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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사도행전 1:4-5 구문

    • 관리자 (gtbc)
    • 2020-10-19
    • hit1337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모이신 뒤 그들에게 분부하시는 내용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과 삼 년동안 동거동락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곁에서 그 행하시는 일들과 말씀하시는 것을 가장 잘 배운 사람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들과 함께 자리를 하셨고 마지막으로 당부하실 것이 있으셨습니다.
     
    "분부하신다"는 말씀은 성경에서 주로 명령command이나 지시의 의미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마가복음 6장8절에 말씀하시기를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처럼 반드시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승천을 앞두고 계신 주께서 한 자리에 모인 사도들에게 비장한 어조로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보이시고 가르치셨으나 이제 마지막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명령은 주께서 그들을 떠나시더라도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가 크고 또 주께서 사역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한 곳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께서 뿌린 씨앗이 제대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제 결정적인 일이 남아 있으며, 이를 위해 사도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함께 예루살렘은 제자들에게 잠시도 머물고 싶지 않은 고통의 장소였으나,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으로 그들이 갖게 되었을 흥분으로 섣불리 이를 소문내기 위해 움직이는 것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어쩌면 그 마지막 단추는 앞으로의 사역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주께서 사도들에게 일러주신 것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내용을 이렇게 전해주었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물로 받는 세례와 성령으로 받는 세례가 구분하여 언급됩니다. 
     
    물로 받는 세례가 죄사함을 위한 세례였다면, 성령으로 받는 세례는 또 다른 의미의 세례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것에 머물러 만족하고 기뻐하였다면 성령세례는 사도들에게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것이고, 그것은 이제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일들을 이끌고 진행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예시합니다. 지금까지는 사람이 물로 세례를 베풀고 가르침을 주었다면 이제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깨닫게 하심과 지시하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막연하고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면 이젠 성령께서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게 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 시기가 이른 것이 아니었으므로 제자들은 마땅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그 시기를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이 약속은 예수께서 친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니 명백히 command적 요소가 강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일은 그 때와 시기가 있고 그에 따라 진행되며 성도들은 마땅히 그 때를 기다리고 행동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배우나 때론 성령께서 우리에게 조명하시고 깨닫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지혜라는 생각을 갖게합니다. 말씀을 읽고 배우는 모든 이들에게 주의 때를 따라 깨닫게 하시는 은혜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멋진 월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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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사도행전 1:3 구문

    • 관리자 (gtbc)
    • 2020-10-16
    • hit1335

    살아계심을 나타내심

     본문은 이렇게 기록됩니다.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본문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요? 구문으로 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들에게"라고 말한 것은 2절의 사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나타내사" 사도들에게 주께서 무엇인가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주어인 "그"는 예수님을 의미하고, 본문의 예수님은 고난 당하시고 죽으신 뒤 살아나신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에게 자신을 친히 나타내 보이셨는데 사십 일 동안을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이지요. 동사에는 살아계심을 나타내셨다고 기록합니다. 40일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단지 보이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을 사십 일 동안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제 곧 자신이 승천하실 것이고 이땅에 남은 제자들에게 승천하신 그가 가는 곳에 관하여 또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알려주셔야 할 필요를 느끼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고난 받으시기 전 평소에도 하나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안하신 것은 아니지만 40일 동안 집중된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이처럼 때를 따라 양식을 먹이는 것이 필요하고, 시대를 따라 말씀을 깨닫는 것도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상과 상황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진행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는 더욱 그러함을 깨닫습니다.


    동사에 언급된 사도들에게 당신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신 것"은 의미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실체가 없는 막연한 기대와 믿음이 아닌 실체를 보고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십니다. 요한은 예수님에 관한 기록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우리는 우리에게 실체로 남겨주신 말씀을 통해 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알기를 원치않는 시대는 주를 올바로 알기 어렵습니다. 주께서 사도들에게 친히 자신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신 것처럼 우리 또한 말씀을 통해 그의 살아계심과 그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깨달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것을 아는 제자들은 그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을지라도 그들 각자의 믿음은 여러 모습으로 달랐을 수 있습니다. 실체가 보여지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오늘날 성도의 신앙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믿음의 내용과 현실에서의 차이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더욱 말씀에 집중하며 때를 기다리면 주께서 나타내 보이시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주께서는 확실한 많은 증거로 자신을 나타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상 우리 믿음에 증거가 있다는 것은 굉장한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증거는 한두 가지로 머물지 않고 많은 증거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바로 이런 많은 증거와의 만남입니다. 그가 친히 나타내시는 믿음의 증거들을 쌓아가며 사는 것이 곧 우리 믿음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각자의 경험이 다르고 증거가 다를 수 있을지라도 우리 믿음은 이런 증거의 연속을 통해서 더욱 분명해지고 단단해져 갑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깨닫는 자에게 주께서는 수많은 증거로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가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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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행전 1:1-2 구문

    • 관리자 (gtbc)
    • 2020-10-15
    • hit1290

    사도행전 시작

    사도행전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데오빌로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사실과 또한 먼저 보낸 서신이 있고, 사도행전은 두 번째 보내는 소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보낸 편지에는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시는 때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잘 알고 있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구문으로 볼 때 어떻게 구성되는지 확인해보도록 합니다.

    아래는 우리말로 구성된 구문과 헬라어로 보는 구문을 함께 보여드립니다.

    우리말 구문과 헬라어로 구성한 구문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 뉘앙스를 제대로 알게 하기 위한 구성입니다.
    본문만으로는 데오빌로라는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내용이 없습니다.
    단지 그의 이름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데오라는 단어와 사랑을 나타내는 필레오가 결합된 단어임을 볼 때 실제적인 대상이 아닌 어떤 의미를 담은 특정한 대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지만 단지 유추일 뿐입니다. 

    동사 "기록하였노라"는 1인칭 단수 중간태입니다. 앞에 관계사나 종속접속사가 없는 완전한 주동사의 기능을 갖습니다. 기록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겠지만 특히 정보를 전달하거나 남기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쓴 글이라는 말 속에는 어떤 형태로든 수신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확인하게 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기록을 통해 전달하여 수신자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sns와 달리 특정한 대상에게 정보를 공유하는 방법으로는 편지가 가장 유용했던 때였습니다.

    지난 기록에 그가 남긴 것은 한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이었고 그 기록의 대상은 예수님이었으며,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기를 시작하는 때부터 시작하여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신 일과 승천하신 날까지의 기록을 남겼다고 말합니다. 1절이 컴마로 마치며 2절이 관계사가 이끄는 절이므로 2절의 위치가 정해집니다. 2절에서 조금 특이한 부분이 있다면 관계사 이후 등장하는 동사 두 개의 처리입니다. 동사 "택하신"은 앞의 관계사가 사도들을 꾸미는 것으로 확인되지만, 바로 이어지는 동사 "승천하신"은 앞에 컴마도 없고 특별히 관사나 관계사가 배치된 것도 아니어 위치가 애매하게 설정되어 있지만 가장 매끄러운 것은 앞의 "하신 날"과의 직접적인 수식관계로 보는 것입니다.

    위치상으로 성령으로 명하신 날 그날이 바로 승천하신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 마지막 장 마지막 부분이 바로 주께서 명하신 장면과 승천하시는 장면입니다. 두 번째 편지와의 연속성을 위해 성령으로 명하신 것에 집중하게 만드는 문장입니다. 2절은 연하게 문맥을 따른 주어를 선택하였기에 헬라어에서는 흐리게 처리하였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나 혹은 입술로 전해서 남기는 것도 복음을 먼저 알거나 가진 자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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