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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사도행전 9장 도입부

    • gtbc (gtbckim)
    • 2020-12-26
    • hit1435

    거룩한 직분의 대명사 대제사장을 만나기 위해 찾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직책이 주는 이미지처럼 거룩하고 온유하며 신앙의 법도를 준수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닐까..

    살기와 위협이 등등한 사람이 대제사장을 찾아간다면 도대체 무슨 일일까..

    거룩해야 할 대제사장에게 감정이 극도로 격하게 상한 사람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대제사장을 찾아가는 사람의 감정이 그토록 살기가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

    스데반의 죽음을 지켜 본 사울이 대제사장을 찾아가는 그 날이 그랬다.

    온 집을 찾아다니면서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해 냈던 사울이다. 그들을 탄압하고 고통을 더해 더 이상 이 괴이한 사설이 유대땅 안에서 전파되어서는 안된다는 불타는 사명감으로 충만했던 사울이다. 그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정든 땅을 떠나야만 했던 고통을 안겨준 그 사나이가 바로 이 사울이었는데 그가 이번엔 도대체 왜 대제사장을 만나러 갔을까..

    ​

    그의 그 살기와 위협은 대제사장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에 대한 것이었고, 만일 앞으로 그 도를 전하는 사람을 또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가 누구이든 모조리 잡아다 결박하여 예루살렘에 데려오고자 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박해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을 떠난 사람들 조차도 끝까지 쫓아가 잡아오겠다는 그의 그 살기와 위협은 스데반의 죽음과 함께 더욱 독이 올랐다. 스데반 집사를 죽일 때는 합법적인 행위가 아니어서 자신이 증인이 되는 절차를 통해 죽이는 자들의 행위가 무죄임을 입증해야 했으나, 이제 그들을 잡아 가두는 것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게 하려는 시도가 명백한 것이었다.

    ​

    그의 이런 분노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일까?

    스데반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이런 무도하고 무지한 사람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불타는 정의감이었을까?

    ​

    다마스커스로 향하는 그의 손에는 대제사장의 인장이 깊게 새겨진 공문이 들려있었다. 이제 그 앞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그가 어떤 자일지라도 즉각 포박하고 위해를 가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만일 자신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 지역의 모든 집을 뒤져서라도 찾아내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졌던 스데반과의 논쟁에서 단 한 마디도 이기지 못한 분노와 수치심이었던 것일까? 자존심? 스데반 사건 이전까지 그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위해를 가했다는 기록이 없었음에도 그의 이런 급작스러운 행동엔 분명히 무언가 원인이 있었을터이나 누구도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

    단지 그의 머리속엔 한 시라도 빨리 다마스커스에 도착해서 더 이상 예루살렘에서처럼 그들이 탈출할 수 있는 여지를 두지 않겠다는 결심이 있었을 터였다. 다마스커스로 향하는 길목 정오의 타오르는 태양과 바람에 날리는 건조한 흙과 먼지는 그의 행보에 어떤 장애도 될 수 없었다. 이제는 스데반이라는 작자와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의 논쟁도 필요없고 변명을 들을 필요조차 없다. 보이는대로 잡아들여 가두기만 해도 된다는 공문이 손에 있다. 이단의 괴수들이 겪게 될 처절한 고통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겠노라는 결의에 가득찬 그의 발걸음은 아무리 달려도 빠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

    결국 그의 잰 발걸음이 다마스커스에 다가왔음을 알린다. 멀리 평온한 다마스커스의 윤곽이 드러나고 그 성을 바라보는 사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 입에서 나오는 중얼거림은..

    ​

    “잠시만 기다려라. 그놈 스데반이 간 길로 너희들을 보내주리라”

    ​

    회심의 미소를 날리며 길을 재촉하려는 순간 정오의 태양보다 강렬한 빛이 하늘로부터 쏟아지며 그의 주변을 둘러 싼다. 세상에서 겪어보지 못한 이 놀라운 상황에 깜짝 놀란 그는 땅에 엎드러졌고 무슨 일인가 묻기도 전에 소리가 들린다.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분명히 자신의 이름을 불렀으나 사울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나를 핍박???’ 사울이 묻는다.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미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이 빛과 음성 앞에 어찌할 바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크고 강한 두려움이다.

    소리가 이어진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예수????’ 스데반이라는 자가 말하고 무도한 자들이 말하던... 그럴리가..

    소리는 이어진다.

    “너는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네게 행할 것을 이를 자가 있느니라”

    ‘내가 행할 일??? 이단자들을 잡아 들이는 것 말고.. 또.. 무엇이..’

    ​

    만일 이 소리가 사울에게만 들렸다면, 사울은 아마도 자신이 잠시 정신이 없었거나 너무 열정을 불태우다가 착각증세를 일으킨 것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행9:7은 “같이 가던 사람들도 함께 소리를 들었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말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고 기록한다. 상황이 종료되고 사울이 일어났을 때, 그는 눈을 뜨고 있기는 했으나 강렬한 빛 때문일까? 이미 시력을 잃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함께 가던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가면서 그는 수도 없이 동행한 이들에게 물었을터였다.

    ​

    “당신들도 분명히 들었나?”

    “나만 홀로 착각한 것은 아니지?”

    “혹, 누군가 선 것을 보았나? 아무도 없었다고? 소리만 들렸다고?”

    ​

    그는 이것이 도대체 무슨 날벼락인지 곰곰 생각했을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을 중요하게 여겼을 사울에게 이 일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

    그의 고민을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

    “사흘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보이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일에 대해 그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음식이 넘어가지 않는다. 도대체 이 무슨 일인가? 성경은 그가 보지도 못하고 먹거나 마시지도 않은 삼일 동안에 그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그가 기도하는 중이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행 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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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림] 사도행전 9장까지 왔습니다.

    • gtbc (gtbckim)
    • 202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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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듭될수록 흥미진진

    사도행진의 다이내믹함은 다른 어떤 책들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와 부흥 그 어간에 드러나는 팽팽한 긴장감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의 상황들은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것 같으면서도 때론 중략된 부분들이 보이며 사건의 전개에 속도감을 부여합니다. 정신차리지 못하면 어느 순간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상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생략된 어간에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면 드러나는 치열한 순간들이 보여집니다.

    사울의 회심이 담긴 사도행전 9장을 읽으며 우린 여러 가지를 돌아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사건들과 그 모든 사건들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고, 그것이 가져온 놀라운 효과는 무엇이었으며 또한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무엇인지 살피게 됩니다. 김목사님 말씀처럼 "너~무 재미있다"는 말이 정답입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들처럼 언급되지 않았으나 눈에 보이는 것같은 비하인드 스토리들.. ㅎ

    벌써 3분의 1을 달려왔습니다. 남은 시간들 역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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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진정한 사이비 백신

    • gtbc (gtbckim)
    • 202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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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백신

    수많은 부작용의 우려속에서도 코로나 백신에 관한 열망은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백신을 미처 확보하지 못한 여당과 질병관리청은 연일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사람들의 불안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이런 불안심리를 일으켜 상대적 이득을 보기 원하는 정치적 기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암튼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위험한 코로나 바이러스 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뜻밖에 세계에서 가장 빨리 코로나 백신을 접종한 국가는 영국이다. 미국에서는 왜 코로나로 인한 상태가 훨씬 심각한 미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먼저 백신을 맞느냐는 볼멘 소리도 많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이 지구촌을 달군다. 가장 먼저 백신을 접종한 영국에 변종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유럽에서 조차 영국인들의 입국을 제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껏 바이러스를 막아보겠다고 거액을 들여 사들인 백신조차 의미없는 행동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 아닐까?

     

    사이비 바이러스

    중국으로부터 넘어 온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을 강타할 때 공교롭게도 가장 큰 확산을 일으킨 집단이 한국교회로부터 대표적 사이비라고 불리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단단한 철옹성처럼 자기들만의 왕국을 세워가던 그 집단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그 실체가 얼마나 엄청난 곳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도대체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들이 그토록 세력을 확대하고 커져갈 동안 교회는 고작 "*** 출입금지" 스티커나 붙이고 대응하지 않았던가..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알고보면 우린 당신들을 대적할 준비가 되지 못했으니 이곳에 와서 우리의 실력을 드러나게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닐까? 결국 그들은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교회들을 공략하게 되고 수많은 성도들이 그들 집단에 포섭되어 교회에 출석하면서 시간만 나면 성도들을 그들에게로 이끌어 가지 않았던가.. 만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소동이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더 방치했다가는 그야말로 이 땅의 모든 성도가 다 그들에게 넘어갈 뻔한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신차리지 못한 교회들을 보면 한숨만 날 수밖에.. 좀더 솔직해지자면 교회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그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넘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우리가 모르는 바 아니지 않은가..

     

    백신이 필요하다

    교회에 수혈될 백신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분명한 것은 교회가 백신을 개발하고 성도들에게 주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지금까지 하지 못한 일을 갑자기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사람이 있을까? 사이비의 속성을 가르치고 그들의 해악성을 가르치면 그들에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야말로 유치원급 수준의 대응이 아닐까? 그나마 그것조차 가르치지 못하는 곳이 교회가 아니던가? 고작 출입금지나 붙이는 수준에 불과한 교회.. 도리어 그들은 교회가 더 해악을 끼치는 집단이라고 가르치는데 교회에 있는 성도들이 수없이 그쪽으로 넘어가지 않았던가.. 해악? 사회적 물의? 교회는 그렇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었을까? 백신은 신체에 들어오는 바이러스와 스스로 싸워 바이러스가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만든다.

    GTBC는 이런 백신이 될 것을 확신한다. 사이비 집단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무엇인지 당당하게 밝히고 그들이 스스로 거짓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더 강력한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외면하면 안된다. 진리는 말씀에 있고 그 말씀을 올바로 가르칠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안에서 저항력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진리를 가졌다고 말하면서 그 진리가 무엇인지 명확히 가르치지 않았다.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가르친 것은 성경이 아니라 교회조직에 복종하는 법을 가르친 것이 아닌가.. 항체가 없는 성도들은 악성 바이러스를 만나는 즉시 항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이미 여러차례 검증의 절차를 거쳤다.

    지금까지 GTBC는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고, 심지어 사이비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과의 미팅을 갖는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꽤 여러 사람이 사이비 집단으로부터 이탈하는 효과도 있었다. 문제는 사이비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가면 교회가 여전히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다는데서 오는 힘겨운 아픔이 있다. GTBC는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방법을 교회와 성도들에게 전수하고 그것을 배운 사람들은 또 나가서 그 복음을 전하는데 자신감이 넘치게 한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잘 관리하기에 사이비 바이러스를 두려워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GTBC는 사이비를 대적하는 학교가 아니고 진리의 정수 속에 들어가 있게 돕는 성경학교라는 사실이다. 더 이상 이 백신을 공급하는데 망설일 이유도 없고,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이제 진리의 말씀을 공급할 성도와 교회가 나서야 할 때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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