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신뢰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중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친근감을 느끼고
동질감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분명히 있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이제 그런 생각이 거의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어느 교회에 나가는지 어느 교단 소속인지 물어야 하고
또 어느날부터인가 갑자기
정치적 견해라는 것이 생겨서 보수냐 진보냐 하는 갈등이 한 몫 더 하게 됩니다.
그러더니 또 다시
전염성 강한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과 더불어
온라인 예배가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어느 편에 서 있는가에 따라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상대의 의견을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갑자기 그리스도인 사이에 진영이 이리 저리 나누어지며
생각과 의지에 따라 갈갈이 찢기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고 하더니
그리스도인들의 속조차 도무지 알 방도가 없는 것은
서로가 자신이 진심으로 복음에 입각한 견해라 주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면..
도대체 예수님이라면 어느쪽에 서 계셔야 할까요?
서로가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이라고 비난하고 책망하는 그 곁에
과연 잠시라도 머물고 싶은 마음이 도무지 생기지 않으실 듯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요?
진실을 볼 수 없는 위치
부활이 있는지 없는지를 놓고 다투고 싸우던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사이에서
위기의 순간을 넘겼던 바울의 스토리가 떠오릅니다.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대립의 칼을 갈고 있을 때
진실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입술을 벌려 소리치지만
그 마음엔 사랑이 아니라 독설과 자기주장만 가득하다면
과연 그런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형제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데
도무지 생각이 다른 이웃은 사랑스럽지 않거나
하나님은 사랑하는데
도무지 생각이 다른 형제가 사랑스럽지 않을 때..
어쩌면 그가 가진 하나님 사랑도 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 서 있는가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내가 아닌
하나님 앞의 나를 바라보기 전에 우리는
그 어떤 진리도 마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시대를 읽고 성경을 빗대어 상대를 말하려 하지 말고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요.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라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며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 것을 더 기뻐하시고 원하시는지 묻는 것이 낫고,
어떤 정치가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로 싸우기 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이 행해지는 정치를 놓고 기도해야 할 것이고
마땅히 자기에게 주어진 투표의 권한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곳에 던지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습니다.
"너는 도대체 왜 그러느냐?"는 자세의 성토는
그것이 어떤 주장이든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판단하는 자의 자리에 서서 누군가를 바라볼 때
이웃도 형제도 그 앞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럽을 강타하고 미국도 혼란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잠시 좀 가라앉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 한없는 은혜가
우리 성도들의 기도 때문이었다고 말하기가 부끄럽습니다.
도리어 자신의 몸과 시간을 드려 헌신하는 이들에게
이 모든 결과의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이제..
좀더 낮고 겸손한 자리에서
우리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셨던 일들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었는지
스스로 진지하게 돌아보고 그 길을 돌이키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이 좋은 기회의 시간들이
연기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를 느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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