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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림] 이제 사도행전 1단계 마지막 시간이 남았습니다.

    • gtbc (gtbckim)
    • 2021-04-04
    • hit1278

    사도행전 읽기 진행

    긴 시간이었습니다. 한 주에 한 장씩 학습한다고 해도 28주가 되지만 한 번에 두 장을 볼 때도 몇 번 있었으니 그 정도는 아니었을지라도 제법 긴 시간을 한 것은 맞습니다. 정말 열정을 불태워 온라인 학습에 참여하는 분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긴 시간 전체를 한 번 주의깊게 살피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전체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어디쯤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기억하려면 한 번은 이렇게 거쳐가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끝나고 다시 또 사도행전으로 들어가면 지칠 수 있어서 사도행전 이전에 사도행전처럼 살펴 보았던 로마서를 다시 한 번 시도하게 됩니다. 이번엔 한 장씩 확인해 가는 것이 아니라 구간마다 담겨진 의미와 연결점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를 한 번 읽었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전체가 내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는 한 로마서는 늘 먼 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읽은 로마서 전체를 말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공부해 본 경험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지요? ㅎ

    GTBC가 왜 gtbc인지 두 번째 시간에 제대로 확인하실 수 있도록 해드릴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 로마서는 5월1일부터 시작될 예정입니다. 멋진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하면서 늘 열정을 다해 달려가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와 존경의 박수를 담아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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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제] 원어사용

    • gtbc (gtbckim)
    • 2021-03-28
    • hit1268

    성경의 원어

    성경을 기록한 언어는 구약 히브리어 신약 헬라어로 구분되지만 아람어로 기록된 부분도 일부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이들은 이런 원어를 공부하면 그 의미가 보다 정확하게 이해될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언어의 정확한 이해는 독해에 큰 도움이 되고 의미파악에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설교에서 원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됩니다. 사실 설교 시간에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단어가 아닌 문장을 원어로 한 번 말해보면 무언가 있어 보이는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ㅎ

    성경의 원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지 폼나 보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단어가 중요한 만큼 또 문장과 문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단어의 의미파악을 통해 얻는 것보다 구문이라는 방식을 통해 문장의 구성과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훨씬 더 저자의 생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단어만 이해하는 것은 왜곡된 의미로 접근할 가능성이 커지지만 구문을 아는 것은 본문에 더 충실해진다는 것입니다.

    단어는 원어고 구문은 한글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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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가룟 유다가 받은 돈의 가치

    • gtbc (gtbckim)
    • 2021-03-26
    • hit2638

    가룟유다가 받은 돈

    유다가 예수를 넘기는 댓가로 받은 돈은 은 삼십이었습니다.
    그것을 준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었으며
    예수의 정죄됨을 보고 죄를 뉘우친 가룟유다가 그들에게 돈을 돌려주려고 찾아갑니다.

    이 돈의 가치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유다가 돌려주는 돈을 받기 불편했던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다고 합니다.

    큰 돈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적은 돈이라 보기도 어렵습니다.
    가룟유다가 그 돈을 욕심낸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게 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비록 그가 자신의 죄를 뉘우쳐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받은 돈을 돌려주려 하였다고 그 죄가 사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욕심이 크건 작건 죄를 낳고 그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이들에게 
    크고 작은 욕심은 궁극적으로 스스로에게 유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상처와 고통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많은 사역자들과 겪어온 일들이 있습니다.
    욕심 앞에서 처절하도록 추해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역자이기 전에 주 앞에 선 거룩한 백성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도 주 안에서 복되고 즐거운 날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래는 유달리 잘 나온 사진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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