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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 교회 지도자

    • 관리자 (gtbc)
    • 2020-08-16
    • hit1299
    지성과 영성의 무게
     
    교회에서 신앙은 지성보다는 영성이라는 영역이 더욱 각광을 받는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여러 비난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부흥회 등을 통해 성경의 영적해석이라는 행위도 한동안 시대적 흐름처럼 인식된 적이 있지요.

    물론 교계가 여전히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과연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영의 생각이라는 것이

    일부 목회자들이 주장하는 그런 허무맹랑한 영성발언과 일치하는 것인지는

    확인해보면 곧 드러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가장 은밀한 것처럼 인식되고

    신령한 것처럼 인식시켜 무지한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도록 이끄는 

    엉터리 리더십의 유혹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계 지도자에게 문제가 발견될 때 

    그들은 이런 영성을 빌미로 교묘히 빠져나가려 합니다.

     

    성경에 대한 지적 깨달음이 없는 영성이란 정말 무서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성도들이 이런 영역에 지나치게 무지하도록 만들어 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성은 이런 무당의 독선과 권위적 행위들을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최근 교회의 지도자를 자청하는 분들이 저지르는 일들이

    수많은 성도를 이념의 투쟁현장으로 내몰고 

    이것이 곧 하나님의 명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의 동참을 촉구합니다.

     

    광복절에 광화문을 가득채운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안타까움입니다.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 영역을 가르고 성도들을 어느 한 편으로 몰고다니며

    마치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의지와 뜻을 아는 것처럼 호도하지만

    이런 방식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친 영역이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성도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정치적 사고는 각자 다를 수 있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 수 있지만

    교회적 입장에서 목회자가 선도하고 리드하는 것은 

    명백히 신앙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대통령을 빨갱이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좀더 사실대로 말하면 

    그런 주장을 하는 교계지도자의 선출이 더 빨갱이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성도들은 이런 사실을 모를까요? 

    엉터리 영적권위라는 허울로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시대를 사는 신앙인들은 모든 것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설픈 교회 지도자들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신앙적 올바른 성숙을 위해서

    편향된 선동과 영성을 부르짖는 이들로부터 거리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면하며

    그 속에 담긴 저자의 의지와 생각들이 무엇인지 알고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가 거대해지고 교회가 사회적 힘을 행사할 능력을 가지니

    하나님도 필요없는 집단적 힘을 과시하려는 자리에 서고 있습니다.

    마치 사이비 집단이 하던 방식을 그대로 빌려오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힘으로 위장하려 하지만

    천만에 만만에 이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이라 할 수 없습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지도자들의 뒤에 서서 무지한 추종자가 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참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되 제대로 배워야 할 때인 것은 분명합니다.

     

    거룩한 주일의 아침에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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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림] 미리보는 학습내용

    • 관리자 (gtbc)
    • 2020-08-14
    • hit1134
    분사구문의 활용방법은 이미 알려드린 것이기에 이번엔 부점의 기능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이 본문의 이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하여 좀더 심층적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멋진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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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서] 아는 것만큼 보입니다.

    • 관리자 (gtbc)
    • 2020-08-12
    • hit1308

     

    성경을 읽다가 궁금증이 생길 때 찾게 되는 것이 간단한 주석이 첨부된 성경일 것입니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을 때는 목회자라면 주석들을 뒤적이게 될 것이고 일반 성도라면 누군가에게 질문을 해서라도 알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명쾌하게 해석이 되지 않을 때가 꽤 많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믿음으로.. 라는 생각으로 궁금증을 접어버리는 경우도 없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단어의 뜻이 궁금할 때도 있고, 문장의 의미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간혹 문맥의 이해가 되지 않아 도대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해질 때도 있습니다. 이 정도면 수준이 있는 분입니다.
     
    한 분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께 묻고 싶은데 물어도 제대로 대답을 얻는 경우는 많지 않고 에둘러 대답을 하는 경우는 돌아서면서 그냥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질문의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 간혹가다 인터넷에 "이것이 알고 싶어요"라는 질문을 남기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고맙게도 다양한 사람들이 질문을 달아주니 교회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인터넷에 물어볼 수도 없고, 또 물었다고 해도 즉답이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제대로 답을 얻은 것인지 아닌지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좋은 질문은 건강한 삶을 만든다는 이미지처럼 정말 많은 질문들이 있어야 할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답을 줄 수 없는 질문도 끝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질문을 포기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알 때까지 파고 들어가 알아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GTBC에서는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할까요? GTBC는 성도의 질문을 소중히 여깁니다. 배우지 못했으면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결코 허물은 물론이고 죄도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잘 알지 못할 때는 무조건 믿으라고 말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묻는 것은 더 좋은 믿음을 갖기 위한 것이지 의심이 들어서 묻는 경우가 많지는 않습니다.
     
    학기수업을 진행하다보면 다양한 질문들을 받게 되지만 학기과정이어서 그런지 대부분 본문의 진행과정에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에 대한 질문이 많습니다. 이런 질문은 정말 건강한 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터무니 없는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어니 질문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궁금한 내용의 답을 찾다가 성경 저자의 생각을 알고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성경에 관한 질문을 할 때 설교적인 답변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에 관한 질문의 대답으로 설교적인 답변을 하려고 한다면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문맥속에서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고, 저자는 그런 자기의 마음을 당시의 문학적 배경을 근거로 전달하게 됩니다. 시대적 배경이라고 하는 것은 문화나 관습 같은 것에 관한 이해를 통해 본문의 시대적 백그라운드를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문맥적이고 문학적인 관찰은 저자의 상황과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시원한 마음을 얻게 되는 것은 바로 저자의 생각을 확인하고 공감하게 되었을 때입니다.
     
    GTBC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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