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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림] 성경을 어떻게 읽을까?

    • gtbc (gtbckim)
    • 2024-11-25
    • hit1588

    성경을 어떻게 읽을까?

    많은 분들이 성경을 읽지만 도무지 무슨 말인지 얼른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고,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는 하지만 읽어도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 책을 왜 읽어야 할까요? 혹, 어느날 갑자기 눈이 열리면 성경의 내용이 눈에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갑자기 성령께서 알게 하시면 깨닫게 될 것이니 꾸준히 읽으면 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일까요?

    여러분은 성경을 몇 독 하셨나요? 아.. 누군가에게 죄책감을 갖게 하려고 질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못 읽었다는 죄책감이 생긴다면, 그건 더 이상하지 않나요? 읽어도 기억에 남지 않는 성경을 계속 읽으며 시간 낭비하는 것이 될테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말일까요? 그럴리가 없겠지요?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분도 보았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갈 때마다 목사님께서 설교를 통해 성경을 해설해 주시니 그때 들으면서 배우면 된다는 것이죠. 과연 그럴까요? 주일날 우리가 듣는 설교 말씀이 성경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맞나요? 설교는 설교일 뿐 그것은 성경교육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설교는 성경교육이 아니라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성경을 활용하여 구성된 한 편의 연설문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설교가 필요없다는 의미일까요? 역시 그렇지 않습니다. 설교는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줄 어쩌면 유일한 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성경공부가 없다면 말입니다. 아무튼 성경을 읽는데 도무지 그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배운 적이 없을테니 말입니다.

    비록 성경이 한글로 기록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와 다른 시대, 다른 문화, 다른 환경에서 기록된 책이므로 오늘날 우리의 책 읽는 방식과 이해로 접근한다면 여러 생소한 문제들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사건 기록체가 아닌 책들은 읽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정확히 맞는 말입니다. 머리가 나빠서는 결코 아닙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읽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건 기록체라고 하는 것은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형식이므로 어느 정도 내용을 파악하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사건 기록체 마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고 하면 의아한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은 단지 사건 자체를 기록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그 전개를 통해 전하고 싶은 내용을 담은 책인데, 이솝 우화나 동화처럼 한 사건 한 사건 별개의 사건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사건들의 기록을 통해 무엇인가 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양지에서 신대원생들에게 구문과 문맥을 가르칠 때 학생들이 많이 어려워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방식을 가르친 적 있습니다. 여전히 그 방식은 유효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TS Text Sketch라는 방식이지만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생들이 아닌 일반 성도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환경적으로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

    TS라는 방식은 일단 본문묵상에서 벗어나도록 합니다. 흔히 우리에게 습관화 된 읽기 방식은 QT가 아닌 문장 그대로 구문과 문맥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단락을 정하고 그 단락의 구성을 확인한 뒤, 이어지는 다음 단락과의 의미적 관계성을 확인하고 찾는 것입니다. 또 확인한 관계성의 범위가 어디까지 이어지는가를 찾는 등 학습의 범위가 넓어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묵상이 아니라 저자의 구성방식을 이해하므로 저자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처음엔 많이 힘들어 하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성경을 그렇게 읽는 것이 얼마나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인지 깨닫게 되면서 더 깊은 연구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반 성도들은 어떻게 그런 것을 배울 수 있을까요? 포기해야 하는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묵상이라는 상상의 습관에서 탈피하여 내용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객관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정리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그런 방식으로 읽는 훈련도 하지 않았고, 배우지 않았으니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이제부터라도 홀로 성경을 제대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어쩌면 지금이 가장 빠른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GTBC성경교육원은 이런 훈련이 익숙해지도록 돕습니다. 필요하신 분들을 위해 매월 시작하는 매주 화요일 오전10시와 오후5시 두 시간씩 수업을 갖습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가능한 시간에 매주 한 번 찾아오시면 됩니다. 수업료는 없으나 책은 별도 구입하게 됩니다. 책값이 수업료라고 생각하시면 되고, 책과 자료제공 포함 1만원입니다. 그것도 부담스러우시면 그냥 오세요. ㅎ

    장소는 시청역 9번출구 유원빌딩입니다. 주차요금도 비싸고 주차가 어려울 수 있으므로 지하철을 이용하시길 권합니다. 12월 등록하는 분들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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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제] 다음세대를 위해 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지..

    • gtbc (gtbckim)
    • 2024-11-15
    • hit1586

    다음세대를 생각하기 시작한 교회

    교회가 다음세대를 생각하게 된 것은 급격하게 사라져 가는 젊은 세대들로 인한 충격에 기인한다. 오래 전부터 다음 세대를 중요시 여기고 접근해 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급히 생각하고 계획한 것들이 제대로 먹힐 일이 없다. 그런데 확실히 다음 세대를 준비하지 못하면 앞으로 10년 안에 교인절벽위기에 봉착 할 교회들이 속출할 수 있다. 이미 나라가 고령화 되어가는 시대를 살면서 가뜩이나 그 숫자가 적어지는 젊은 세대가 급격히 교회를 빠져나가면서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은 대부분 고령층에 해당되는 성도들이며, 교회의 중심축도 역시 고령화 된 중직들이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운영된다.

    평소 의식있는 한 분의 장로님께로부터 전화가 왔고 교회의 운영이나 행정을 젊은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말이 많은데 실제로 그들에게 맡기면 교회는 풍지박산 나고 말 것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물으니 젊은이들은 신앙에 대한 경험도 부족하고 그들의 신앙적 마인드가 기존의 지켜온 것들을 모두 순식간에 무너지게 할 것이라고 한다. 오로지 신앙에 관한한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쌓아온 나이든 중직들이 이끌어 가야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것이 어떤 것일까?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급격히 교회를 떠나가는 젊은 세대를 한 마디로 그냥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 생각이다. 그들의 주장이 터무니 없다고 말하는데, 그 주장이라는 것이 교회 재정을 투명하게 하자는 것과 민주화된 방식의 교회 운영이라는 것이다. 교회에 무슨 민주화 정책이 필요하느냐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이런 요구가 있다는 것은 이미 그만큼 교회가 신뢰를 잃었다는 증거라 볼 수 있다. 일단 교회와 젊은 세대 서로에게 대한 신뢰가 이런 상태에서 대화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장로님은 이어서 젊은 것들은 십일조 등 헌금도 제대로 내지 않으면서 쓸데없는 요구가 많다는 것이고, 젊은이들의 입장은 신뢰할 수 있는 교회가 될 때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시에 교회를 떠나 가나안 성도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신뢰할 수 없는 교회를 떠난다고 해서 아쉬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교회를 떠난다고 신앙을 완전히 버리겠다는 것도 아니다.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교회를 다니는 것보다 여러 교회의 온라인 예배를 통해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다. 기성세대가 볼 때 그런 신앙이 얼마나 가겠는가며 비웃겠지만 그건 모를 일이다. 그들은 교회를 떠나겠다는 생각이지만 또 다른 한 편에서 기대에 부응하는 교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기대도 사라지겠지만 말이다.

    현재 청소년 기독인을 살피면 3%대도 위태롭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 밑바닥으로 더 내려갔을 수도 있다. 교회는 변하지 않고 젊은이들은 급속도로 변해가고 인구수는 줄어든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교회가 그들을 다시 교회로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다음세대를 위한 구호와 함께 여러 대안이라고 내놓는 것들을 보면 수구 노인들의 생색내기 대안이다. 그 어떤 결과도 낼 수 없을 것이 명백함에도 교회는 그것을 몇 번 시도하다가 잘 안되면 또 쉽게 포기하는 것을 본다. 이미 다음세대는 미전도 종족이 된지 오래다. 섣불리 접근할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교회가 적극적인 접근을 하지 않는 한 이 현상을 피하기는 어렵다. 본질적인 논쟁도 아니고 조직과 행정적 논쟁으로 서로의 접점을 찾기는 이미 어렵다. 그럴 것이면 다음세대를 논하지 말고 그냥 적당히 버틸 생각으로 가면 될 듯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명확했다.

    방향을 전환하라고.. 그런 소모적인 논쟁에 머물지 말고 전혀 다른 접근법을 선택하라고.. 자신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들이 무엇인지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고.. 더 자세한 내용은 추후 모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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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자기도 모르게 쌓은 아성

    • gtbc (gtbckim)
    • 2024-11-05
    • hit1673

    성을 쌓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 여호수아와 함께 한 이스라엘로 인해 무너진 여리고를 기억한다.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길을 가로막고 선 여리고는 무너져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땅을 지켜야 했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길을 지나가야 했다. 정탐꾼을 보낸 여호수아 거기서 만난 기생 라합의 기지로 정탐꾼들은 위기를 벗어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은 그 누구도 용납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려는데, 그 길을 가로막는 세력들이 있다. 누굴까? 사이비? 이단? 정치인?

    거대한 조직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빌려 온 거대한 조직이다. 조직의 논리로 성도들을 줄세우고 단 한 걸음도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움직이지 못하면서도 그곳에 머무는 것이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주의 이름으로 노래하고 주의 이름으로 설교를 하는데 늘 탐욕과 욕망의 분출구가 될 뿐이다. 판단능력이 전무한 성도들은 그 조직 안에서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며 맴맴 돌고 있을 뿐이다. 자신은 아니라고 여기며..

    누가 내게 물었다. 이 조직이 무너져야 하는 것이냐고.. 그런 것을 기대하느냐고..

    예전에 어떤 신학대학 총장님께서 함께 모인 자리에서 말씀하신 바 있다. "주의 이름으로 세워진 곳이지만 하나님도 바꿀 수 없는 곳입니다." 조직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 누구와도 싸울 준비가 되었고, 그 대상이 비록 하나님일지라도 다른 이름으로 뒤집어 씌우고 대적할 준비가 된 곳이다. 교회는 자기도 모르게 거대한 성을 쌓았고, 성도들은 그 안에서 우왕좌왕 방황하지만, 거대한 조직은 순응하는 이들에게 적절한 먹이를 주며 사육한다. 그 안에 머무는 자가 그 조직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리스도께서 머리되신 교회라고 하지만, 교회의 머리는 따로 있다. 그 머리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은 언제라도 퇴출될 수 있는 거대한 조직이라는 머리가 있다. 가끔은 그 거대한 머리조차 힘도 못쓰게 하는 또 다른 머리도 나온다. 사람들은 그 머리에 열광하고 있고, 그 안에 머무는 자신들의 만족도는 급상승하고 있다. 교단보다 거대한 힘을 가진 교회도 확실히 존재했다. 요즘은 사이비도 그런 거대한 조직의 힘을 알고 유사한 흉내를 내고 있고.. 언젠가 무너져야 할 이 성이 우리를 둘러 싸고 스스로를 경건한 집단으로 착각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조직은 편리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함정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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