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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과 혁신을 잃어버린 교회

  • 관리자 (gtbc)
  • 2020-10-09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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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세상을 압도할만큼 훌륭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전쟁의 참화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우리도 잘 살아보기를 꿈꾸며 허리를 졸라 매던 때 교회는 늘 사회의 모범이 되고 혁신의 아이콘처럼 느껴졌습니다. 수많은 청소년과 아이들이 교회로 발걸음을 향했고 각종 성경학교 프로그램들을 비롯한 교회의 교육 프로그램들은 학교교육이 벤치마킹 해야하는 대상이 될 정도의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던 때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교회는 세상의 화려한 그늘 뒤에 앉아 헛기침이나 하려들고 창의성도 혁신도 없는 수구꼴통들의 놀이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전의 나라 전체가 가난에 찌들었을 때 찬란하게 등장했던 시절 이야기나 하면서 옆구리 긁적거리는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속으로 들어가 빛이 되어야 하는 것은 창의력 넘치는 재주가 아니라 복음이어야 했고, 외형적 구제에 열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진심어린 사랑의 실천이어야 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것으로 봉사하고 구제 하였는가 등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아름다운 모습이 각자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기뻐하는 교회여야 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규모는 커져가지만 커지면 커질수록 세상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똘똘뭉쳐 자기중심주의에 빠져 자신들이 지상 최고의 존재들인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는 중화주의자들이 가진 중국몽 비슷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을 뿐입니다.
 
교회는 각자가 깨달은 바 신앙적 삶의 능력으로 세상 밖으로 나갈 때 신선한 아름다움을 줄 수 있으나 집단으로 모여 흩어지지 않으려 할 때 썩은 웅덩이가 되고 말 뿐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비대해지고 있을 때 그들이 밖으로 나서지 않으니 강제적으로 흩어 놓을 수밖에 없으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여전히 깨닫지 못한 교회들이 집단으로 무언가 의사를 표현하고 바꾸어 달라고 요구하지만 교회는 예수님 이후로 사도들까지도 세상의 권력에게 무엇을 바꾸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스스로 감당해야 할 일들이 있고 그것을 훼방하는 권력에 대해서는 주께서 적절한 시기에 당신의 능력으로 통치해 가시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방법임을 우리는 잊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은 필연이며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고난은 장차 다가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과정일 뿐 고난의 환경을 피하거나 바꾸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교회가 힘있는 권력자들처럼 행동하려 하고 세상을 향해 이런 저런 요구로 주물럭 거리고 싶을만큼 비대해졌을 때는 긴장감을 가져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두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한국의 거대한 기업들은 축적해 둔 각종 첨단 기술로 해외시장을 점령해 가며 국가의 경제성장 동력을 제공하고, "딴따라"라고 비하했던 각종 문화 컨텐츠는 비대면이라는 이 기회에 더욱 세계에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움을 드러내며 거대한 문화산업의 축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우리의 거대한 교회는 도대체 이 어려운 시국에 성도들에게나 국가에 도움이 되는 컨텐츠 하나 내지 못하고 도리어 국가정책의 비협조자요 방역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국민에게는 민폐가 되는 존재로 남고 있을 뿐입니다. 어느 순간 창의성도 혁신도 개혁도 모두 잃어버린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깊은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주도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처럼 떠들고 들레며 나설 때 하나님은 침묵으로 지켜보실 뿐입니다. 교회는 정치에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꼰대질 할 때 이미 혁신의 기운을 잃어버린 것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답답하지만 이제 교회는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이고 이 새로움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인정하고 우리는 그의 뜻을 따르며 복종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식을 가진이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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