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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 그리스도인의 삶에 쉼이란..

    • gtbc (gtbckim)
    • 2026-10-29
    • hit114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도는 의무감?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에는 자신의 시간을 최소화 시키고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만 가득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창세기는 우리에게 하루의 쉼을 가져야 할 시간을 부여한다. 물론 종교적 열심은 이 쉼조차 법과 계명으로 가득 채워 무언가 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겨주면서.. 성도에게 주일은 쉼이 아닌 고단한 하루의 연속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교제의 즐거움 보다 봉사의 수고가 만들어 내는 고단함일 것이다. 돌아가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각종 섬김은 자리는 고정 인물로 배치된다. 심지어 두 세가지가 복합적으로 맡겨지기도 하고.. 교사의 일로, 성가대의 일로, 주차봉사의 일로, 주방봉사의 일로, 때론 청소와 주변정리의 일로.. 주일이 쉴 수 없는 이유들이 참 많다. 이렇게 해야 주일 성소를 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또 전도의 의무감이 있어서 실제 전도하지 못하는 삶에 대한 자책과 부담을 안고 사는 경우도 흔하다. 총동원 전도주일에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가야 한다는 부담감, 또 새로운 누군가를 전도해서 데려가야 한다는 부담감, 혹은 전도대상 명단을 제출하라는 일도 흔하고..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리 쫓기는 삶이어야 하는 것일까..

    주일 성수

    성도들의 주일은 주 중에 하루 쉬는 것이 쉬는 것이 아니라 섬김과 봉사로 채워지지만 늘 부족함을 느끼게 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온전한 주일 성수를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이에게는 주일 예배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있고, 어떤 이에게는 이런 저런 재능 기부를 하고서도 부족을 느끼게 하는 날이다. 모처럼 주말에 가족들과 한 번 여행을 하려해도 주일이 끼어 있으면, 심한 부담감을 느껴 차일피일 미루다 깨지는 일도 많다. 주일에 한 번 빠지면 그렇게 무거운 죄가 되는 것일까? 즐거운 마음으로 한 번은 가족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모인 곳에서 예배하고 교제를 가지면 안되는 것일까? 주일 공동체를 떠나 있거나, 목회자가 없는 예배는 예배라 할 수 없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만든 굴레 속에 자신을 가두고 그것이 섬김이며 예배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 말하듯 주일 미신에 빠진 것은 아닐까? 

    쉼이 필요한 이유

    ​​​​​​현대인은 한 주의 시간이 매우 빠듯하고 피곤하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즐거움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의무감에 하는 직장생활이 한 주 내내 이어지다가 주말이나 주일은 이런 저런 교회 활동 때문에 가족들과의 시간에 소홀해지기도 한다. 이웃과의 교제는 더할 나위 없이 어렵다. 주말에 친구들의 모임이 있더라도 함게 하기 쉽지 않은 것은 교회의 봉사활동이 주말에도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또 술자리라는 부담감 때문에 멀리하게 되면서 친구관계도 소홀해진다. 그런데 전도를 해야한다는 부담도 있으니 성도들의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목회자는 이런 성도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왜 친구가 없느냐고? 왜 전도할 대상이 없느냐고? 그렇게 만든 요인은 생각지 않는다.

    성도들에게 쉼이 필요한 것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또 복음 전파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주말 혹은 주일 조차도 믿지 않는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여유조차 박탈해버린다면 오늘날 교회가 쪼그라 드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나이든 사람들이야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만큼 사회생활의 여유를 가질 수 있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한참 사회활동에 주력하고 자라나는 아이들과의 시간을 갖기 원하는 젊은 가장들에게 교회는 심각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성도를 묶어 두는 것은 결코 복음의 진보를 위해 더 나은 방법이라 할 수 없다. 묶어두고 가두려 해도 오늘날 젊은 세대는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는다. 교회는 쉼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쉼을 권장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주변인들과 더 많은 교제를 가질 수 있는 지혜를 갖게 할 필요도 있다. 그것이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건강한 신앙생활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요즘 박호근 목사님의 하프타임 활동을 보면서 이것이 정말 교회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목회자는 성경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혜와 모범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현장에서 깨닫고 알아야 할 지혜를 전해주는 것이다. 인생의 하프타임 뿐만 아니라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다. 예배와 봉사로 점철된 주일의 시간들이 과연 지혜이며, 정답인지는 각 교회가 심각히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GTBC 성경교육원장 김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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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성경을 어떻게 교육할까 고민한다면..

    • gtbc (gtbckim)
    • 2026-10-23
    • hit271

    성경교육은 대부분의 교회들에게 있어 풀지 못할 숙제와 같은 것이다. 목회자가 성경교육을 시키고 싶기는 한데, 무엇을 어떻게 시도해야 할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중에 차고 넘치는 성경교재들을 보면 목회자 마음이 더 심란해진다. 교재를 집어 들어보아도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지, 확인하기도 어렵고 본인도 준비되지 못한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교재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교재의 활용 방법을 말해주지만, 그 방법이 무엇인지 배워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암호해독과 같다. 교회 성도들이 다른 교회 혹은 기관에서 하는 성경교육에 보내기는 불안하고, 자신은 준비된 것이 없고..

     

    1. 무엇으로 성경을 가르쳐야 할까?

    많은 사역자들이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무엇을 먼저 해야할까를 고민한다. 요즘 워낙 성경읽기, 혹은 성경교육 프로그램들이 많아서 무엇을 먼저 선택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만의 성경교육 교재를 만들고 싶기는 해도 쉽지 않은 현실인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본인 조차 학교에서 배운 신학이 아닌 성경 본문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주제별 성경공부 혹은 제자훈련 등의 프로그램을 주로 이용해 왔으나 최근엔 통독 성경 프로그램이나 '어 성경' 프로그램을 활용하기도 한다. 각기 가지고 있는 특징이나 장점이 있고, 꽤 괜찮은 프로그램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역자 자신이 도움을 얻는다는 말도 듣는다. 왜 아니겠는가? 문제는 어떤 프로그램을 선택하든 지속적으로 가르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업그레이드 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일반적으로 단회적인 프로그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지 "해봤다"로 만족하는 수준이라 해야겠다.

    결국 "무엇이 좋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실행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지속성이 있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2. 지속성이 없는 성경교육 이유는 무엇일까?

    배우는 성도들은 배우는 그 순간만큼은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알지 못했던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12주 과정으로 준비되는 경우가 많고, 12주가 지나면 또 다른 무언가를 선택하고 가르치거나 배워야 하지만, 사역자 홀로 고군분투 하는 작은 교회들은 이 하나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하나 마치고 나면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이어져야겠지만, 사역자 자신도 준비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애로사항이 크다. 만일 목회자가 성도들을 가르치고 난 뒤, 배운 성도들 중 한 명에게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게 맡긴다면 훨씬 수월하게 갈 수 있겠으나, 대부분 규모가 작은 교회는 성도도 몇 명 되지 않거나 배우는 사람도 자신이 가르칠 것이라는 생각으로 배우지 않았고, 가르치는 사람도 자신에게 배운 성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럴 것이면 교육은 왜 하는가의 의문을 갖게 된다. 시간이 지나며 배운 것도 잊어버리게 되고 가르친 사람도 동일한 것을 다시 가르치기에 부담이다. 가르침과 배움이 정체되고 자라지 못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역자가 많고 성도들의 숫자가 꽤 있어도 단계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교회는 흔치 않다. 오로지 사역자가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한, 개 교회 성경 프로그램의 지속성이나 업그레이드는 쉽지 않다. 흔히 교회가 말하는 사이비들도 이 정도로 무능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교회교육의 답은 없는 것일까? 없는 것은 아니다. 혼자 한다는 생각만 지우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많다.

     

    3.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라

    ​​​​성경교육은 일단 시작하는 것이 좋고, 가장 좋은 접근 방법은 앞서 언급한 기존의 성경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은 나름 성경교육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들이 만들어 준 것들이다. 12주 과정을 성실히 진행하여 성경을 알아가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배우는 사람이 즐겁지 않다면 다음 교육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의 교육을 이수한 사람에게는 몇 사람을 맡겨 가르치는 경험을 갖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각 장을 돌아가면서 발표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일단 교육이라는 것은 배운 사람이 확실히 습득하여 가르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가르치는 경험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결국 머리가 아닌 몸으로, 시간으로 봉사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는다. 단지 청소하고, 설겆이하고, 성가대나 주차봉사 등을 하는 봉사자로 남는 것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교회일까? 어느 날 진심으로 사이비를 만나면, 곧 바로 넘어갈 가능성이 큰 사람들이다.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키우지 않는 교회는 성경적이지도 미래적이지도 않은 교회라 할 수 있다. 

     

    4. 성경 66권을 권별로 가르치라

    어쩌면 목회자에게 가장 끔찍한 주문일 수 있다. "나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사실이다. 대부분의 목회자가 66권을 권 별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배운 적도 없고 가르친 적도 없다. 그래서 목회자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설교만 하는 것이 목사가 아니다. 가르치지 못하는 목사는 정상적인 목사라 할 수 없다. 자신이 먼저 배워야 가르칠 수 있다.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성경 66권을 권별로 학습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갖게 해 준다. 신학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성경을 가르쳐야 할 것인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권별 학습을 해본 기억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권별 학습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는 생각보다 많다. 본인이 실제 찾아보지 않은 것 뿐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구문의 기본 이론부터 배우면 권별 학습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GTBC 성경교육원은 이런 목회자들을 위해 성경의 각 권 구문을 보급하고 권별 학습을 가르치고 있다. 구문syntax을 알아야 각 권의 문맥Context을 배우고 이해 할 수 있다.

    종종 엉뚱한 것을 배워서 이상한 논리를 전개하는 이들을 본다. 성경을 배운 것이 아니라 잘못된 관념을 습득한 경우다. 성경을 어떤 관념으로 꿰 맞추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해박한 것처럼 말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관념에 빠진 본인은 성경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딱하지만 이런 경우 구제가 쉽지 않다.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상상과 꿰어 마추기식의 이상한 방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권별 학습은 이런 관념적 이론을 차단한다. 오직 성경 66권 중 한 권의 책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과정별로 업그레이드가 진행된다. 각 권을 한 번에 끝내는 것이 아니라 처음엔 전체적인 구조와 특징을 이해한 뒤, 본문의 구성이 갖는 의미와 배경에 대해 알게 하는 것이다. 깊이 있는 연구는 그 이후 갖게 된다. 각 권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다.

    무엇을 가르칠까를 고민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GTBC 성경교육원장 김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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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 개척교회 목사가 가지면 좋은 관심

    • gtbc (gtbckim)
    • 2026-10-16
    • hit91

    어떻게 목회를 할 것인가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사역을 시작하며 ​​​​​목회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여러 일로 알게 되었다. 부교역자를 마치거나 신학교를 졸업하고 개척을 할 때, 어떤 방향을 정하기에는 경험이 부족하고, 방법도 모르겠고, 당장 함께 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 건물부터 알아보는 것이 우선 순위였다. 건물을 얻을 때, 어떤 조건을 생각하는지도 알 수 없다. 단지 근처에 주택이나 아파트 단지가 있는지, 혹은 임대료나 보증금의 가격대가 적절한지 확인하기 바쁘다. 그러다보니 생각지 않은 실수도 자주 하게 된다. 도무지 들어가지 말아야 할 자리에 들어서는 것이다. 막상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고 해도 당장 함께 예배하고 일할 수 있는 성도가 없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월세의 시간은 총알같이 다가온다.

    목회란 것이 종합 예술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종합예술을 구사할만큼 준비된 것은 많지 않다. 목회자 자신이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것이거나 혹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쉽지 않다. 설사 그것을 안다고 해도 당장 써먹을 기회가 없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교회를 시작하는 이들이 있다. '독서실 교회'와 '카페 교회'로 문을 연 목회자를 만났다. 왜 이런 방식의 교회를 개설했는지 물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했다. 먼저 시작한 이들로부터 조언을 얻기도 했다. "그래서 정말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나?" 물으니 여러 애로사항이 많았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손님이 온다고 해도 이곳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쉽지 않고, 손님들도 알려 하지 않는다.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러 왔을 뿐.. 분위기를 교회처럼 만들 수도 없었다. 또 생각처럼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도 여기가 교회인지 카페인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실상 교회가 아닌 카페를 찾은 손님에게 복음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지 조차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이 맛있는 커피인지, 풍성한 말씀인지,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할 것인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몇몇 개척교회를 이끄는 목회자들의 속사정을 보고 들으면서, 그들이 이 혹독한 시기를 돌파하기를 고대하며 여러 세미나 혹은 비슷한 이들과의 미팅들을 이어가지만, 그 자리에서 얻는 위로와 용기가 현실적 상황에 부딪히면서 혼란을 겪는 것이 반복되기도 한다. 한 사람이 아쉬운 교회이기에 어쩌다 찾아 온 성도에게 집중하게 되고, 교회를 나온 그가 오랜 시간 함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온갖 것을 다 내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할 것인지 당황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 어떤 이유로든 그가 교회를 떠나면 상실감에 목회에 대한 깊은 회의감과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무슨 계획을 세울 수 있고, 무슨 방향을 정할 수 있겠는가 한숨만 나올 뿐이다. 결국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속에 늘어나는 것은 한숨과 경제적 한계상황이다. 어떤 목회자는 이렇게 푸념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었다.

    "이러실꺼면 하나님께서 왜 나를 부르셨을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목회자에게 나의 질문은 좀 잔혹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 맞나요? 혹 본인이 아골골짝 빈들이라도 가겠다고 서원하며 떠난 길 아닌가요?" 대답이 없다. 그랬다. 구약의 선지자를 부르신 방식과 오늘 우리 목회자가 된 것은 분명히 다르다. 본인은 부르심이라 말할지 몰라도 대부분 어떤 상황속에서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겨워지면 "왜 나를 부르셔서.."라는 한탄을 쏟아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할까?

    대부분의 개척 목사는 어떻게 사람을 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냥 기다리기만 한다면 일 년 내내 한 사람도 오지 않을 수 있다. 전도지와 휴지를 나누어 주며 전도할 것인가, 아니면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를 더 빡세게 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기를 기대해야 할까, 이런 저런 고민에 스트레스는 쌓여간다. 인테리어를 잘하면 성도들이 떠나지 않고 오래 머무를 수 있올까.. 개척교회의 인테리어를 아무리 예쁘게 한다고 해도 큰 교회들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환경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면, 그 답이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해결책은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척교회는 그 자체로 버텨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어쩌면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빠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제시하는 복음은 큰 교회도 작은 교회도 동일하게 제시한다. 어떤 면에서 큰 교회가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복음에서 작은 교회의 장점을 찾을 수 없다.

    이런 방법도 있다

    개척 목사는 어떻게 전도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요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동호회라는 이름으로 주변에 널려 있다. 즐기기 위한 모임이다. 목회자도 역시 그들과 함께 즐기겠다는 마음으로 동호회를 찾기를 바란다. 전도하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면 상대방이 불편하다. 각종 스포츠 동호회도 있고, 산악회도 있고, 주로 노인들이 모이는 동호회도 있는가 하면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동호회도 있다. 함께 즐기며 만나다보면 자신도 힐링을 얻게 되지만, 그곳에서 자신의 섬김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도 얻을 확률이 높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전도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으로 여기면,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최근 장애인과 일반인들이 함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체육관을 찾으며 상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지켜본다.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하고 싶고, 무언가 위로를 구하는 이들이다. 여기엔 정말 더 많은 기회가 부여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는 산에 오를 때마다 종종 암환자들을 보게 된다. 이렇게 해서라도 건강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다. 산에 오르면서 보게 되는 그들에게 어디가 아픈지 몰으면 바로 대답이 돌아오고, 그들을 위로하며 우리가 경험했던 일들을 나누면 매우 반가워 한다.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위로해주면 매우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위로와 격려를 더해줄 목사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목사는 현장에서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의 필요에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설교만이 목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 성도의 필요에 관심을 

    성도들마다 관심을 갖는 것이 동일할 수 없고 다르다. 무조건 믿음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잃는 가장 빠른 요인이다.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인지부터 알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영적 구원에 관심을 갖기보다 자신의 환경의 구원에 관심이 깊다. 특히 개척교회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힘겨운 이들이 많다. 교회도 힘든데 성도들도 힘들다. 힘든 사람들이 힘든 사람을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 서로 다른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말이다. 성도는 도움을 필요로 하고, 목회자가 그의 필요에 관심이 없고 단지 그를 필요로 한다면 관계의 지속은 어렵다. 목회자가 경제적 도움을 주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의 기도와 진심어린 위로와 격려를 필요로 할 뿐이다. 또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도 필요할 수 있다. 개척교회 목사는 그런 복지 지원제도 등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체의 건강이나 치료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있다. 목사는 의사가 아니지만, 의사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상실한 마음에 위로와 에너지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능력에 따라 신유의 경험을 갖게 할 수도 있다. 목사가 건강하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남의 일 바라보 듯 하는 이들이 많다. 진심어린 기도와 관심은 상대방이 먼저 느낀다. 목사는 반대급부로 무언가 얻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스스로의 기대에 상처를 주는 기억이 될 수 있다. 개척목사의 장점은 깊은 공감과 가까운 도움이라는 것이다. 

    물론 AI의 활용이나 화려한 기술 등이 목회자 자신에게 어떤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가진 것이 있을 때, 더 큰 장점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뜻밖에도 스스로가 발견하기 쉽지 않다. 오늘은 잔소리가 길어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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