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로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
옛적 임금의 자리와 신하의 자리를 생각하면서
오늘날 우리의 신앙적 자세를 비교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정조 이산의 시기에 활동했던 정약용은
충성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임금을 섬기지만
시기하는 이들로 인해 종종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입신하여 궁에서 중직을 맡기도 했지만
모함으로 귀양살이도 하고 투옥되기도 하던 그의 삶에서
왕에게 원망도 많을 것 같은데
임금에 대한 그의 절절한 마음을 읽다보면 감동이 됩니다.
신앙인으로서의 삶이었기를 기대했지만
그가 남긴 행적에 모호한 요소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는 자부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에 접촉하기도 했지만
천주교를 반대하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천주교를 따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좌천된 시기에 천주교를 믿던
이존창의 검거에 역할을 했던 것을 계기로
그의 등용이 다시 거론되고 임금으로부터 호출을 받습니다.
그는 이런 대답을 합니다.
"선비가 등용이 되고 입신하여 임금을 섬기면서,
이징옥이나 이시애와 같은 역적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이것으로 공로를 삼기에 부족합니다.
하물며
천주교를 숭배하던 이존창 같은 하찮은 자를 잡은 일이
그리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일찌기 나라의 발전을 위한 계책을 내거나
공로를 세운 적이 없는데, 지금 버젓이 그를 잡은 일로 과장해
임금께 은혜를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죽어도 감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바라건대 임금의 뜻에 따름으로써,
저에게 부끄럽게 죽도록 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정약용은 이렇게 말합니다.
임금을 모시는 신하로서 나의 생각은 단순했을 뿐
관료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일을 부풀려 보고하거나
큰 일도 아닌데 마치 큰 공이라도 있는 것처럼
내세워서는 안된다는 평소 생각을 말한 것일 뿐.
그가 천주교 신자를 잡는 일에 공을 세운 것을
오늘날 신앙인의 관점에서
결코 잘했다고 칭찬할 일이 될 수는 없지만
임금을 향한 그의 자세와 생각을 보면서
우리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가져야 할 진정한 자세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성경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입장에서
만났던 많은 분들로부터 과분한 칭찬도 듣고
때론
우쭐한 마음으로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혼자 착각속에 빠져든 일도 있었음을 부끄러워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극히 마땅하고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으로 인한 어떤 보상과 결과가 있어야 한다는
그런 얄팍한 생각(수작)이 나를 사로잡으려 할 때가 많습니다.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에 드러나야 할 분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지만
그리스도를 빙자한 사람이 드러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개강이 있은 뒤..
몇 분이 더 수강을 할 수 있겠는지 묻습니다.
감사하고 기쁜 일이지만
현재 공간의 부족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분은 평일에 찾아오시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성실히 주의 일을 따르며
주의 복음을 사모하는 이들이 증가한다면
이를 기뻐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계기로
또 다른 선물을 기대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함께 가는 이 길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할 뿐입니다.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