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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 |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성경? | 2024-10-29 | hit46146 | |
| 공지 | 성경학습의 기회가 열린다 | 2022-08-25 | hit51304 | |
| 공지 | 서울 삼실 전경과 위치입니다. | 2021-06-13 | hit55579 | |
| 공지 | 목회자 구문강의 알림 | 2020-11-17 | hit54507 |
성경 세미나
본래 기독교 강의 중에서 가장 인기없는 강좌가 성경강좌라는 것은 목회자나 성도나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아니다.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목회자보다 성도들이 더 성경 알기를 갈망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변한 것이 없다면 목회자는 성경배우기에 큰 관심이 없지만, 성도들은 알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찬 눈빛을 가진 분들이다. 교회가 가르치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찾아가서라도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이 성도들이다. 물론 대부분 목회자들은 자기 교회의 성도들이 다른 곳에서 성경교육 받는 것을 무척.. 매우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가 가르치면서 그런다면 모르겠지만, 가르치지도 않으.. 아니 못하면서 말이다. 목회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세미나는 요즘 뜨는 유명한 사람들이 강사로 찾아오는 세미나 혹은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을 찾는다. 그것도 요즘은 좀 한물 갔나? ㅎ
성도들의 관심이 성경으로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주변에 사이비가 널려 있고, 시대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의식속에는 목사는 곧 성경 전문가라는 생각을 한다. 안타깝지만 사실과 많이 다르다. 신학과 성경교육이 한 배인 것 같은데 다르기 때문이다.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신학은 배우지만 성경에 관련된 전문교육을 받을 기회는 거의 없다. 졸업을 한 뒤 성경교육을 받아야겠지만 부목사나 전도사 시절은 생각보다 바쁘다. 성경은 설교를 위해 필요할 뿐.. 교육을 위해 배운 적이 없는 책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신학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제법 있다. 성경은 가르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왜 그래야 할까? 아니 왜 그럴까? 배우적이 없으니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놈들이 있고, 배운적이 없으니 남의 것 가져다 가르쳐야 하는데 막상 남의 것 가져다 사용하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모른다. 사용하는 방법도 모르는 수준이라면 심각한 것이다. 결국 흉내만 내는 시간 때우기가 될 수밖에 없다.
목회자 성경교육
목회자들은 강좌 처음에 대부분 요구하는 것이 설교에 관한 것이다. 설교는 목회자들에게 쉽지 않은 스트레스다. 왜? 성경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졸업 후 성경연구 기관에서 지속적으로 연구시간을 가진 이들의 스트레스도 뜻밖이겠지만 설교다. ^^ 더 많이 자세히 알려주고 싶어도 시간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한 이들은 밀려드는 설교시간에 넉아웃되기 십상이다. ㅎ
일단 세미나 시작할 때 설교를 위한 학습을 시작해보면 자신들의 한계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확인하게 되고, 결국은 성경을 배우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지만 이는 시간이 제법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목회자에게도 성경을 가르쳐보고 성도들에게도 성경을 가르쳐보니 습득속도는 성도들이 몇 배나 더 빠르고 기억이 정확하다는 사실이다. 신학으로 떡칠한 두뇌는 성경을 배울 때마다 이런 저런 잡생각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기껏 배워서 알았다고 해놓고는 다음에 보면 더 이상한 머리가 되어 돌아온다.
원칙없는 성경교육은 가르치는 이들이나 배우는 이들 모두의 스트레스가 된다. 늘 이런 것이 안타깝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움의 필요를 점점 더 잃어가는 교회들의 모습에서 황폐한 에스겔 골짜기를 생각한다.
성경을 배우는 목회자들이 놀라는 것은 배움이 새로워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그동안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가를 발견할 때이다. 설교는 성경이 아니라 연설일 뿐..
머리 식히러 영종도에 갔다가 전망좋은 카페를 만나 한 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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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관심이 무엇이 되어야 할까?
더 많이 전도하는 교회, 궁극적으로는 더 큰 교회, 여기서 더 나아가 많이 (해외)선교 더 많이 하는 교회, 더 많이 지교회를 세우는 교회, 그리고 여유가 되면 적당히 지역사회에 참여하여 사회적 지주가 되는 교회.. 단지 교회만 아니라 원래 조직이란 생존본능과 함께 스스로 더 자라기를 지향한다. 그것이 교회이든 아니면 기타 다른 조직이든 조직이라는 이름 자체가 유기체적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본래 교회는 머리가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엄밀히 목회자가 머리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목회자의 머리에 그리스도가 존재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일 수 없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조직의 특성이다. 어떤 목적으로 구성되었든 조직은 스스로 생존을 위해 존재하고 움직인다. 조직은 지능적으로 발전하게 되어 있다. 교회가 성장하기를 꿈꾼다면 바로 그 조직의 생존본능을 깨우는 방법이 최고라 할 수 있다.
진정한 교회의 관심은 외적 규모의 성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이 확장되고, 그의 의지가 성도들의 삶에 나타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도 바울은 전도자로서 이방인들에게 자신이 깨닫게 된 하나님의 비밀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를 던지며 살아간 사람이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성도가 다 사도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복음이 구현되고 하나님의 나라, 곧 그의 의지가 성도들의 삶에 퍼져나가야 한다. 규모는 두 번째 문제이고 내적 충분 조건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목회자의 구호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교회가 바람직한 교회라는 착각에 빠지는 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와 거리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될까? ㅠ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여야 하고 교회는 이 땅의 모든 곳에 하나님의 통일성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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