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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제] 조촐한 영상학습

    • 관리자 (gtbc)
    • 2020-10-13
    • hit1255

    온라인 영상학습에 두 개의 모니터를 사용합니다. 하나는 강의내용이 담긴 것들이 나오고 다른 하나에는 이렇게 참여하는 분들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강의내용은 아이패드에서 시연하는 것이 무선으로 연결된 것이기도 하죠. 장비는 비록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누가 보면 대단한 스튜디오라도 되는 척 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토요일 영상학습 시간에 두 번째 모니터에 보여진 모습입니다. 개인적으로나 교육원 입장에서도 영상강의를 위한 시간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기록으로 남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바로 곁에서 함께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저야 늘 지중해 야자수 그늘 아래서 강의를 하는 사람이니 가장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네요. ㅋ
    비대면 학습에 대한 막연한 불신 비슷한 것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것의 장점을 알아가는 것이 좀 새롭다고 해야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으나 각자가 소속된 공동체에 대한 좋은 의견이나 정보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봉착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때론 교회가 직진만 하지 말고 잠시 멈춰서서 우리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일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말씀하시는 그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교육원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들이 갖고 있는 문제 못지 않게 교육기관으로서의 문제도 없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 연구원의 개념은 목회자 교육이 중점이었다면 교육원은 그런 한계를 허물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는 한계는 교육원 시스템의 한계보다 제 한계가 더 빨리 드러나는 것 같아서 살짝 고민도 됩니다. ^^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구문의 문제를 다시 수정해야 한다는 압박은 구문을 다시 돌아볼 마음을 갖게 하지 않습니다. 꽤가 발동하는거죠. 이런 게으르고 나태한 모습을 빨리 버리고 다시 발동을 걸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강력한 응원과 기도가 있으니 속히 다시 시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ㅎ

    온라인 학습은 정말 행복한 시간 맞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만들어 온 구문을 다시 검토하는 시간은 괴로운 시간이 틀림 없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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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구문은 문법의 원칙 - 복습

    • 관리자 (gtbc)
    • 2020-10-07
    • hit1330

    구문 syntax

    구문은 문장 단위의 문법적 체계를 의미합니다. 
    하나의 문장을 넘어서 다른 문장이 시작되면 구문의 새로운 시작이 된다고 해야겠지요. 
    문장과 문장의 관계를 설명할 때는 이미 구문의 단계를 넘어서면서 의미단위로 연결됩니다.

    이렇게 되면 구문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관계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해서 연결된 의미관계를 통해 스토리의 구조적 발견과 문맥context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구문의 올바른 이해가 없으면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의미관계에서 균열이 생기거나 비틀어질 가능성이 생기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올바른 문맥이해에 문제가 됩니다.

    문장을 형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지식인 문법적 이해는 저자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게 합니다.
    물론 모든 것이 문법을 기본으로 하지만 때론 문법적 틀 자체가 무너진 문장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파격문장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거나 우리 자신의 문법적 이해가 부족함에서 올 수도 있습니다.

    한 줄의 짧은 문장일지라도..



     


    기본적으로 문법적 요소에 따른 배열이 없이는 문장을 구성할 수 없습니다.
    위의 문장을 우리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행 8:9

    시몬이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사마리아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과 마술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백성들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고 떠들며 다니는 사람입니다. 한 문장에서 여러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썩 고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을 헬라어 구문으로 보면 동사가 하나 있고 분사가 세 개 나옵니다. 서로의 관계를 이렇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그 성 곧 사마리아에 전부터 있는 어떤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름은 시몬이라 하고 마술을 하는 사람이며 그 마술로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사람이 자칭 큰 자라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지적합니다. 즉 겸손한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겠지요? 마술로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칭 큰 자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되겠지요? 이 사람의 마술사라는 직업은 그 사람의 목적을 채워주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성에는 이런 마술을 하는 사람이 이 사람 뿐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구문으로 보면 그 [어떤] 사람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를 특징을 잡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게합니다. 긍정적 의미의 어떤 사람이 아니라 부정적 의미의 어떤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꿈이 무엇이며 그 사람의 삶이 무엇인지 말해줍니다. 이어지는 내용도 이 사람에 대해 말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렇다면 구문이라는 것이 주는 특별한 장점이 그것밖에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더 있습니다. 주격분사를 주어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격분사는 주어를 규정해 줍니다. 주어가 무엇인지.. 주어가 어떤 사람인지.. 주어의 실체는 무엇인지를 규정해 주어 그 사람이 이후에 나타나는 행위는 이 규정을 근거로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주어의 규정이라는 것은 뒤에 벌어질 그 사람의 행동을 낳게합니다. 마술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그것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을 즐기는 것과 또 그 목적이 자칭 큰 자라는 말을 듣게 되기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자기 위에 더 놀라운 사람이 나타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되겠지요? 그렇다면 뒤에 누군가 자신이 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일을 행하고 자기보다 더 큰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라도 그 큰 자라는 자리를 되찾으려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니까 말입니다.

    참고로 오늘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사람으로 규정되고 있나요? 그 규정은 곧 나의 삶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어떤 행위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어떤 행위를 해서 그런 사람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내게 입혀진 어떤 옷이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입은 옷이 검은색이면 내 행위가 검은색으로 나타날 것이며 내 입은 옷이 핑크색이면 핑크색 행위가 나타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로부터 거룩한 사람, 의인이라는 규정이 있다면 그가 그렇게 행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의 규정은 그가 행한 것 때문에 규정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의인이면 의로운 일을 할 것이며, 그가 죄인이면 죄인의 행위를 나타낼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그리스도로 옷입으면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낼 것이며, 거짓의 옷을 입으면 거짓의 행동을 나타낼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며 주의깊게 살펴볼 부분입니다. 죄인이 거룩한 척 한다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오늘도 좋은 날입니다. 감사합니다.

     

    흰색 옷을 입으면 조금 조심스러워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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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로마서 정리를 하다가

    • 관리자 (gtbc)
    • 2020-10-06
    • hit1274

     

    지난 토요일 정리 시간을 준비하며 잠시 들여다 보다가 갑자기 눈에 확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저주를 받아"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동족 이스라엘을 생각하며 바라보는 마음을 기록한 글이 로마서 9장부터 11장에 나타납니다. 로마로 향해야 할 그가 아가야에서 들어온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도를 섬기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다녀서 오겠다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로마로 갈 기회가 주어졌을지라도 그가 미룰 수 없는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세 개의 장에 걸쳐 이스라엘을 향한 그의 마음이 절절이 담겨 있는 내용을 보면서 그의 절망과 또 소망을 바라보게 됩니다. 절망적인 상황은 성경의 기록을 보면서 이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다는 내용에 잘 드러나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간절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오래 전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중동에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 미국에 있는 아랍계 학생들은 자신의 거처를 옮겨 자신에게 연락이 닿지 않게 하여 전쟁에 호출 당하지 않으려 도망가는 사태가 벌어지고, 반대로 이스라엘 청년들은 스스로 짐을 꾸려 고국을 향하더라는 이야기가 회자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동일한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닐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 국민적 정서가 무엇인지 알게 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에 대한 분명한 자각을 가지고 있으나 그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잠시 예루살렘으로 향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로마를 거쳐 서바나로 가서 어떤 일을 만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긴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갖게 됩니다. 비록 그것이 주께서 원하는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여도 반드시 예루살렘 자기 동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반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에서 그가 예루살렘을 향할 때 여러 제자가 만류하지만 비록 죽음을 만날지라도 가리라는 의지를 굽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행 21:13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았을지라도 그가 기어코 예루살렘에 가려는 의지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저는 다른 곳에서 찾아 설명했습니다. 물론 아가야에서의 헌금도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자기 민족을 위한 이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끌었다는 생각을 분명하게 하는 본문이었습니다. 마치.. 히스기야가 죽음을 예고 받았을 때 과거의 일을 회상해 주시기를 기대했던 것처럼 그는 이스라엘이 어떤 민족인지를 4-5절의 내용을 통해서 알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아서라도 주께서 뜻을 굽혀주시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이 내용에서 감동적인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신이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로서 마땅히 먼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스쳐지나가듯 읽어내려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어떤 부분과 오버랩되는 순간 혈관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이 사실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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