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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로마서 11:1 구문

    • 관리자 (gtbc)
    • 2020-08-27
    • hit1213

    구문학습 - 아래 내용은 컴퓨터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로마서 11:1절의 구문학습 두 번째를 보겠습니다. 종속접속사의 기능은 주절의 내용을 포함한 문장의 이유나 목적 혹은 결과 등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11:1절에도 이유를 나타내는 종속접속사가 있습니다. 주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셨다"는 말을 하면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사도 바울) 역시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임에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사용하시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 증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본래 이스라엘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으니 그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수 없다는 의미로 들을 수도 있겠군요. 여기에 사도 바울은 두 가지를 덧붙혀 말합니다. 이는 둘다 소유격으로 사용되었고 그 앞에 컴마가 붙어 있습니다. 물론 이런 기호들은 원 사본에는 없는 기능이지만, 전문가들이 이런 기호를 사용하여 독자들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컴마 이후 소유격이라면 주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 첫 번째 소유격이 아브라함의 씨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씨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이겠지요? 이스라엘 사람 중에 아브라함의 씨가 아닌 사람이 있었을까요? 물론 있을 수 있습니다. 중간에 이런 저런 이유로 합류한 이스라엘인들이 있으니까 말이지요. 그러나 바울 자신은 아브라함의 씨라는 사실을 강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것을 구문으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아래와 같습니다.

     


    주절은 "내가 말한다"이고 그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릴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오늘 다루고 있는 구문인 이유를 나타내는 종속접속사로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시지 않았다는 근거로 제시하는 본문이겠지요? 더구나 외부에서 유입된 사람도 아닌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자부심일까요? 아무튼 좀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이 갖는 신앙적 관점에서 보는 상징적 의미는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도 역시 신앙적 관점인 선택의 의미로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말하기도 합니다.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 사도바울은 이런 사실을 자세히 설명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사도 바울은 한 가지를 더 추가합니다. 무엇일까요?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과 더욱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가장 확실한 근거로서 완벽한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하나 더? 그것은..

     


    또 하나 소유격으로 기록된 베냐민 지파의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라는 것이 열 두 지파 가운데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어서였을까요? 베냐민은 요셉의 친동생이자 야곱의 막내 아들입니다. 그의 어머니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난산 끝에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벧엘에서 에브랏으로 가는 도중 그를 낳게 된 것이지요. 라헬의 무덤은 아브라함의 무덤이 있는 곳에 같이 있지 못하고 지금의 베들레헴 장벽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다윗을 죽이려 했던 사울왕이 속한 지파가 또한 베냐민 지파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자랑스럽게 언급할만한 일은 아닐 듯한데 사도바울은 종종 자신이 베냐민 지파임을 언급합니다. 도대체 그런 이유가 따로 있었을까요? 완벽한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기 위한 언급일까요?
    아무튼 또 하나의 소유격도 구문에 들어가야 하니 기록하면 이렇게 됩니다.


    이유에 언급된 이스라엘 인으로서 드러낸 두 가지 근거엔 아주 절묘한 특징이 보입니다.
    그 하나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베냐민 지파라는 것인데 이것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보여주는 사도바울의 생각을 읽게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강의시간에 알려드렸으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저자의 생각들은 단 하나도 허투루 기록되지 않다는 것과 또 그것이 갖는 문맥적 관점을 넘은 상징적 의미도 내포한다는 것이 놀랍기도 합니다. 단지 상징적 의미로 머물지 않고 이것이 문맥안에 어떻게 녹아들어가는 지를 아는 것은 신비한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주의 거룩한 은혜가 모든 성도들의 삶속에 그리고 이 땅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자기고집으로 고통하는 세대들에게도 함께하기를 기도하며 오늘의 강의를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GTBC는 교회가 말씀 위에 세워지기를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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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로마서 11:1 구문

    • 관리자 (gtbc)
    • 2020-08-26
    • hit1249

    로마서 11장 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왼쪽의 헬라어 버전을 참고로 확인하고 싶지만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이 계실테니 아래 첨부된 이미지를 참고해서 네번째 라인 문법기능이 표기된 곳에서 동사(V)로 표기된 것을 찾아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래 헬라어 본문에서 1절에 나오는 동사(V)는 4개가 보입니다. 그 중의 하나는 이유를 나타내는 종속접속사 내의 동사입니다. 
    아래 헬라어 이미지 중 한 단어에 표기된 네 개의 라인 중 첫 번째 라인이 영어로 해석되어 있어서 단어해석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첫 번째 동사는 say라는 동사가 나옵니다. 현재 직설법 능동태 1인칭 단수입니다. 직역하면 "내가 말한다"가 됩니다. 
    그렇다면 뒤에 나오는 동사 have.. cast away는 주절이 말한 것을 설명하는 동사이므로 주절이 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동사는 직설법 과거 중간태 3인칭 단수입니다. 
    주어는 God이 보입니다. 명사 주격 남성 단수입니다.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버리셨다"가 됩니다. 누구를? 목적어 "백성"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문장은 뒤에 ; 가 붙어 질문문장임을 나타냅니다. 
    그대로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가 됩니다.

    이렇게 확인된 본문을 구문의 표기방식으로 기록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무엇인지를 표기해야 하니 "말한다"의 아래에 그 내용을 표기합니다.

     

    이런 식으로 정리하는 것은 본문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다 명확히 드러나게 할 뿐만 아니라, 문장 안에서의 서열과 문법적 기능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문장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기능과 역할은 더욱 분명해지게 되고 저자가 생각하고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보다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로마서는 질문과 대답의 형태로 기록된 특징이 많이 드러납니다. 질문이 있으면 답변이 이어지겠지요? 간단합니다. 세 번째 나오는 동사입니다. 문제는 세 번째 나오는 동사가 매우 단순하군요.

    God forbid. 불변사와 함께 표기된 동사는 희구법 과거 중간태 3인칭 단수로 표기되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이니 간단하게 질문과 같은 라인에 배치하면 깨끗하게 정리됩니다.

     


    이렇게 말이죠.

    그럴 수 없느니라의 주어는 단순히 3인칭 단수로 나와있으니 구색을 맞추어 넣은 것입니다. 표기되지 않은 것을 넣을 때는 [ ]를 쓰고 그 안에 넣습니다. 
    구문성경으로 공부하면서 이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본문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유를 나타내는 종속접속사가 등장합니다.

    이 부분은 조금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다음 시간에 한 번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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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서] 로마서 8장 1-2절

    • 관리자 (gtbc)
    • 2020-08-24
    • hit1449



     

    율법아래 있는 자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내용들을 7장까지 지켜보며 왔습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도무지 율법의 정죄로부터 헤어날 수없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본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 중에서도 당시 율법주의자들과 같은 모습을 좇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로마서를 구문과 문맥을 이용해서 제대로 한 번 배운다면 완전히 달라질 것은 분명합니다. 

     사도는 8장에 들어오면서 7장까지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환희에 찬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의 가장 취약한 그리고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인 정죄를 언급하며 시작합니다. 이것이 결코 없다고 말합니다.

    잘 모르는 분들도 한 번 보시면 좋은 원어의 모습입니다. 영어로도 표기된 헬라어를 한 번 볼까요?

    - 자료: 로고스 어플리케이션 캡쳐 -

    no condemnation 그 어떤 형벌도 그 어떤 정죄도, 그 어떤 심판도 없다고 선언하는 내용입니다. 누구에게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입니다. 율법의 정죄가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고통과 절망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단 하나의 길밖에 없음을 먼저 선언하는 것입니다. 7장의 그 탄식 기억하시나요? "내 지체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율법의 행위가 자신을 의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발견하는 자신의 허물과 죄들로 끝없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려나고, 정죄의 소용돌이에서 절망과 좌절의 신음만 토해내게 됩니다. 불뱀에 물려 고통하며 신음하는 이들에게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바라만 보라고 했던 나무에 달린 놋뱀처럼,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라 말하지만 여전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법은 정죄와 심판의 율법과 같지 않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하였다고 선언합니다. 율법아래 있어서 스스로의 행위로 의를 얻겠다는 것은 마치 망망대해에서 조난당한 난파선에 구조헬기가 다가와 내려주는 줄만 잡으라고 말해도 자신이 입고 있는 폼나는 구명조끼가 최고여서 헬기의 줄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구원은 어디로부터 옵니까? 
    여전히 거룩한 안식일인 토요일을 지켜야 한다거나 각종 절기와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일까요? 여전히 이런 소리를 하고 다니는 이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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