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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에 마실 물 없다.
홍수는 물의 범람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이지만 홍수의 때에 정작 마실 물이나 필요한 물을 얻기 어렵습니다. 서점에 가면 범람하는 책들이 있는데 그 중에 어떤 책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교역자가 학생들에게 사용할 교재를 사러 가서 망설이고 망설이다 한 권 들고 온다고 하더라도 그 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제대로 아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우선 책을 고를 때 애로사항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교재의 제작의도 파악이 안됩니다.
교재로 사용할 책들을 선별하고 싶은데 어느 기간 동안 어느 정도의 효과를 목표로 하는지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많은 질문들이 사용되는 교재임에도 질문의 의지나 방향성을 알기가 어려운 책이 많습니다. 책을 내기 위해 만든 것인지 목표를 정하고 만든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책이 많다는 것입니다.
2. 수준을 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교재들을 보면서 초보자용인지 아니면 중급용인지 구분하기 어렵고 그런 구분이 된 책도 많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장 가르쳐야 할 대상들의 성경에 대한 지적수준 조차도 불분명하다면 교재를 선택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교육대상이 레벨별 그룹이 아닌 연령별 구분이라면 보편적 수준에 맞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알면 좋고, 몰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학습에 임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이들이 정하는 목표는 사영리 교육에 준하는 구원의 입문 정도로 볼 수 있고, 좀더 나아가면 그리스도인 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깊이있는 학습이나 수준별 지도가 불가능한 것이 교회교육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3. 가르쳐 주는 곳이 없습니다.
성도들에게 혹은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이런 것에 대해 훈련 받아본 일이 거의 없고 전도사 시절 끄적이며 했던 것들의 연장선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 없습니다. 효과적인 성경학습에 관한 세미나는 있어도 전략적인 교육성장 전략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회가 제대로 된 교육시스템을 갖기 어려운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렇게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아쉽게 느끼는 이가 없다는 것도 교육에 집중하지 않는 이유일 수 있습니다.
교육 전도사 혹은 파트 담당 교역자에게 전권을 위임하고는 그 교역자의 사역연한이 짧은 것도 사실입니다. 사람이 바뀌면 모든 교육 프로그램이 다시 원위치 되어 돌아갈 수밖에 없는 파트사역교역자 중심의 성경교육 프로그램도 장기적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교육은 누가 책임지고 해야할까요?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이 있듯 교회교육에도 교회가 가진 교육에 관한 큰 그림이 있어야 합니다. 교역자가 바뀌더라도 그 그림하에 진행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친구들이 영입되면 그 레벨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교육에 관련된 전문 사역자 혹은 성도가 있어야 합니다. 훈련된 성도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능할까요? 대부분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꿈같은 이야기죠"
4. 누군가는 시도해야 합니다.
아무도 시도하려 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무엇을 먼저할 것인가의 우선권에 교육이 들어가 있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 예산은 그렇게 편성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시도해야 하고 그 그림이 나오고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게 될까요?
말로는 못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교육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미혹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무언가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될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 남들보다 나아야 하고 무엇을 하든 남들보다 높아야 하고, 어느날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는 되지 말아야 하는 강박관념이 그리스도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세상적으로 탁월한 일을 해냈을 때 거기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영광을 받으신다는 지극히 세상적인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사도와 제자들은 모두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더 많은 성도가 모여야 하고, 더 큰 건물을 지어야 하고, 더 화려한 건물을 세우는 교회가 존중받고 세상속에서 빛을 발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습니다. 초라하고 작은 상가건물 구석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면 자존감이 사라지고 거대하고 화려한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면 무언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 같은 착각이 우리의 신앙세계의 비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어쩌면 성경이 말하는 천국의 아름다움보다 이 땅의 교회들이 더 찬란하고 화려하며 웅장할 것 같지 않나요? 그래야 정말 주께서 그런 곳으로 임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나요?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그곳에 앉아보면 그 분위기에서 헤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자랑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간증은 늘 어떤 역경에서 이겨낸 것에 포커스가 맞춰지지 않나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어느날 갑자기 주의 은혜로 그 환경에서 벗어나 세상에서 잘나가는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감격하여 그 사실을 알리고 싶어지지 않나요? 도저히 치료받을 수 없는 불치의 병에서 벗어나 완쾌 되었을 때의 그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며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해야 사람들이 감동하고 주께 영광돌리지 않나요? 그리스도인의 자랑이 이런 것이었나요? 만일 열심히 기도하고 기대했으나 치료받지 못했고, 복음을 전하는 자로 또 이웃을 사랑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가지만 가난하고 찌든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요? 그리스도인의 자랑은 이런 모든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났을 때에 할 수 있는 그런 것일까요? 물론 그것도 감사요 기쁨이요 자랑일 수 있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의 자랑이 그런 것이어야 한다면 우리의 자랑은 참 세상적이고 샤머니즘적인 그것과 다르지 않은 것뿐이군요.
그리스도인의 자랑은 좀더 차원이 다른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나요?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만들어 주신 내 모습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받은 은혜를 나누고 사랑하는 그 자랑이 더 아름답고 귀하다는 생각은 그저 형이상학적이고 우리와 동떨어진 이상적 가치에 불과한 것일까요? 좀더 깊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그 속에서 발견되는 나로 인해 주를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지극히 초보적인 자랑에 불과한 것일까요?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보내진 편지를 보면 죽었던 자를 살리셔서 아들로 삼으시고 하늘에 앉히신 그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영광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혹 알고 계신가요? 각자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의 자랑으로 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미혹은 화려한 거짓말과 함께합니다. 그 미혹은 우리 자신을 타락의 길로 인도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랑은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고상함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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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영화에서 보면 위험한 순간 사람들이 피해 달려가는데 영문도 모르고 반대 방향으로 가는 이들이 보입니다. 서둘러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고 무슨 일인지 묻고는 함께 도망가는 대열에 합류하지만, "다들 왜들 저러나?" 하면서 그냥 가는 사람들은 곧 바로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지요?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볼까요?
우리는 양치기 소년에 관한 이솝 우화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너무나 잘 표현해주고 있는 내용이기도 해서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거짓말 하는 양치기는 그 거짓말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 너무도 재미있었던 겁니다. 허구헌날 양들과 함께 보내다가 우연히 한 번 소리쳐 본 것에 놀라 소스라치며 도망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요? 그토록 미련한 사람들을 보는 재미가 남달랐겠지요? 사람들이 미련해서였을까요? 거짓말의 최후는 거짓말 한 자에게 돌아간다는 결론이지요.
안타깝게도 우리 교회들에게는 그런 양치기 소년이 너무 많았습니다. 자기도 알지 못하는 불분명한 정보를 한두 번 흘려보았더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 거짓말에 반응했습니다. 무척 재미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세상은 넓고 무식한 사람은 많으니 그 거짓말을 흉내내며 즐기는 이들이 여기저기 생겨나기 시작하고, 심지어 어느날부터인가 그 거짓말이 진리로 둔갑되어 확산되는 일들이 벌어진 곳이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여전히 모르는 분들이 계시기는 한 것 같군요. ^^
우리가 공동체로서 함께 가는 길에 그런 거짓들에 미혹되어 진리로 믿는 이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가는 친구에게 정신차리라고 말해주기도 하지만 한 번 미혹된 친구들은 쉽게 돌이키려 들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똑같이 말하면 많은 사람이 추종하면 그 자체가 진리가 될까요? 미혹되지 않으려면 성도는 성경을 누군가 이야기 해주기 때문만이 아니라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그 길이 넓고 크다고 하시는군요.
진실을 말할 수 있으려면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진리를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럴리가요. 그러나 분별치 못하는 자에게는 진리가 진리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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