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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원은 후원금으로 운영됩니다.
교육원이 유명하고 수익성을 남길만큼 많은 책자를 발간하고 판매한다면 그런 수익을 통해서도 운영이 가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2년 차를 맞은 교육원은 책자 판매나 강의수입이라는 것이 매우 미미하기에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의 후원을 통해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엔 모두가 아시는 바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오프라인 강좌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온라인 강의로 교육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교육원 활동을 지원해 오신 분들이 계셔서 교육원의 운영에 큰 어려움을 느끼는 정도는 아닙니다. 도리어 후원금에서 일부 선교사들을 후원하기도 할만큼 고통분담도 가능한 상황이 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코로나가 가져다 준 상황은 성도들의 삶마저 더욱 팍팍하게 만들어 제 마음도 많이 아픈 것이 사실입니다. 이 아픔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와중에라도 주께서 지키시고 인도하셔서 능히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적게는 매월 1만원부터 많게는 수 십만원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넉넉한 환경도 아닌터에 이렇게 함께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월 쉬지 않고 들어오는 후원금을 받을 때마다 감사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단순히 후원금이 아니라 핏값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교육원도 후원을 늘리려 합니다.
후원금은 주로 사무실 운영과 관리비 그리고 일부는 선교사후원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아직 누군가의 사례비로 지출할 정도는 되지 않아 함께 하는 분들의 활동비조차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교사 후원은 중단되면 바로 생계와 사역의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어 중단할 수도 없어 처음 결정할 때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각국의 선교사들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어 두 분 정도 더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그렇게 넉넉한 환경은 아닐지라도 함께 어려운 시기를 겪는 이들과 고통분담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개척교회들이 겪는 어려움도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교육원은 본래 목적이 교육과 관련된 일을 수행하는 일입니다. 예전엔 일시 귀국 선교사들의 재훈련 프로그램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대로 재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할 계획이지만 우리나라의 선교프로그램은 주로 교육보다는 후원에 집중하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것이 재정적 지원이라는 것은 현지의 선교사들로부터 많이 들어온 이야기입니다.
교육원은 교육이라는 방향성에 맞는 후원정책을 갖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선교사로 나가 계신 분들은 지속적인 영적 훈련을 받을 기회가 박탈됩니다. 선교사로 나가는 분들 중에는 성경적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떠나는 이들보다 시급히 파송되는 것에 집중하게 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지에 나가서 하는 사역도 교육과 관련된 사역보다는 생필품 나눔에 집중하는 경향이 커지게 됩니다. 우리 나라 선교사가 많이 파송되었던 나라 중 한 나라에서는 이제 성도들이 돈 보내는 선교사 말고 제대로 가르치는 선교사를 보내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돈과 물품 좀 주고 생색내는 것보다 성경에 대해 제대로 알고 가르칠 수 있는 선교사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교육원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후원은 재정적 지원보다 교육적 훈련을 할 수 있는 교재들을 보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자를 보내는 것도 좋지만 온라인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재를 보내면 현지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판매를 하면 수익이 발생할 수도 있으나 그렇게 되면 온라인 교재로 발송할 수 없는 문제도 생깁니다. 수익보다 실용성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이 옳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재정적 지원마저 끊을 수는 없습니다. 선교사들의 생계도 보장되어야 선교도 교육도 할 수 있습니다.
함께하는 분들을 축복
GTBC교육원은 본래 사역자들을 위한 성경훈련 프로그램을 일반 성도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나누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알지 못하면 성도들은 쉽게 교회를 이탈하여 건전하지 못한 사이비 집단으로 가서 교회를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갖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가진 복음에 대해 분명히 말하고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은 물론이고 그 말씀을 이웃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장은 힘들고 어려워도 이 일을 수행하지 않으면 교회의 장래는 밝지 않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예배가 중단되자 교역자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성도들이 혼란에 빠져버렸습니다.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교회를 이탈하는 사람들마저 급격하게 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 교회들의 현주소를 코로나가 밝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다시 예배는 시작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교회는 또 다른 더 큰 위기를 만날 때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조그만 위기에도 당황하고 무너지는 허깨비 같은 교회가 아니라 속이 단단하여 그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거룩한 백성들로 세워져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교회들이 성도를 바로 세울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는 교재를 만들고 보급하는 곳이 GTBC성경교육원입니다. 온라인 교재는 물론이고 오프라인 교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해서 보급합니다. 문제는 이 교재는 기존의 교재들과 달리 가르치기 위해 먼저 자신이 배워야 하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성도들의 영적이고 지적인 성장과 성숙을 원하는 교회는 GTBC를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들이 성경을 알면 위험하다고 인식하는 목회자들은 GTBC를 경계할 수밖에 없습니다. GTBC는 기존의 교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흥왕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입니다. 이 뜻에 함께 하는 분들이 보내주는 후원금이 오늘의 GTBC가 있게 하였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주의 이름으로 더욱 복된 길을 걷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식에 후원이 더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주께서 GTBC교육원을 어떻게 쓰시려는지에 대한 기대감을 더 크게 갖게 합니다. 성령으로 감동된 더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함께 세워 가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Thou hypocrite, first cast out the beam out of thine own eye; and then shalt thou see clearly to cast out the mote out of thy brother's eye.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태복음 7장의 이 말씀을 아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눈에는 들보가 있을 것이라 믿지 않는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사람부터 그럴지도.. 여기 이 말씀의 대상은 a hypocrite 외식하는 자 혹은 위선자를 의미한다. 위선자란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하는 척 하는 자를 말하고, 자신은 죄가 없는 척 하면서 남의 죄를 지적하는 사람을 말한다. 본문을 근거로 하자면 누군가를 비판하고 헤아리는 자를 말한다.
요즘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비판 받는 것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자신이 비판을 받으면 발끈하여 곧바로 "그래? 그런 너는 어떤데?"라고 쏘아 붙일 것이다. 비판은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예수께서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누군가에게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 전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정작 상대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 자신은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다. 누군가의 문제를 지적하기 전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일한 선상에 서서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야 말로 위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와 거짓의 논리는 다르지 않을까? 진리의 편에서 거짓을 지적하는 것은 동일선상이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무엇이 진리인지 서로가 분명하지 않을 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 수 없고 다툼과 분쟁만 발생할 뿐이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진리를 말하는 것에 대해 핍박을 받을지는 몰라도 진흙탕 싸움은 없다. 그러나 거짓에 대하여는 다르다. 진리는 거짓과 동화될 수 없을 뿐더러 그들과 함께 할 수도 없다. 진리에 서지 못한 자들은 문제를 지적 받을 때 반대로 모함과 계략을 사용하여 스스로를 정당화 하려한다. 거짓은 근거없는 모략과 모함을 통해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으로 통쾌함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직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심판은 면하기 어렵다.
진리의 편에 선자는 핍박을 당할지언정 진리를 주장하기 위해 거짓이나 모함을 사용할 수 없다. 결국 이 땅에서의 싸움에 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는 이기는 자리에 설 수밖에 없다. 자신의 눈에 들보는 곧 자신의 위선이며 자신의 위선을 감추기 위해 거짓을 사용하는 것에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 말하는 것은 그의 문제를 지적하여 수치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안고 있는 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이키기 위한 것이라면 핍박을 각오하고라도 문제를 말하되 지혜롭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란 거짓으로 속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깨닫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개선의 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 많은 사람을 지옥의 자녀로 만드는 악독한 자들에게는 예수께서도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이라는 말씀을 거침없이 쏟아내셨다.
우리가 알고 깨달아야 할 들보.. 위선이며.. 거짓이다. 단지 어떤 행위에 대한 문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곧은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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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리스틱 현상
심리학자들의 연구(Kahneman, slovic, & Tversky, 1982; Todd & Gigerenzer, 2007)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의사결정의 한 부분에 대한 발견을 하게 됩니다. "판단의 휴리스틱스"의 휴리스틱스heuristics란 모든 경우를 고려하는 대신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발견한 편리한 기준에 따라 일부만 고려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판단을 하기 전 정보를 철저히 분석하고 대응하는 것은 '통제반응 controlled responding'이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집한 정보들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에 휴리스틱적 요소에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가 발생할 때 또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가 배제된 다른 유사한 것에 더 호의적 반응을 나타내게 됩니다. 전혀 다른 것보다 유사하지만 좀더 나은 것을 선택한다는 차원의 행동이겠지요? 이런 성향 덕분에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곳이 바로 사이비 집단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따르도록 하지만 그것이 어느 순간 불만스런 요소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눈을 돌려 유사한 다른 것에서 만족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가르치지 않으면 성도들을 언제든 유사집단으로 떠나보낼 수 있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교회가 져야 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단순히 예배만 잘드리고 헌금을 강조하는 행위는 사이비 집단의 원칙보다도 부실한 관리입니다. 잠깐은 성도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일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부실의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게 되고 교육되지 않은 성도들은 정보를 분석하고 통제할 능력이 없으므로 쉽게 판단하고 자신의 생각에 옳은대로 이동하게 됩니다. 어차피 이쪽이나 저쪽이나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죠. 아니 도리어 교회가 갖지 못한 것을 그들이 가졌다고 믿게 되니 기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게 되겠지요.
판단의 휴리스틱 현상은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신앙적 영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를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지 않는 한 앞으로도 준비하지 않는 교회는 더욱 큰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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