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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 |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성경? | 2024-10-29 | hit46146 | |
| 공지 | 성경학습의 기회가 열린다 | 2022-08-25 | hit51304 | |
| 공지 | 서울 삼실 전경과 위치입니다. | 2021-06-13 | hit55579 | |
| 공지 | 목회자 구문강의 알림 | 2020-11-17 | hit54507 |
사람마다 편안한 곳이 있습니다.
집이 편안한 사람이 있고, 종교시설에 가면 편안하다는 이도 있으며 간혹 일하는 공간인 사무실이 편하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모처럼 찾는 휴양지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할 수도 있죠. 그러나 사람이 늘 편안한 곳에 머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한 주에 한 번이라도 편안한 곳에 머물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정년퇴직한 사람은 가정이 행복일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정에 머무는 것이 고통이 된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의 안식처는 어디가 될까요? 가까운 지인 중 한 분은 은퇴이후 온세계를 내집처럼 드나들며 여행을 다녔습니다. 안다녀 본 곳이 거의 없고 즐기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며 늘 함께 만날 때면 풍부한 지식과 정보로 모든 사람을 압도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이 별로 없고 유명한 여행지란 여행지는 거의 다 돌아보았지만 의미가 없어"라고 하셔서 깜짝 놀라 되물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아니야. 이제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지면서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 그렇습니다. 체력이 되어 한껏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릴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이제 나이가 들면서 무언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행을 안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후에도 다시 체력이 회복되니 온세계를 내집처럼 또 돌아다니시더군요. ㅎ
물리적 장소만이 편안한 곳이 될까요?
사랑하는 이와 만나는 곳은 그곳이 어디이든 편안하다 느끼게 되지 않나요? 어제 뉴스를 보니 터키에서 일어난 보도가 있었습니다. 만삭인 아내와 유명한 관광지에 가서 함께 사진을 찍고는 아내를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뜨린 사건입니다. 보험금을 노린 사건이라지만 사진 속에서 밝게 웃고 있는 만삭의 여인을 보는 순간 너무나 안타까운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함께 했던 여행에서 너무나 참담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가까운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곳인 줄 알았는데 가장 비극적인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도대체 어디가 안전하고 행복한 곳이며 어디가 편안한 곳인가요?
여기가 좋습니다.
GTBC는 온라인 강의를 하면서 오전 10시에 시작합니다. 강의자나 참석자들이 이것 저것 준비하는 시간을 고려하여 정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9시30분이면 미리 출석하셔서 인사를 건네는 분들이 계십니다. 온라인 장소로 초청하기 전 단톡으로 인사를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여기가 좋사오니"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겨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강의시간인데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요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온라인 강의가 없었다면 어쩔뻔 했나?" 거리와 상관없이 참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간적 절약효과도 대단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나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
언제든 좋습니다.
질문을 주시는 분이 선택한 시간이 제가 답변을 드릴 수 있는 시간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관 없습니다. 언제든 카톡도 문자도 열려 있고 핸드폰(010 4203 9191)도 열려 있습니다. 통화가 불편하시면 문자도 카톡도 가능합니다. 성경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언제라도 질문을 보낼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에 답변을 해드리려 하지만 혹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긴 설명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관 없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답을 구할 수 없었다면 제게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서로 답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질문의 범위는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시간의 흐름속에서 진행된 내용을 기록하므로 역사적인 배경들을 도외시 할 수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역사적 배경에 관해서도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성경은 기록된 글이니 기록 방식인 구문론적 관심이라면 더욱 환영합니다. 성경을 100%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정한 수준의 궁금증은 반드시 필요하고 성경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그 궁금증들은 해결되어야 합니다. 물론 해결되지 않는 내용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궁금증은 필요합니다. 언젠가 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질문을 받습니다.
답변의 범주는 이렇습니다.
구문론적 관점에서 답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일반적 수준의 질문에서 구문론적 관점에서 대답할 내용들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문으로 풀어갈 수 있는 설명이라면 거의 대부분 설명이 가능합니다.
문맥적 관점에서 답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질문의 많은 경우 문맥의 오해에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성경을 문맥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정경이라고 하는 선입견으로 교훈적 관점에서만 이해하려 한다면 어느 순간 모든 사고의 틀이 꼬일 수 있습니다. 문맥은 저자의 기록방식을 확인하여 파악하는 것으로 학습을 하는 이들에게 즐거움과 도전을 줍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설명을 드릴 수 있습니다. 성경은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배경이 무시된 성경해석은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배경을 근거로 한 해석과 접근은 반드시 필요한 항목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의미적 관점에서 설명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의미는 단어의 실제적 의미도 있겠으나 비유나 은유적 해석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부분이 의외로 많기도 합니다.
물론 드리지 않는 답변도 있습니다.
영적 해석이라는 것은 답변 하지 않습니다. 영적 의미로 이렇게 저렇게 해석한다는 것처럼 황당한 해석이 없습니다. 성경은 단순히 영적 해석을 위해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른 분들로부터 들은 영적해석이라는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제가 영적으로 그분들 만큼 대단하지 못한 부분이어서 그렇습니다.
지도자에 대한 문제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살면서 여러 사람들이 문제를 보이곤 합니다. 특히 지도자 입장에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일반 성도들의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것이 성경적인지 아닌지 물으실 경우 경우는 답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질문자 스스로 평가하고 판단하면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문제속에서 사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수준같은 것은 상관없습니다.
수준이라는 것은 자칫 평가의 잣대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이 없이는 자라지도 않습니다. 내가 어떤 수준인지 들통날 걱정 없습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수준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입니다.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것이 수준 낮은 행동입니다. ^^
질문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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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제국
8세기 초부터 시작된 사라센 해적의 이탈리아 반도 약탈은 9세기가 되도록 쉬지 않고 이어진다. 이탈리아 반도는 지중해 건너편으로부터 물밀듯 밀려드는 사라센 해적의 끝없는 약탈에 시달려야 했는데, 기독교 제국 비잔틴의 보호를 받지도 못하면서 세금은 꼬박꼬박 내야하지만 지중해를 건너 북아프리카에서 출발하여 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이슬람 해적들을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이것은 10세기에 들어와서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상황이었고, 서기 915년 어린 아들의 섭정을 하고 있던 비잔티움 제국의 조에 황후는 각지에서 비잔틴의 습격을 호소하는 토지 소유주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어 이슬람 해적들과 협약을 맺기로 한다.
남이탈리아의 칼라브리아와 풀리아 지방을 습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해마다 비잔티움 금화 2만2천냥을 지불한다는 내용이었고, 이 협정의 대상으로 지목한 것이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아미르를 지목한다. 정보에 둔하여 정세를 판단하지 못한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당시 시칠리아의 이슬람인들은 이미 정착의 단계에 들어가 해적질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여전히 살길을 모색하며 해적질에 나선 사람들은 북아프리카의 사라센들이었다. 정작 해적질을 멈추고 정착에 집중하던 팔레르모의 수장은 협약에 얼른 조인하고 그 돈을 받아 챙긴 것이다. 물론 자신들은 당연히 해적질을 나설 일이 없다. 더구나 돈까지 받았고.. 비잔티움 제국의 조급한 결정이 결국 헛된 돈을 날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전해들은 북아프리카 사라센들은 잔뜩 화가났고, 같은 이슬람교도들이지만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이슬람과 험악한 관계에 빠지게 된다. 어차피 돈도 받은 바 없는 그들은 더욱 극성스럽게 칼리브리아와 풀리아 지방을 습격하여 약탈을 자행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비잔티움 제국이 작정하고 해적들을 소탕하려 나선다면 자신들은 당해낼 수 없을 것이라 믿고 두려움을 가졌던 사라센은 비잔티움 제국 황실에서 팔레르모의 수장과 맺은 계약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고는 더 이상 그들을 제어할 장치나 세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바와 같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잔티움 황후 조에가 낸 2만2천냥의 금화가 황후의 개인 금고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비잔티움 제국의 국고에서 지불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남이탈리아에 주재하는 비잔티움제국 관리들이 남이탈리아 사람들로부터 거둬들인 특별세로 충당된 것이니 결국 남이탈리아인들은 돈도 지불하고 약탈은 더욱 극성스럽게 당하는 일을 맞게 된다. 그나마 이 돈이 팔레르모 수장에게 전달된 것은 단 한 번 뿐이었고, 그 다음부터는 거둬들인 세금이 모두 관리들의 착복으로 사라질 뿐이었으니 사라센 해적의 분노는 더욱 극에 달하고 남이탈리아 사람들은 갈수록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게 된다.
서기 925년에는 이탈리아의 장화 뒷꿈치에 해당하는 풀리아 지방의 도시들 가운데 브린디시 근처에 있는 오리아가 사라센의 습격을 받게 된다. 이곳에 주재하던 비잔틴 관리는 재빨리 도망쳐서 목숨을 건졌지만, 주민들 가운데 살해당한 자가 6천 명, 포로로 잡혀 북아프리카로 보내진 자가 1만 명에 이르는 참상이 벌어진다. 약탈할 물건도 별로 없고 바다에도 면해 있지 않은 이 도시가 희생된 것은 노동력이 될 만한 사람을 납치하는 것이 복적이었기 때문으로 살해된 6천 명의 대부분은 늙은 사람들이거나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북아프리카는 여전히 노동력이 필요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마치 8-9세기의 사라센처럼 몰래몰래 여기저기 교회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약탈하는 사이비들이 성도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할 때 교회는 성도들을 보호하고 지며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스스로 그들을 막고 싸울 능력도 키워주지 않았다. 물론 스스로도 싸울 능력이 없었을런지 모른다. 고작 교계에서 내건 대책이 교회 문앞에 내건 "신*지 출입금지"라는 포스터 한 장이 고작이다. 교계가 강력하게 나서서 그들을 대적할 줄로 알았다가 고작 취한다는 대책이 이런 것을 보자 사기가 극에 달한 그들은 국내의 내노라 하는 신학대학 앞에서 상복을 입고 "신학교의 하나님은 죽었다"며 개개인 시위를 해도 막아내지 못하였고, 사기가 오를만큼 오른 그들은 떼거지로 그들의 정체를 방송한 교계방송국으로 몰려가 대단위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계는 그들을 대적하지 못하고 피할 길만 찾다가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녀석이 들어와 그들의 정체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초토화 시키는 일이 생겼었다. 비록 사이비가 그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가 밝혀낸 그들의 정체는 놀랍도록 어마어마한 공룡으로 자란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어떤 사이비 집단들이 어떤 규모로 몸집을 불리고 있을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가 장자인지 싸움만 할줄 알았지 정작 사이비 집단에 대한 대책은 전무했던 교계는 물론이거니와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면서 대형교회의 위용을 뽐내던 곳들도 사이비와 싸울 의지는 없었다. 귀찮아서? 아니다. 그 이유는 알만한 사람 모두가 안다.
사이비를 대적할 힘도 없고 성도를 훈련시킬 능력도 없는 교계는 앞으로 또 어떤 변명을 내놓고 성도들의 헌금을 받아갈까? 부끄러운 줄 알면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부끄러움도 모르면 미래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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