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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림] 내일은 사역자 타임

    • 관리자 (gtbc)
    • 2020-07-20
    • hit1141

     

    사역의 구분
     
    아무래도 목회자는 일반 성도들의 수준과 동일할 수는 없다. 
    잘하든 못하든 신학교에서 성경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직접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구의 수준이 더 좋으냐의 문제로 논의한다면 당근 훈련을 받은 사람이 백 번 더 낫지 않겠는가.
    물론 간혹 신학교를 졸업했어도 제대로 학문을 익히지 못한 사람일 수 있으나
    모두가 그렇다고 확신하는 것은 어쩌면 무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을 더 많이 배운 것이 사역을 위한 수고의 과정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특별한 위치에 서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말씀을 전하는 사역에 있어서 만큼은 존중받고 인정 받아야 하며 
    가르치는 사역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교회가 가져야 할 자세인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교회 안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것이라는 면에서도 틀림없지만 
    문제는 모든 시선과 역할이 그에게 집중된다는 것은 
    목회자로 하여금 사역의 정상적 위치를 걷게 하기 힘들게 한다.
     
    사역자를 위한 시간은 이런 종합적인 검토 위에 집중하게 한다.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에 중점을 두고 
    기타 교회 사역에서 주의하거나 특별히 관심 가져야 할 부분에 대해 서로 담론의 기회로 삼기도 한다.
     
    매우 필요한 영역이다.
     
    사역의 방향이 워낙 다양하고 풍부하기 때문에 
    교육원이 모든 것을 다 다루거나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역의 독특한 부분들을 인정하고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성경교육이라는 방향 외에 
    너무 지나치게 광범위한 부분을 터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육원의 과정을 이수하는 분들 중 성도들이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각교회공동체 안에 평신도 리더급에 해당된다.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서 역할을 해야 할 분들이다.
    중간 리더로서의 역할도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성도들을 이끄는 리더로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 할 수 있다.
     
    교회 공동체가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온전히 목회자만이 할 수 있는 일로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목회자는 가르치는 일을 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교육체계를 지도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성도들을 성도들이 가르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역할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많은 공동체들은 교육은 목회자, 
    행정적 도움은 중간관리자라는 암묵적인 룰을 정하고 있다.
     
    초대교회의 집사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이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전도를 한다는 것은 단지 데려오는 것만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성경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성경을 잘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는 것은 중간관리자의 기본적 자질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목회자를 올바로 보조하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칫 지도자의 실수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요소들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게 된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니..
    그리스도의 의지와 뜻을 따르는 것은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목회자의 역할이 설교와 가르치는 일에 집중되는 것처럼
    성도들의 역할도 역시 행정적 보조 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일에도 동일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중간관리자도 말씀을 가르칠 수 있도록 
    그들을 지도하고 돕는 역할은 역시 목회자의 역할이다.
     
    모두가 동일한 목적을 가지되 역할에 있어서 조금 세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역자가 그런 역할을 감당하도록 돕는 시간이 내일 사역자 타임이라는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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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서] 목회자 버전 로마서

    • 관리자 (gtbc)
    • 2020-07-14
    • hit1135

     

    구분된 버전
     
    구문으로 할 수 있는 학습의 영역은 매우 다양하기도 하지만 깊이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구문설명부터 시작해서 성경을 보는 방법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루게 됩니다.
    목회자에게만 강의할 때는 몇 가지 영역을 두고 강의를 했었지만
    일반 중직들의 참여로 인해 좀더 쉽고 유익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진행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느끼시는 것 그대로 
    일반 성도들의 욕구와 기쁨은 목회자들의 그것과 좀 다른 면이 있어서
    아무래도 본문읽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문 읽기는 읽는 것을 통해 저자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문장 행간에 담겨 있는 저자의 생각을 읽어내고
    그와 함께 탄식도 눈물도 또 때론 기쁨을 공유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 버전은 구문을 이해하므로 
    본문의 의지를 스스로 찾아가게 만드는 것이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하면 
    머지않아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게 되니
    어쩔 수 없이 처음은 일반 성도들의 레벨로 접근하게 됩니다.
     
    목회자 버전
     
    그러나 엄밀히 목회자 버전이라고 해도 역시 아직은 수준을 따라 
    그 레벨을 달리할 수밖에 없지만 현재는 인재육성기간이어서
    거의 비슷한 수준에서 출발하게 되고 진도도 비슷하게 진행됩니다.
     
    그러나 이제 적절한 시기가 오면
    그 사이에서도 레벨이 갈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틀림없이 그런 날이 올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 목회자 버전은 좀더 세밀히 본문을 관찰하며
    본문의 말하려는 내용과 의지가 무엇인지 확인하게 되고
    문법적 근거는 무엇이며 문맥의 흐름이 어떻게 전개되고 될 것인지 아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파악한 본문으로 설교개요를 작성하면서
    설교가 본문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진도는 조금 느리게 나갈 수밖에 없지만
    제대로 알아가는 즐거움은 틀림없이 있을 것이며
    특히 한 편의 설교가 어떤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성도들과 함께 하면서 그렇게 가는 것은
    쉽게 지치게 만들 수 있어서 시도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함께하신 두 분 목사님의 만족도는 꽤 높은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렇지요? ^^
     
    아무튼 이제 조금 업그레이드 된 방식을 진행하게 된 것은 저로서도 반갑고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도 수고하셨고 저 역시 즐거움이 있습니다.
    복음의 위로와 기쁨이 그득한 저녁들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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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서] 구문으로 하는 설교개요 평가

    • 관리자 (gtbc)
    • 2020-07-13
    • hit1166

     

    구문으로 설교개요 작성
     
    구문으로 본문연구를 마친 뒤 
    설교를 작성하는 방식을 요청하는 노회가 있습니다. 
    이런 자리는 
    같은 노회 목사님들께서 모이니 좀더 분위기도 좋고 친근감이 있어서
    서로가 발표를 하거나 질문을 할 때도 좀더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좋습니다.
     
    설교개요를 만들 때까지 함께 지켜보는 것도 좋지만
    직접 만들 수 없다면 들을 때는 아는 것 같아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증세가 있어서 
    어느 정도 구문에 익숙해진 뒤 본문 강의를 하기 전
    먼저 각자 설교개요를 작성해보도록 했습니다.
     
    처음 반응은 그 짧은 시간동안 
    어떻게 설교개요를 준비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본문 파악이 끝나면 
    설교개요 만드는 것은 10분이면 충분합니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좀더 문구를 세련되게 만들 수 있거나
    약간의 순서를 조정하는 정도는 있을 수 있어도
    초기에 작성한 개요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첫 주는 제대로 작성하지 못해 곤혹스러워 했지만
    그 본문으로 제가 직접 설교작성하는 방식을 시연하고 난 뒤
    그 다음주에는 각자 나름대로 알아서 작성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방식의 연구를 가장 먼저 요청했던 지역은
    천안지역 개혁측 목사님들이셨고
    모임을 가질 때마다 그 열정이 대단한 분들이셨습니다.
     
    서로다른 설교개요
     
    각자 설교개요를 작성해서 제출하시면 제가 노트북에 옮겨
    누가 작성한 것인지 알려드리지 않고
    빔 프로젝트로 투사시켜 모두가 확인해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수정할 부분이 보이면 지적해 보라고 하죠.
    자신도 설교개요를 제출한 상태여서 섣불리 지적질을 하지 못하겠지요?
    그렇습니다. 
    서로 문제를 지적하기 보다 "좋은데요?"라고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좋은 현상일까요?
     
    아무도 지적하지 않으니 
    투사된 설교개요의 문제를 하나씩 체크하면서
    왜 이런 생각이 나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본문이 말하려는 것인지도 역시 체크해보게 됩니다.
     
    체크가 늘어가면서 제출된 설교개요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두 걱정스런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봅니다.
    투사된 것이 도대체 누구의 설교개요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서로 눈치만 살피며 다음 사람 것에 대한 긴장감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두 번째 투사된 설교개요를 보면서
    전혀 다른 제목과 개요의 방향을 보게 됩니다.
    또 다시 이 설교개요에 대해 지적을 해보라고 합니다.
     
    첫 번 지적을 들었으므로 이번엔 문제제기가 나옵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뒤에 이렇게 토를 답니다. 
    "..일 것 같은데요?"
    "..라고 생각합니다만.."
     
    또 다시 강사의 체크가 시작되고 드러나는 문제가 동일합니다.
    본문이 말하려는 것인가의 문제가 드러나게 되고
    논리적 구성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설교들의 문제가 드러납니다.
     
    이렇게..
    하나 둘 시작해서 열 댓 명의 설교를 하나씩 모두 체크했습니다.
     
    다들 놀라기 시작합니다.
    동일한 본문으로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터무니 없는 설교개요를 만들게 되었는지..
     
    사실 그 분들은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설교를 준비해온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몇 번 정도만 이렇게 해드려고 했지만,
    한 학기 내내 이런 강의를 하게 된 것은 
    목회자들의 요구와 현장성이 맞아 떨어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원장님은 설교를 어떻게 들으시나요?
     
    제 강의를 들으신 목사님들께서 제게 하는 질문입니다.
    이런 것을 하고 있으니 다른 분들의 설교가 성에 차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겠지요?
     
    그러나 실상 제가 설교를 들을 때는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실을 믿지 못하는 분들은 곧바로 "에이~"라고 반응하십니다.
     
    사실입니다.
    제가 예배에 참가할  때는 설교평가를 위해 참여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설교는 아는만큼 나오고 배운만큼 나오고 훈련된 만큼 나옵니다.
    그런데 제게 배운 것도 아니고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이 그 수준에서
    자신의 생각과 또 현장을 고려해 만든 설교에 어떤 토를 다는 것은 의미없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는 그저 설교에 집중하고 있을 뿐입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도무지 수준차가 안맞는다고 대화를 중단하지 않는 것처럼
    설교가 시작되는 순간 그것에 집중할 뿐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설교에 은혜를 받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제게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제가 설교를 하면 굉장히 잘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흔한말로 죽쑤는 날이 종종 있어서
    남의 설교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하지는 않습니다.
     
    전 단지..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일 뿐이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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