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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우리의 교회와 성도는 안전할까요?

  • gtbc  (gtbckim)
  • 2026-10-06 14: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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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넘도록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오신 부부 이야기를 카페에 남겼습니다. 

1. 
내가 믿는 하나님이, 또 내가 믿는 그리스도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 분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는 어떤 분의 이야기를 하다가 10년을 넘게 성실히 신앙생활을 해오신 한 분 집사님께서 "저도 그럴 때가 종종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예배 후 카페에 앉아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부부가 모두 사회적으로는 엘리트 계층에 속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게 된 계기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여러 대화를 통해 모처럼 참 좋은 시간을 가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 
교회 생활은 처음 시작할 때는 여러모로 어색하다가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르익고 익숙해지면 참 편한 공동체이기는 합니다. 좋은 사람들의 모임인 것 같고 서로를 위해 헌신적이기도 하고, 위로와 격려를 통해 좋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나며 신앙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하고, 교회에서 시행하는 성경교육에도 참여하면서 무언가 알아가는 재미도 있게 됩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 교육이 지속성이 없다는 것이고, 순차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알아가는 즐거움도 잠깐 지나고 난 뒤, 후속조치가 이어지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그래서 뭐.."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관계의 즐거움은 그때 뿐이고, 교육은 그저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 어떤 자극적인 상황을 만나면 모든 의구심이 확정이 되고, 허탈함이 될 뿐입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성도가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 늘 위태위태한 줄타기를 하는 중인 것입니다. 

3. 
대부분의 성도가 성경교육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교회가 권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것 없어도 신앙생활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합니다. 교회생활에 성경을 잘 아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어떤 차이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위기(전혀 생각지 않았던 자극들 포함)를 만나게 될 때, 성경적 기초가 없는 신앙생활은 한 순간에 버릴 수 있는 허접하고 의미없는 지식과 생활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떠난 이들이 현재 사이비 집단이라고 알려진 곳에 참 많이도 가 있습니다. 예전 교회에서 가졌던 신앙생활, 곧 믿음을 적극적으로 비난하면서 말이죠. 이게 대부분의 우리가 가진 믿음입니다. 교회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도들을 보면 안전한 성도라 여깁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4. 
그러면 성경을 가르치면 될까요?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성경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단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즐거움과 유익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파노라마 같은 교육 정말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한 교육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일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을 읽는 재미와는 다른 의미로 유익합니다. 성경 통독 프로그램이 참 많습니다. 그렇게 읽게 만드는 것도 좋지만, 적극적으로 성경을 알고 싶어하는 성도들 외에 큰 의미를 갖기 어렵습니다. 지속적이거나 레벨에 따른 교육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는 한 가르친다는 의미의 성경교육은 지속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5. 
일단 소그룹 혹은 개별적으로 자연스럽게 성경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범위를 정해주는 것도 좋고, 책을 정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각자 읽고 느낀 부분을 이야기 하거나 혹은 평소 궁금했던 내용들을 나눌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위험하게 여기는 교회가 많습니다. 도리어 대화가 없는 교회가 더 위험합니다. 알고 보면 이런 대화나 미팅이 좋은 점은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궁금증을 양산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궁금증이 생길 때, 더 분명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됩니다. 궁금증은 의심과 같은 종류가 아닙니다. 더 알고 싶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의심을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야 더 정확한 지식을 가질 기회가 주어지고 믿음이 더 공고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심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런 대화는 맞고 틀림의 기준이 아닌 서로의 관계를 통해 더 깊은 관계가 형성될 뿐 아니라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적 대화를 막는 교회는 미래가 없습니다. 

6. 
경험을 공유하게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오래 전 교회에서 선교사 후원과 선교지 지원을 시행하면서 성도들의 참여를 유도했으나 반응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담임 목사님께 성도들과 함께 현지를 방문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씀드렸고, 실제로 성도들과 함께 현지를 방문하는 기회를 만든 뒤,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이 가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심지어 청년들은 현지의 가정에 흩어져 숙박을 함께 하는 경험을 갖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청년들은 자신이 묵었던 가정의 아이를 오랜 시간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경험의 공유는 성도의 신앙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게 합니다. 일반적인 중형교회에서 구역이나 목장 하나가 갖는 인원은 대략 10여명 정도 되거나 조금 작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규모의 성도들이 미자립 교회에 한 달,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을 정하고 참여하여 예배하는 경험도 매우 의미 있습니다. 주일 헌금도 그 교회에 내고, 각종 봉사도 참여하는 것입니다. 선교지 방문 못지 않은 큰 의미를 얻게 됩니다. 위험할까요? 천만에요. 멀리 볼 수 있는 지혜로운 사역자라면 적극적으로 권할 것입니다. 

7. 
성도들의 신앙은 지식만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수평적 교류와 체(경)험이 매우 중요합니다. 목회자와의 관계성만 가르치거나 권하는 교회는 규모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의지와 뜻을 따르는 교회라 말하기도 부끄러운 교회가 됩니다. 성도들을 잘 가르치지도 못하면서 관계와 경험을 주지 못하는 교회에서 성도의 성숙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10년동안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지킨 성도이기 때문에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심하게 곪은 부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는 자리를 지키는 성도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의 신앙적 성숙도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하고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기엔 여전히 부족한 교회가 많다는 것을 수시로 느낍니다. 스스로 점검하고 깨닫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GTBC 성경교육원장 김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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