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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고전 묵상카드 09

    • gtbc (gtbckim)
    • 2025-04-21
    • hit1275

    사역의 역할

    직분은 같아도 각자의 사역이 모두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각 사역자들은 사역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교회사역이라는 동일한 현장에 있어도 사역의 방식이 동일하지 않고, 환경이 같지 않고, 목표가 같을 수 없다. 전임목회자가 하던 일이 후임 사역자를 만나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사역은 사역자 각 개인이 품고 있는 비전과 성향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다양성을 부정하고 비교우위, 혹은 비교하위를 논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역자와 사역지가 가져야 할 일관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성도를 가르쳐서 지식적으로 성장하게 하며 신앙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사역자 홀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무모할 수 있다. 체계가 없고 목료를 향한 전략이 없는 사역은 늘 다람쥐 쳇바퀴와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될 뿐이다.

    사역이라는 이름과 역할은 모두 좋은 일일까? 아니다. 책임도 그만큼 무겁고 훗날 하나님 앞에 그 책임에 대한 통감을 느끼게 될 날이 이를 것이다. 심지어 사역의 부실함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생명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헛된 길에서 허우적거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필요하다. 바울은 믿는 자들의 공적을 말하고 있으나 사역자 역시 이 공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어쩌면 더 심각한 책임에 직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성전

    우리는 모두 건물이 성전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습관처럼 건물성전을 말하게 된다. 건물이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건물이나 집기를 지나치게 성물화 하여 성도들이 우상숭배의 습관에 젖게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의 모임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지 말해준다.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전이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과 함께 있다는 말씀이 상징하는 바처럼 말이다. 서로의 직분이 아닌 역할과 존재를 존중하고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습관과 훈련이 필요하다. 개개의 교회는 일단 건물과 조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조직의 최상단에 존재하는 목회자의 역할과 책임은 외적 규모의 크고 작음이 아닌 성도의 성장과 성숙에서 가치를 발하게 된다.

    하나님의 성령이 아닌 목회자의 권위가 앞서는 공동체는 일단 매우 위험하다. 섬김과 필요의 조건이 되어져야 할 조직의 탑 구성원이 누림과 권위의 상징이 되는 것은 본래 교회의 기능으로부터 매우 멀어져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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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고전 묵상카드 08

    • gtbc (gtbckim)
    • 2025-04-18
    • hit1343

    육신에 속한 자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던 날들을 추억하며 밥이 아닌 젖으로 먹여야 했던 기억들을 언급한다. 여기서 말하는 젖은 무엇이며, 밥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젖을 먹는 아이는 먹는 것을 소화시킬 능력이 부실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고, 밥으로 먹일 수 있는 자는 말씀에 대한 분별력과 응용력을 가진 사람들로 이해할 수 있다. 가르쳐 주는대로 듣고 그것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밖에 없고 그것만 아는 사람들이 젖으로 먹이는 자로 비유된다. 그들은 자신이 배운 것과 들은 것 외에 다른 것에 대하여 도무지 신뢰할 수 없을만큼 분별력이 떨어지는 이들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런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경우일 수도 있으나, 배운 것이 없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릴 수밖에 없다. 공동체 안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공동체의 하나됨이 매우 어렵다. 

    동역자

    성도는 서로가 동역자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생각과 달란트가 있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격려하며 존중하는 자세가 있어야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을만큼 고집스럽게 자기 주장에 집착하는 이들은 다른 사람을 적으로 돌리기도 한다. 고린도 교회는 각자가 주장하고 따르는 이들을 따라 분쟁과 분파가 나누어졌다고 말한다. 바울의 안타까운 심정은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그들이 내세우거나 비난하는 인물들은 모두 복음을 위한 둥역자라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 대한 마음이 그래야 할 것을 가르친다.

    최근 한국교회는 정치인이 사도처럼 존중받는 시대가 된 것 같은 부끄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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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고전 묵상카드 07

    • gtbc (gtbckim)
    • 2025-04-16
    • hit1317

    하나님께서 보이신 성령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이셨습니다. 그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신 분이십니다. 어쩌면 통달ἐραυνᾷ erauna이라는 표현은 serchs, investgate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까지 살피고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의지를 가장 잘 전달해주시는 분이 성령이신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영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주어진 것들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람의 가르친 지혜의 말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을 말하게 됩니다.

    오늘날 성령께서는 주신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육적인 사람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육에 속한 이들은 하나님의 의지를 따라 깨닫기 보다 사람의 욕심을 따라 이해하려는 이들도 많습니다. 믿는 자들은 영적인 일을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게 됩니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구분치 못하면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말씀을 이해하게 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어리석게 보기도 하고, 영적 분별력이 없어 하나님의 일들을  받지 아니합니다.

    영적인 사람

    하나님의 영에 속한 사람은 주의 마음을 알고 주를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지혜를 가르치는 자들이 아니기에 육에 속한 어떤 이들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성도인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을 드리신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을 닮아 가는 이들이 성도이며 교회입니다. 교회가 세상 것에 치우치는 순간 그곳에 성령께서 계실 공간이 사라집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주신 지혜를 묵상하며 주의 의지를 따라 행하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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