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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놀라는 것은 새로운 것 때문이 아니다

    • gtbc (gtbckim)
    • 2025-03-02
    • hit1519

    성경 세미나

    본래 기독교 강의 중에서 가장 인기없는 강좌가 성경강좌라는 것은 목회자나 성도나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아니다.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목회자보다 성도들이 더 성경 알기를 갈망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변한 것이 없다면 목회자는 성경배우기에 큰 관심이 없지만, 성도들은 알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찬 눈빛을 가진 분들이다. 교회가 가르치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찾아가서라도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이 성도들이다. 물론 대부분 목회자들은 자기 교회의 성도들이 다른 곳에서 성경교육 받는 것을 무척.. 매우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가 가르치면서 그런다면 모르겠지만, 가르치지도 않으.. 아니 못하면서 말이다. 목회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세미나는 요즘 뜨는 유명한 사람들이 강사로 찾아오는 세미나 혹은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을 찾는다. 그것도 요즘은 좀 한물 갔나? ㅎ

    성도들의 관심이 성경으로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주변에 사이비가 널려 있고, 시대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의식속에는 목사는 곧 성경 전문가라는 생각을 한다. 안타깝지만 사실과 많이 다르다. 신학과 성경교육이 한 배인 것 같은데 다르기 때문이다.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신학은 배우지만 성경에 관련된 전문교육을 받을 기회는 거의 없다. 졸업을 한 뒤 성경교육을 받아야겠지만 부목사나 전도사 시절은 생각보다 바쁘다. 성경은 설교를 위해 필요할 뿐.. 교육을 위해 배운 적이 없는 책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신학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제법 있다. 성경은 가르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왜 그래야 할까? 아니 왜 그럴까? 배우적이 없으니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놈들이 있고, 배운적이 없으니 남의 것 가져다 가르쳐야 하는데 막상 남의 것 가져다 사용하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모른다. 사용하는 방법도 모르는 수준이라면 심각한 것이다. 결국 흉내만 내는 시간 때우기가 될 수밖에 없다.

    목회자 성경교육

    목회자들은 강좌 처음에 대부분 요구하는 것이 설교에 관한 것이다. 설교는 목회자들에게 쉽지 않은 스트레스다. 왜? 성경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졸업 후 성경연구 기관에서 지속적으로 연구시간을 가진 이들의 스트레스도 뜻밖이겠지만 설교다. ^^ 더 많이 자세히 알려주고 싶어도 시간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한 이들은 밀려드는 설교시간에 넉아웃되기 십상이다. ㅎ

    일단 세미나 시작할 때 설교를 위한 학습을 시작해보면 자신들의 한계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확인하게 되고, 결국은 성경을 배우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지만 이는 시간이 제법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목회자에게도 성경을 가르쳐보고 성도들에게도 성경을 가르쳐보니 습득속도는 성도들이 몇 배나 더 빠르고 기억이 정확하다는 사실이다. 신학으로 떡칠한 두뇌는 성경을 배울 때마다 이런 저런 잡생각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기껏 배워서 알았다고 해놓고는 다음에 보면 더 이상한 머리가 되어 돌아온다.

    원칙없는 성경교육은 가르치는 이들이나 배우는 이들 모두의 스트레스가 된다. 늘 이런 것이 안타깝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움의 필요를 점점 더 잃어가는 교회들의 모습에서 황폐한 에스겔 골짜기를 생각한다.

    성경을 배우는 목회자들이 놀라는 것은 배움이 새로워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그동안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가를 발견할 때이다. 설교는 성경이 아니라 연설일 뿐..

    머리 식히러 영종도에 갔다가 전망좋은 카페를 만나 한 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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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교회가 지켜야 할 말씀

    • gtbc (gtbckim)
    • 2025-03-02
    • hit1443
    십 여명의 목회자를 마주하고 섰다.
    지역사회에서 나름대로 성실히 목회를 하는 분들이다.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시는 분들을 향해 첫 인사를 건네고 편안하게 마주한다.
    각 교회의 상황과 목회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고 각교회의 애로 사항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이런 저런 감사가 넘치는 교회도 있고 힘겨운 상황에 처한 교회의 소리도 들었다.
    어느 곳에서든 들을 수 있는 내용들이었기에 우리가 당면한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
    강의의 주제는 강해 설교였고 각 목회자의 설교에 대한 코치를 하는 시간이다.

    강해..
    강해를 위해선 가르치려는 사람이 먼저 아는 것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잘 알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 66권 중 어떤 책을 강의하든 가르치는 사람이 아는 것이 없다면 강해를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강해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어떤 책을 강해하고 싶으신지 물었고 대답은 대부분 목회자들이 가장 다루고 싶어하는 책이다.
    잠깐 고민했다. 우리가 정한 기간에 그 책을 끝내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일단 수업을 받는 학습자들의 수준을 체크할 필요를 느꼈고,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책의 한 단원을 정한 뒤, 각자 동일한 부분을 개요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본디 짧은 본문의 개요란 주제와 내용이 크게 달라지기 어려운 법이다. 첫 시간이기에 10분의 시간을 드리기로 했지만, 시간이 너무 짧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더 넉넉한 시간을 가져도 좋다고 대답했지만, 시간이 짧아 개요를 작성하는 것이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고들 말한다. 일단 웃으며 해보시라고 한다.

    사실.. 10분이든 한 시간이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을 안다. 이미 여러 번 시도해 본 일이다. 정해진 본문으로 개요를 만들고 설교를 구성하는 것은 본인의 지적 능력이나 습관과 연결되어 있어 거의 변하지 않는 본인의 DNA라고 보면 된다.

    각자 노트북으로 작성한 개요 파일을 내게로 넘기도록 했고, 나는 제출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프로젝트에 하나씩 띄워 모두가 함께 보면서 검토할 수 있게 한다. 제출한 본인만 자신의 개요인줄 아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자리에 모인 분들은 대부분 서로 잘 아는 이들이니 눈치껏 누구 것인지 알지도 모른다. 일단 제목과 개요를 몇 개 보여드리니 서로 좀 놀라는 모습을 보인다. 길지 않은 본문이고 내용이 분명한데 개요의 제목과 전개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십여 명의 개요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본문을 보는 훈련이 되지 않은 목회자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신학교에서 단 한 번도 이런 훈련을 받아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짧은 본문으로 이렇게 서로 다른 결론을 도출하는 수준의 목회자들이 이 책을 강해 하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될까? 이들에게 배운 성도들은 그 책을 어떻게 이해하게 될까? 이들이 그 시간 개요를 체크 받은 본문은 로마서의 한 부분이었다. 만일 16장 전체를 개요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었을까?

    그런데 이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그 하나님의 나라가 건강하지 못하다면 그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의 문제일까? 최근 한 교회에서 돌아가며 말씀을 가르치는 목회자들을 보며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성도들은 실험대상이 아니다. ㅠ

    GTBC 성경교육원 김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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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

    • gtbc (gtbckim)
    • 2025-02-26
    • hit1513

    교회의 관심이 무엇이 되어야 할까?

    더 많이 전도하는 교회, 궁극적으로는 더 큰 교회, 여기서 더 나아가 많이 (해외)선교 더 많이 하는 교회, 더 많이 지교회를 세우는 교회, 그리고 여유가 되면 적당히 지역사회에 참여하여 사회적 지주가 되는 교회.. 단지 교회만 아니라 원래 조직이란 생존본능과 함께 스스로 더 자라기를 지향한다. 그것이 교회이든 아니면 기타 다른 조직이든 조직이라는 이름 자체가 유기체적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본래 교회는 머리가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엄밀히 목회자가 머리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목회자의 머리에 그리스도가 존재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일 수 없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조직의 특성이다. 어떤 목적으로 구성되었든 조직은 스스로 생존을 위해 존재하고 움직인다. 조직은 지능적으로 발전하게 되어 있다. 교회가 성장하기를 꿈꾼다면 바로 그 조직의 생존본능을 깨우는 방법이 최고라 할 수 있다.

    진정한 교회의 관심은 외적 규모의 성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이 확장되고, 그의 의지가 성도들의 삶에 나타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도 바울은 전도자로서 이방인들에게 자신이 깨닫게 된 하나님의 비밀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를 던지며 살아간 사람이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성도가 다 사도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복음이 구현되고 하나님의 나라, 곧 그의 의지가 성도들의 삶에 퍼져나가야 한다. 규모는 두 번째 문제이고 내적 충분 조건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목회자의 구호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교회가 바람직한 교회라는 착각에 빠지는 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와 거리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될까? ㅠ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여야 하고 교회는 이 땅의 모든 곳에 하나님의 통일성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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