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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다른 복음을 좇아

    • gtbc (gtbckim)
    • 2025-09-24
    • hit1726

    흔들리는 교회

    성도들이 미혹되었거나 호기심이 발동하여 사이비교육에 참여하였다는 것은 교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밖에도 그런 성도들이 상당히 많다. 최근에 정치적인 문제들로 인해 사이비 단체들이 자주 언론에 노출된다. 그들이 꿈꾸고 바라는 것이 하늘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미혹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대부분 교회로부터 이탈한 사람들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의 크기는 기존 교회가 가진 그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나타낸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가진 복음과 다른 목적과 성향이 정치라는 이슈를 통해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와중에 교회의 지도자들조차도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

    설교가 핵심이 되면 위험

    대부분의 목회자가 설교에 집착하고 예배의 중심이 설교라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분명한 것은 설교는 성경교육이 아니다.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설교시간인 것은 맞지만 설교는 성경을 빌려 해석된 설교자의 생각이다. 예배의 핵심이 설교라면 그 설교에서 목회자의 생각이 앞장서게 되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말씀과 의지가 드러나야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상 정치를 바꾸려 하시는 분은 아니다. 어떤 환경속에서도 주의 말씀으로 굳게 세워져야 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어야 하는 것이다. 설교가 핵심이 되기 위해서 먼저 설교자가 하나님의 의지를 따라 사용되고 있는가의 여부가 확인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확인을 투명하게 할 수 있는 기관도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설교는 예배의 핵심이 아니라 삶이 예배가 되도록 돕는 역할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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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림] 일박이일 홍천에서

    • gtbc (gtbckim)
    • 2025-09-05
    • hit1853

    홍천에 가다

    여러 이유로 홍천을 가지 못한지 1년하고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처음 홍천에 발을 디딘 것이 아내의 암진단으로 인한 방황 때문이었다면, 이제는 상상할 수 없는 주의 은혜를 얻은 현장으로 가는 기쁨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동병상련의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났고, 동일한 소망과 꿈을 갖고 그곳에서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제 남은 사람은 우리 뿐이라는 안타까움과 아픔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떠났고, 담담히 죽을 날을 받아들이며 죽을 때 죽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죽을 날을 기다리던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생각입니다. 살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마는 그것이 우리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기에 시한부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드리려 했습니다. 기왕이면 닥터의 의학적인 그 생각보다 통증이 없이 조금 더 길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젠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홍천을 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연장시켜주시고 건강을 회복하도록 허락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갑니다.

    보통 두 달에 한 번 정도 물을 길러 다니다가 고양의 농장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무려 1년을 넘겨 긴 시간을 찾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개한 분들은 꾸준히 그곳을 찾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도 불필요한 핑계로 정작 해야할 일들을 너무 미루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기에 이번에 올라가서 마음의 다짐을 새롭게 하고 내려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시 늘 그랬던 것처럼 오랜만에 찾은 홍천이 너무 아름답고 좋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폭포 위쪽 물가에 가서 한동안 물멍을 즐겼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가면 대화와 잡담에 빠져 즐겨야 할 것들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첫 녹화

    일단 녹화는 일인 독백영상으로 시작해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이상했지만 마침 손님이 아무도 없는 기회를 빌려 녹화를 시작했습니다. 본관의 불꺼진 메인홀에서 어색한 미소로 시작한 영상을 몇 개 연달아 찍었지요. 한 번, 두 번 거듭 찍어가면서 표정에 약간 자신감도 붙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봐야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그곳에서 만났던 우리보다 먼저 가신 분들 앞에서의 다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으름 떨지 말고 주어진 시간을 성실히 살다가 가겠다고 말입니다.

    일인싯점의 짧은 영상 몇 개 남기고 잠자리에 들어갔습니다. 올라가면서 몇 잔 커피를 거푸 마신 탓인지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으나 아무튼 잘 잤습니다. 두 번째 날 다시 물가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기 전 펜션을 운영하시는 장로님 부부와 목사님 부부 함께 근처 새로 생겼다는 카페에 가서 멋진 풍광과 함께 유쾌한 담소를 나누다 돌아왔습니다.

    첫 녹화를 시작으로 좋은 강의들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큽니다. 기도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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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제] 홍천에서 다시 마음을 다지고 있습니다.

    • gtbc (gtbckim)
    • 2025-09-02
    • hit1763

    해발 850미터 고지에 위치한 홍천 광원리 아름다운 마을에 2023년 11월에 아내, 그리고 딸들과 함께 다녀가고 오랜만에 홍천 아름다운 마을을 찾았습니다. 특별히 바쁜 것 없어도 이런 저런 일에 분주하며 마땅히 해야 할 연구에 게으름을 피우게 되었으나 요즘 강의의 압박에 쫓기는 일이 없다보니 크게 아쉬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나 봅니다. 어느날 보니 몇 개월이 후딱 지나가고 갑자기 국민연금 신청서를 받으니 아찔해지더군요. 이제 드디어 가야할 때가 다 된 것 같다는 생각이라 할까요? ㅎ

    홍천에 온 것은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연구사역에 집중하기 위한 전환점으로 삼고 싶어서였습니다. 여전히 하늘은 푸르고 아름다움이 꿀처럼 뚝뚝 떨어지는 공간입니다.

     

     

     

     

     

    뭐 제가 연구자로서 딱히 남길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까지 해왔던 연구의 마무리는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의 문맥을 이해하는 방식인 TS를 개발하고 난 뒤, 매우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반응이 많았으나(특히 신대원생들로부터) 그 숙달과정을 끝까지 마치는 이들이 많지 않아 그냥 너무 어려운가보다 하며 강의를 접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구문을 이해하였다면 우리가 정리한 구문성경만으로도 쉽게 본문을 정리하고 연구 할 수 있는 방식인 TS가 사역자들에게 왜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신학을 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문법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이것을 어려워 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뜻밖의 발견

    신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 일반인들이 힘들어 할 것이라 여겼던 구문, 곧 원어의 문법 이야기를 일반인들이 더 쉽게 접근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기실 알고보면 영문법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성경을 신학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문맥으로 이해하는 것이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설명할 때마다 깜짝 놀라는 사람들은 뜻밖에도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다른 방식, 곧 당시 기록된 문학적 방식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 것입니다. 의미와 묵상에 집착하던 이들이 마치 스토리텔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은 너무나 생소하게 보인다는 것이죠.

    고민

    그러나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연구를 할 사람은 연구를 하고 연구가 되지 않는 사람은 들어서라도 알 수 있게 해야한다는 사명감이라고 할까요? 신학은 서로 이해를 달리하는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문학적 이해는 서로 다르기 쉽지 않습니다. 일단 부분에 매이지 않으면서 저자의 생각을 읽어나갈 수 있기에 좀더 다이내믹하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더해주시기를 간곡히 기도하면서 여기 홍천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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