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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읽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왜 모를까?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차라리 잠언은 읽고 있으면 선명하게 보이기라도 하는데 왜 다른 성경은 읽고 있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까요?' 분명히 성경을 읽는 사람은 많은데 그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하며 읽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기는 한데, 많은 사람이 자신은 신학을 공부하지 않아서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본다. 신학이 성경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분명히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단지 읽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뿐이다.
성경은 단위별 교혼을 위한 말뭉치가 아니다. 성경은 문맥을 가지고 있으며 문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각 문장이 전체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각 문장이 서로 유기적 관계를 가지며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책이다. 그러니 성경을 읽는 사람이 그 문맥과 구조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결코 그 의지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신학은 그런 것을 알려주는 학문이 아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나면 용어에는 익숙해져서 용어해석은 칼같이 하지만 문맥을 파악하는 것은 도무지 다른 영역으로 이해한다. 읽는 방식을 알지 못한 탓이다. 특히나 한국적(?) 성경읽기는 더욱 더 그럴 수밖에 없다.
GTBC 성경교육원을 처음 찾는 분들은 성경의 문학적 읽기 훈련에 집중한다. 저자의 생각을 읽어내는 방법을 익히는 것으로 이것은 여러 사람이 읽었을 때 전혀 다른 내용으로 보여질 수 없는 특징이 있다. 문맥이란 저자의 기록방식을 통해서 저자의 생각을 읽어내는 방식이다. 객관적이고 투명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읽을 수 있고, 누군가는 읽을 수 없는 책이 아니다. 예수께서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도 문맥적 관점에서 왜 그런 말씀을 하시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실제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성경 전체가 특정한 사람만이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비유로 말씀하실 때도 역시 상황이라는 것을 전제로 비유가 등장하는 것이다.
"성경을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다"라고 말하지 않고 "너무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 정상이다.
GTBC의 존재이유라고 해야할까? ㅎ
가르치는 자의 기쁨은..
잘 배웠다고 감사했노라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다. 그런 말은 형식적인 인사치레에 불과한 것이니 그런 말에 취하는 사람은 정작 가르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자신이 가르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눈높이가 맞도록 일러주는 것이 더욱 좋은 가르침이다. 몇 번 지도해 보고 자라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자신의 교육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만 자격이 없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을 탓하게 된다.
가르치는 자의 최고의 기쁨은 바로 그 배운 사람이 그것을 현장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비록 가르치는 모습이 좀 어설프게 보일 수 있을지라도 배운 그것을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그런 제자를 만나는 사람이 가장 복있는 선생이라는 말이다. 요즘 교육을 받는 분들은 이제 분명히 자신이 배우고 가진 것을 말하고 가르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반드시 대단한 지식을 가져야만 선생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을 사랑하고 자신이 가르치는 그 대상이 진정으로 말씀 속에서 주를 만나도록 하기를 기쁘게 여기는 열정이 있는 사람이 선생이라 할 수 있다.
지도자용 교재를 만들면서 "어떤 기준을 지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좀더 자세히 좀더 폭넓게 설명하고 좀더 깊이있게 다루는 것처럼.. 보여주기 위해 용쓰는 모습이다. 이런 것이 바로 허영이고 사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일정한 룰을 따라 쉽게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지도자의 몫이다. 그러나 그 안의 내용이 얼마나 더 깊고 오묘한가를 생각하는 것은 연구자의 몫이다. 연구자의 몫이 모든 사람의 보편적 가치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잘난 척하고 아는 척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그 수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나의 잘난 몫은 그냥 혼자 즐기는 쪽으로 하는 것이 좋다.
자기는 잘 말할 수 있는데 배우는 이가 배운 것을 말할 수 없다면 가르치는 사람은 잘난척 한 것밖에 없다. 그것 뿐이다.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니다. 배우려는 사람들은 실력이 있거나 없거나 존경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배우겠다는 열의 자체가 존경을 받아도 부족하지 않다는 말이다. 배우려는 열정을 가지고 온 이들에게는 그 열정만큼 가져갈 수 있도록 눈높이를 조절해서라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존경받는 선생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기준은 지켜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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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성
감사하게도 학기가 거듭되면서 여러분들이 성경을 말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고 주변 분들에게도 배운 성경을 가르쳐 드리는 상황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다가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모니터링을 요청한 결과 반응이 괜찮은 것으로 여겨져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함께 공부를 해보신 분들은 그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빠르게 이해하지만 함께 공부하지 않은 분들에겐 무슨 암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한 것이 맞나 봅니다. ^^
기준이 될 자료
이제 강의를 하는 분도 생겼으니 강의의 내용에 통일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처음 단계를 가르치는 분들은 많은 것을 설명하려다 도리어 벽에 부딪힐 수 있으므로 기본적인 원리와 내용을 전달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더 깊은 내용을 공부한 분들 입장에서는 더 많은 것을 자세히 알려 주고픈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듣는 입장의 눈높이 조절이 관건입니다. 아무튼 이번 자료는 가장 기본적인 이해를 돕도록 하기 위한 교사용 책자임을 알려드립니다. 모니터를 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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