 기록을 남겼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이때 성질급한 베드로가 바로 한 마디 합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그러자 모든 제자들도 베드로처럼 그렇게 말합니다. 곧 있을 영광스러운 기대에서 자신들이 인정 받을 기회를 놓치면 안될 분위기죠.
주께서는 옅은 미소로 베드로를 바라보며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결단코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제자들도 함께 그렇게 말하면서
이미 어둠이 내린 겟세마네라 하는 운명의 장소에 이릅니다.
아마 당장의 마음 같아서는
볏 단을 지고 불속에라도 뛰어들 기세였을 것입니다.
곧 있게 될 예루살렘의 영광을 꿈꾸며..
우리는 다른가요?
3. 처절한 겟세마네 기도
겟세마네에 이르자 제자들을 한 곳에 앉아 기다리게 하시고,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저만큼 더 가서 고민하고 슬퍼하시며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혼자 조금 더 나아가셔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기도하십니다.
"내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시던 예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시니
그 시간 제자들은 피곤한 눈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들었다지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예수께서는 다시 돌이켜 두 번이나 같은 기도를 드리시는데..
통한의 새벽은 점점 다가오고..
누가는 이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얼마나 간절한 기도였는지를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새벽이 다가오자 눈물과 땀에 젖은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출처: 김강래의 바이블소식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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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3. 27.
오늘은 종려주일 후 세 번째 날입니다.
그러나 내용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두 번째 날을 이어갑니다.
세 번째 날에 대해 성경이 침묵하고 두 번째 날 일정이 무척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바리새인 혹은 서기관(마가의 기록)에게 향한 예수님의 질문을 마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당신들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뉘 자손이지요?"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런가요?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기를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다'고 하셨으니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어떻게 그 곧 다윗의 자손이 되는지요?"
미처 생각해 본적 없는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부분 즉, 아무 생각없이 성경을 읽고 지나치는 부분이 우리에게도 적지 않습니다. 이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마태는 그들의 반응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 중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기록하였고
마가는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고 기록합니다.
함께 있던 백성들이 보기엔 평소 근엄하고 모든 것을 아는 척 하는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예수님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이 매우 생소하면서도 통쾌하게 여겨진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도 한 번쯤 즐거워하는 백성들에게 빙그시 웃어주셨을 것 같습니다.
조금 뒤 예수께서는 성전의 연보궤 앞에 앉아 헌금하는 이들을 바라보십니다. 부자들이 많이 넣는 것을 보시던 중, 한 가난한 과부가 드리는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 것을 보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라고 하십니다. 여러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가난하고 힘겨워 하는 사람을 아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하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렙돈은 가장 작은 단위의 화폐로 구리 동전입니다. 두 렙돈이라면 우리 돈으로 대략 6천원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당시 참새 두 마리의 값이 한 앗사리온이라고 했는데, 한 고드란트라면 이 앗사리온의 4분의 1의 가치를 가지니 참새 한 마리를 살 수가 없는 돈이 됩니다. 그러나 당시 사회적 환경에서 이 가난한 여인에게 이 돈은 적지 않은 금액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신 것은 그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가장 많이 넣었기 때문에 가장 많은 복을 누릴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렇게 드려지는 예물을 제멋대로 사용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의 마음이 더 크셨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께서 이어 말씀하시기를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과부의 드린 헌금을 삼키는 그들에 대한 언급입니다. 과부는 헌금을 드렸으나 예수님 보시기에 가장 큰 돈을 도적질 당한 사람이 된 것이지요.
마태는 이 부분에 대하여 좀더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예수님의 이토록 통렬한 책망과 저주는 길게 이어지는데 마 23:13-39에 자세히 기록되고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성전의 상좌에 앉고 어디서나 대접받기를 좋아하며 백성들의 고혈을 뽑아 먹는 그 불의함을 낱낱이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이 그들에겐 돌이켜 회개할 기회로 여길 수도 있었겠지만 어리석은 그들은 도리어 자신들의 수치를 드러내는 예수에 대한 적개심만 더욱 강하게 키워갑니다.
마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마지막 때의 징조를 말씀하시며 안타까워 하시는 모습을 남기고 있습니다. 무화과 나무의 저주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보는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날의 하루는 길고 고된 하루가 되었지만, 그러나 매우 중요한 일정의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은 이때의 상황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요 12:42-43
물론 오늘날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우리 속에도 이런 이들과 같이 베일 속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이들이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행적을 따르며 우리 자신에 대해 다시한 번 성찰하는 기회로 삼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 날에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부하시기를..
"주의하라 깨어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막 13:33
Take heed, keep on the alert; for you do not know when the [appointed] time is.
주께서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언제 들지 알 수 없는 도적의 비유와 청지기의 비유, 열 처녀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구별에 관한 내용들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 시간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서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모여 예수를 궤계로 잡아죽이려고 모함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이런 죽음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의 종려 주일 후 두 번째 날 일정을 보면 그 안타까워 하시는 모습이 더욱 절절이 드러나게 됩니다.
두 번째 날 일정을 마치고 베다니의 문둥이 시몬의 집에 머물 때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붓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그것을 아까워하며 여인을 힐난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하시며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머리 속에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예루살렘의 분위기였습니다.
이 일 후에 가룟유다가 대제사장들을 찾아가 예수를 넘겨주겠다며 돈을 요구합니다. 다른 제자의 기록을 보면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일에 가룟유다가 가장 분하여 했던 것 같습니다. 내일을 알지 못하는 제자들에겐 자기 생각과 다른 작은 것도 큰 실망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가룟유다의 비틀어진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이 위선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작 그런 자신의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그가 어떤 일을 행할 것인지 이미 알고 계셨으니 그 밤,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같은 밤 제자들은..
예수님을 환호하는 예루살렘의 영광을 생각하며, 즐거운 꿈과 함께 잠을 청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고뇌와 근심이 깊어만 가던 그 밤에..
출처: 김강래의 바이블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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