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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의 습관이 이런데..
평소에 책을 전혀 읽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책을 읽어볼까 생각하면 고민이 깊어집니다.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망설여지고 고민하다 결국 아무 것이나 한 번 집어보지만 끝까지 읽는 경우는 극히 드물죠. 책이라는 것은 습관처럼 읽던 사람이 아니면 갑자기 읽어지지 않습니다. 그나마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에세이집이거나 아니면 단편소설 같은 것은 크게 고민할 것 없이 집어들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이라고 다를까요? 평소에 성경을 읽는 습관이 없는데 갑자기 성경을 읽는다면 한 페이지 넘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하나님의 말씀이라니까 읽어보기는 하자는 생각이겠지요? 이렇게 몇 일 읽었다면 대단한 사람입니다. 무조건 읽기만 한다고 알아지는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읽어낼 수 있는 끈기가 있었다니 말입니다. 간혹 죄를 짓고 들어간 감옥에서 성경을 보고 회심을 하신 분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종종 듣습니다. 절박한 상황에서는 기가막히게 내용이 머리속에 들어가는 법입니다. ^^
대단한 이유는 성경을 읽을 때 창조로부터 시작하거나 족보로부터 출발했을텐데 족보와 같은 그 지리(?)한 과정을 잘 이겨내신 것이니 그렇습니다. ㅎ
평소에 책읽는 습관이 되지 않은 사람은 성경을 읽기가 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의 문맥이라고 하면 성경도 문맥이 있나요? 라고 하는 이들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흔할진대 구문이라고 말하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이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배우러 오는 분들이니 구문이 어떻고 문맥이 어떻고 해대는 것일 뿐 성경에 관심도 없는 이들에게 성경의 구문이 어떻고 문맥이 어떻고 하면 쏟아지는 졸음과 하품을 견뎌내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평소에 책도 성경도 그렇게 읽지 않는데 믿음 좋은 분들을 보면 정말 놀랍고도 신기할 뿐입니다. 정말 믿는 것은 맞는지 조금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행동을 보면 성경 전체를 다 알고 있는 것같은 열정을 보여주시니 그것만으로도 족하게 여기면 되는 것 아닐까요?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단지 신뢰한다는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하면 펄쩍 뛰죠. 왜요? 믿음은 아무 것도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믿으니 말입니다. 어쩐지 평소 책을 읽지 않는 분들이 믿음이 더 좋더라구요. ^^
공동체안에서 성도는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설교를 듣거나 묵상을 할 때마다 죄인이 된 느낌을 받는다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일까? 그런 자세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도의 죄의식은 단지 신앙적 이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성도에게 여러가지 의무를 부여하고 성도는 그 모든 의무에 반응하기 어렵다. 그리고 교회가 무여하는 그 모든 의무가 반드시 성경적인 의무라 하기 어렵다. 성도 스스로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전체의 평안과 기쁨을 위해 즐거운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봉사와 수고를 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필히 지켜야 하고 만일 그것을 수행하지 못할 때 죄의식을 가져야 할 의무는 아닌 것이다.
성도로서 마땅히 가질 의무라면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할 의무외에 없다. 성도가 가져야 할 의무는 하나님께 대한 것이고 공동체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성도들에게 여러 의무를 부여하고 그것으로 성도를 평가한다. 어쩌면 공동체이기에 그럴 필요가 있을 수도 있으나 그것은 의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역할로서 존중을 받고 직분을 받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이기는 해도 엄밀히 성도가 반드시 그래야 할 의무나 그것이 성도가 받을 복의 원천이라 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는 출석의 의무, 헌금의 의무, 봉사의 의무, 전도의 의무 등과 같은 기준이 정해지고 그에 반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마치 B급 성도로 취급된다는 인식을 갖게 만든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경에 대한 지적 성장의 의무는 거의 없다. 장로가 되기 위해 치루어야 할 시험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아는 바처럼 그것은 거의 형식적 과정이라 해도 틀린 말이라 할 수 없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다고 말하지만 실상 성도가 된 뒤 많은 의무를 부여하고 그것에 적합하지 못하는 경우 정상적인 성도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더 나아가 부끄러움과 죄의식을 갖게 만든다.
성도는 죄의식이 아닌 자랑스러움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도 공동체의 봉사와 행위가 구원의 상징으로 혹은 축복과 구원의 근거로 인식될 수 있다.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회는 적극적으로 성도의 신앙적 성숙과 그리스도에게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든든한 반석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 성경교육은 뒤로 미룰수록 교회는 점점 더 힘을 잃어가게 될 것이고 사이비는 꾸준히 교회를 잠식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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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교사
누구나 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밟아야 하는 과정이 있고 인준이 필요합니다. 그만큼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자신이 책임을 맡은 학생들이 어느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책임감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이는 자신이 맡은 내용만 강의하면 됩니다. 그러나 입시를 앞둔 반을 맡은 교사는 단지 자신의 학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맡은 반의 학생들의 시간과 마음관리까지 도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입시의 때가 되면 적절한 수준의 학교를 찾아주는 역할까지 하게 됩니다. 적절한 조율이 필요한 것이죠.
신학교에서는 설교학 과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체계적인 성도교육과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목회자는 설교만 하면 되는 것이고 성도를 교육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일까요? 그렇다면 신학교의 커리큘럼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자는 별도의 성경교육과정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자신이 원하면 할 수 있는 교육과정은 꽤 있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설교에 대한 부담감만 존재하지 성도들의 지적 성장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나만 그런것도 아니니 크게 문제될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시중에 나와 있는 몇 가지 성경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한 번 해보는 정도만으로도 꽤 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도가 성경을 알지 못하면 온전한 신앙인으로 자라기 어렵고 성숙한 성품을 가질 수 없습니다. 종종 교회의 중직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행동은 어른스러운 것처럼 느껴지는데 신앙적 생각과 판단은 어린 아이만큼이나 연약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쩌면 본인은 모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성경이 그의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 조직의 시스템이 그의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목회자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는 스스로를 신앙적으로 진단하고 성숙시킬 수 있는 능력이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을 속히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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