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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 |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성경? | 2024-10-29 | hit46146 | |
| 공지 | 성경학습의 기회가 열린다 | 2022-08-25 | hit51304 | |
| 공지 | 서울 삼실 전경과 위치입니다. | 2021-06-13 | hit55579 | |
| 공지 | 목회자 구문강의 알림 | 2020-11-17 | hit54507 |
성숙에는 과정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어느날 갑자기 성품이 달라지고 삶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확실히 몇 년의 시간을 지나며 교회 생활에 익숙해질 때쯤 사람들과 진지하게 대화도 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기도 하다. 그 기간의 길고 짧은 것은 주변 사람들의 태도에 달려 있다. 사실 기존에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처음 접하는 이들에 대한 자연스러움을 갖기는 어렵다. 교회를 새로 나온 사람이나 오래 다닌 사람도 심정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동일한 사람들이지만 새로운 성도를 만났을 때 기존의 성도는 그렇지 않은 척 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어쩌면 그것은 먼저 신앙을 경험한 사람으로서의 역할이기도 하다.
대학시절 경험이 떠오른다. 어리버리한 상태로 학기과목을 신청해야 하는데, 요즘과 달리 당시는 신청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신청서를 받아들고 나름 태연한 척 자연스럽게 적어보려 해도 헷갈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뜻밖의 한 여학생이 웃으며 다가와 '좀 복잡하죠?'라며 말을 걸었을 때, 좀더 솔직해질 수 있었던 기억이다. 서로 대화를 하며 풀어가니 순식간에 작성방식에 대한 이해와 필요한 강좌들을 찾았고, 제출할 수 있었는데, 졸업 때까지 둘도 없이 친한 친구로 남았던 기억이다.
나는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으로서 당신 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닌 서로가 함께 알아가고 답을 찾아가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들면 순식간에 가까워지더라는 경험이 교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리더가 아닌 동료라는 관점에서 아는 것은 공유하고 모르는 것은 함께 고민하며 해결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은 공동체일수록 하나 되기가 더 어렵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서로가 가진 개성이 융화될 기류가 형성되기 어려운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경우는 하나 된 마음을 갖기 위해 가족같은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도록 리더는 역할을 해야 한다.
리더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기존의 성도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성도의 기준에 맞추어 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책임감을 갖고 있는 리더는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서로의 끈끈한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처음 나오는 사람은 리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리더는 부담스러운 존재로 변화된다. 리더의 역할에 충실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대방 위에 서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ㅎ
교육부터 관계, 그리고 상담까지 리더 자신만 바라보게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높다. 오래 전 학생들을 가르칠 때 중간 리더역할을 하는 친구들에게 여러 역할을 부여했고, 그들은 기대 이상으로 놀라운 관리 능력을 보여준 경험이 많다. 리더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면 공동체는 제한적 성장을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때로 문제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것을 두려워 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리더는 단지 방향만 제시하고 적절한 선에서 물러나 주는 것이 좋다. 도리어 적극적으로 관계를 이어주면 그들의 관계속에서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성숙한 성도는 이렇게 관계속에서 만들어져 간다.
전도를 위해 필요한 것
열정? 열심? 물량공세? 전도란 말 그대로 자신이 가진 도를 전하는 것인데, 내가 전도할 능력이 되지 못하니 우리 교회에 와보라는 식으로 전하는 것은 속칭 "삐끼"에 가깝다. 그나마 삐끼는 일당이라도 받고 하는 일이지만 교회 전도는 그런 것도 없지만, 선한 성도들의 마음은 자신이 무언가 역할을 하고 기여한 것에 대한 뿌듯함이 묻어난다. 물론 자신이 언제까지 그런 역할과 만족감을 누릴 수 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전도는 내가 아는 도를 전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전도의 효과
전도를 통해서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는 교회도 많이 있으나 꾸준한 물량공세를 통해 효과를 보는 교회도 없지 않기에 할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데리고 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렇게 등록하는 사람의 수가 매주 등장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의 수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남아 있는 한 두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대단한 공략을 펼친 것이라 생각해도 될 듯하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니까.. 그런데 교회를 떠난 다른 영혼들은 상관없는 일일까? 구멍이 숭숭 뚫린 독에다 열심히 물을 퍼붓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전도보다 중요한 것
전도는 필요하고 당연히 해야할 일이지만 성도로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우리가 전해야 할 도에 관한 것이다. 물론 그것은 복음이다. 복음을 아는 것이 사영리뿐이라면 데리고 온 사람이 그대로 남아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복음에 대해 성경에 대해 얼마나 가볍게 여길까? 복음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지만 오직 구원에 매몰된 것이 아니지만 삶의 지혜에 관한 내용은 거의 다루지 못한다. 전도보다 중요한 것은 먼저 성경에 대한 올바른 교육과 교제를 통한 삶의 나눔의 실천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물론 나눔의 방식은 워낙 다양하고 풍부하기에 교회의 특징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활성화가 가능하다. 전도에 목매기보다 먼 미래를 본다면 오늘 당장 성도들의 성경적 지식과 교제의 풍성함에 더 집중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하면 굳이 나서서 전하지 않아도 저절로 불어날테니까.. 이상론이라고? 글쎄?
아래 그림은 예식장인데 나중에 보니 교회 성도들로 가득 채워진 예식장이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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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문과 문맥
성경의 구문은 일단 접근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찾는 분이 많지는 않지만 구문을 알지 못하고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정확한 것인지 알기 위해 구문과 문맥은 필히 배우고 확인할 필요가 있다.
주석은 배경에 관한 지식과 약간의 단어적 설명이 가능할지 몰라도 구문과 문맥을 다루는 책이 많지 않다. 수많은 사이비와 얼치기 집단들이 등장하는 것은 구문과 문맥이 아닌 자의적 해석과 뜻풀이 등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사실 교회도 그런류의 성경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도 빈번하다. 성도들은 매번 들을 때마다 다른 내용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존재한다. 성경은 무오하다고 배웠으니 목회자의 전하는 말씀도 무오하다고 이해하는 것이 맞을까?
구문은 문장의 내용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를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기능을 하고, 문맥은 그 문장들이 어떤 단락을 이루며 맥을 유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구문을 공부하면서 파악하고 볼 수 있는 내용도 워낙 다양하기에 구문을 접하는 이들에겐 날개를 다는 효과가 있다. 외롭지만 늘 교회와 성도들에게 구문과 문맥을 알리기 위해 오늘도 달린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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