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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림] 일대일 강좌 시행중

    • 관리자 (gtbc)
    • 2020-06-23
    • hit1087

     

    온라인도 오프라인도 진행
     
    일대일 학습은 두 시간을 기본으로 합니다. 
    온라인 강의는 예약이 잡힌 경우는 두 시간 가능하지만 
    예약이 잡히지 않은 경우는 40분 하고 다시 40분 진행해야 합니다.
     
    온라인 학습의 경험으로 볼 때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온라인 강의에서는 파일을 주고 받기 때문에
    영상은 패드로 보시고 작업은 노트북으로 하실 것을 권합니다.
     
    이제 학기의 때가 차신 분들은 조금 심도있는 강의에 접근하게 됩니다.
     
    오늘은 김영수 목사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구문의 구성원리와 헬라어를 살피는 방법에 대해 보았습니다.
    초보학습을 할 때는 어렵게 생각할 수 있어서
    문법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형식적으로 다루고 지나가지만
    이제 몇 분은 
    충분히 구문의 심도있는 영역까지 접근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원어를 다루면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제가 그렇게 어려운 거 다루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원어의 기본원칙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기에
    처음은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목사님들께서는 살짝 어렵기도 하지만
    매우 유익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저도 가능하면 쉽게 설명하려고 합니다.
    헬라어를 모르던 사람도 이렇게 공부하다 보면
    헬라어에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 분명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전문가 영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다들 느끼시겠지만 다른 곳에서 배우기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 연구가 성도들에게 접근될 때는 
    매우 쉽고 유익하며 흥미로운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원어를 보면서 구문과 문맥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여기 말고 어디가서 
    이런 학습을 할 수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이번 주 아직 빈자리가 있습니다.
     
    목요일입니다.
    신청하시는 분이 우선입니다.
     
    최고로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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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서] 구문이 왜 필요할까?

    • 관리자 (gtbc)
    • 2020-06-18
    • hit1105

     

    성경의 구문
     
    신학생을 비롯해 일반인도 성경의 원어에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흔하게 사용하는 언어도 아닌데다 심지어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사어死語라는 것도 문제다. 
    열심히 공부해봐야 사용할 곳도 없고 써먹을 수 있는 언어도 아니니 아무래도 접근하기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알지도 못하는 단어의 변형을 기억하기 위해 외우고 따져보아야 할 것도 많다.
     
    하지만..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외우지 못하면 보고 이해할 수만 있어도 되지 않을까?
     
    우리가 한글의 방식으로 옮기며 성경을 만들 때도
    우리 가운데 헬라어에 정통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아이러니..
     
    그래서 대충.. 영어의 문법을 참조하고 
    몇 가지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특징적 요소들을 참조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성경이 **성경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이것이 구문을 이해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성경을 바르게 보도록 역할을 했던 것은 분명하다.
     
    구문을 알고 성경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크고 놀라울 정도이지만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는 이들이 쉽게 느끼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의 구문성경이 던져 준 희망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구문을 넘어 선 연구
     
    하지만 구문만 안다고 해서 본문의 의지를 
    정확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문장을 구성하는 것은 구문이라는 방식을 활용하지만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은 
    이런 구문의 연결방식을 활용하는
    문맥과 언어의 구조적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문과 또 다른 영역이 된다.
     
    따라서 전문적인 연구자가 될 것이 아니라면
    한글로 작성된 구문성경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겠지만
    좀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구문의 방식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이것들이 연결되는 문장의 전개방식인 문학적 장르에 대한 이해를 가져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학습자들에게 복잡해지는 면이 있어서
    이렇게 말하게 된다. 
    "우선은 단순히 구문의 원리만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사역자들은 어쩔 수 없이 혹은 자발적으로 원어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입하고 활용하기도 하지만
    사실 사역의 현장에서 원어를 볼 일도 많지 않아 
    구입은 했어도 실상 사용하지 않는 사역자들이 많다.
     
    가격이 비싸기는 또 왜 그리 비싼지..
     
    하지만 
    감사하게도 자신만 부지런하다면 
    시중엔 성경의 원어를 무료로 볼 수 있는 여러 기회가 주어진다.
    예전엔 영어로 된 프로그램들이 주종을 이루었지만
    최근엔 한글로 문법과 단어설명이 된 프로그램도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성경을 살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충분히 있다. 당시의 언어로 기록된 성경을 읽는다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그 시대의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성경을 기록한 사람의 감정과 의도를 읽고 깨닫는데 매우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 문제다.
     
    전문적으로 원어를 공부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단지 단어의 뜻풀이 정도에 익숙한 사람들은 
    힘들여서 구문을 확인하려 하지 않는데다
    구문을 공부해보지 않았으니 저자의 생각이나 
    언어의 특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경험해보지 않은 지도자들이 성경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실제로 문제가 없었을까? 정말 그들이 생각하는 잘 해온 것이 맞는 말일까?
     
    우리나라의 교회와 신학의 현주소를 알고나면
    우린 쉽게 그런말을 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수많은 사이비를 양산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꾀임에 넘어갔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그렇게 망가져 가야 문제가 있다고 말할 것인가..
     
    우리의 믿음이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펼치기에 충분한가..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이것이 가능하다는 말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성경의 구문은 잘난척 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와 올바른 소통이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다.
    제멋대로 해석하고 제멋대로 풀어내는 사이비를 예방하는 중요한 원칙이다.
     
    오늘도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를 확인해 간다.
    거기엔 구문과 문맥이 작용하고 성령 하나님과의 영적 소통이 함께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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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서] 보혜사

    • 관리자 (gtbc)
    • 2020-06-11
    • hit1273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크레토스라고 표기됩니다.

    파라(옆)+크레토스(돕는자, 변호자)라는 말이 결합되어 구성된 단어입니다.

    아래 표 오른쪽을 보시면 신약성경에 다섯 번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혜사라는 말을 성령님의 또 다른 명칭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시니 성령님 말고
    또 다른 보혜사가 계시다는 뜻일까요?
    그렇다면 그 또 다른 보혜사는 어떤 분을 의미할까요?

    요한일서 2장1절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여기의 대언자는 아래와 같이..

     

    파라크레토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모두 파라크레토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일이 있을까요?

    하나님 곁에서는 보혜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는 보혜사 성령께서... ^^

    오늘도 참 좋은 하루가 되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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