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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 사고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며 기존에 가졌던 사고와 습관을 따라 읽는다는 것이고, 이는 무비판적으로 성경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지난 번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말씀에 대하여 자기의 욕망과 의지에 대한 절제와 죽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읽었고 그렇게 알아왔습니다. 다시 구문을 살피며 내용을 읽으며 다른 의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TS를 한 번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날 것에 대해 말하다가 죽은 자를 위한 세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 세례를 받는 그들이 어찌하여 세례를 받겠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새로운 발견? 묵상?
두 번째 내용이 그런 것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대적하는 이들로부터의 위험을 감수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처럼 날마다 죽는데, 그것은 너희에게 속한 자랑이라고 말합니다.
세례는 죽음과 거듭남을 의미하고 죽은 자를 위한 세례는 세례를 받는 자신이 죽은 자를 위한 세례를 받음으로 자신이 죽고 죽은 자의 부활을 기대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바울의 날마다 죽는 그 죽음은 자신을 위한 죽음이 아닌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진 '너희에게 속한 자랑'의 부활을 두고 날마다 죽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자랑의 부활을 위해 날마다 죽는다는 의미라는 것이죠. 그것이 무엇일까요? '자랑?'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본문을 살피며 단지 바울 자신의 육신의 욕망과 의지를 죽이는 것이 아닌, 죽은 자를 위한 세례를 받는 그들처럼 누군가의 자랑을 위해 날마다 죽는 자신의 모습을 말하고 있음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읽는 성경을 무심코 읽으면 사소한 차이가 아닌 상상 이상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좀더 정리하면 좋을 것 같아서 일단 여기서 종료합니다. 퇴장할 시간이 되기도 했구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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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만 본다
생각도 없이 사는 것은 아닐지라도 몇 가지 정기결재문자가 늘 뜬다. 때론 무엇을 가입했는지도 모르게 금애기 빠져 나갔다는 문자를 보며 시간날 때 점검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디에서 무엇을 신청했는지도 모르는 금액들이 빠져나간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지만 너무 우랫동안 방치해 둔 것같아 오늘 작정하고 확인해보니 세상에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쑥,쑥 카드에서 뽑혀 나간 것을 확인했다. 어디서 어떻게 해지해야 하는지를 인터넷으로 뒤적거린 후 찾아서 일단 몇 가지 해지는 해두었지만 여전히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가입한 것인줄도 모른 채 기부(?)만 한 것이다. 나처럼 이렇게 영문도 모르는 기부자들 때문에 돈 버는 기업들 꽤 있을 듯하다.
이런 것도 있다.
요즘 몇 가지 약을 먹고 있는데, 약인지 식품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눈에 벌레가 나는 것 같은 비문증 때문에 먹는 약도 있고, 또 이런 저런 부실한 요소들로 인해 먹는 약들이 있는데 모두 sns광고에서 얻은 정보로 구입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꽤 지출했다. 돈 없다고 하면서 하나 둘 구입하다보니 종류가 많다. 실제 효과가 있는 것도 있지만 전혀 효과가 보이지 않는 것들도 계속 구입해서 복용하는 것이다. 혹시 언젠가 효과를 보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일 것이다.
신앙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우리 신앙적 행위도 거의 생각없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파악이 되지 않는 것들 말이다. 하기사 성경을 이해하는 것도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 채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알아서 해석하고 은혜롭게 해석하면 된다는 무개념 신앙으로 사는 것이다. 다 그렇게 하는데 우리라고 특별히 다를 것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아무 문제 없었으니 애써 문제 삼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좋은게 좋은 것은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공동체 안에 깊게 뿌리내린 것이 너무 많다. 안타깝지만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일 수도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구호속에만 존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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