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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믿음이냐 행위냐의 본질은..

  • gtbc  (gtbckim)
  • 2025-09-29 16:59:04
  • hit1856

믿음인가 행위인가

이것은 갈라디아서의 질문이 아니라 오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내재된 질문이라 할 수 있다. '오직 믿음으로'라고 하는 슬로건으로 개혁주의가 시작되었을지라도 여전히 성도들의 심중에서 이 믿음인가 행위인가의 질문은 살아서 움직인다. 결단코 '믿음으로'라고 대답한 이들도 그들 스스로의 행위의 부족함에 대한 자각이 주는 불편함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이유일까?

오랜 시간 어떤 방식으로든 구약을 접하며 듣고 본 일들은 모두 순종의 축복과 불순종의 저주라는 두 틀의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구약의 그늘로부터 성도들을 자유케 하였다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도 몇 가지 벗어날 수 없는 족쇄들이 존재한다. 주일성수를 비롯한 예배와 섬김, 그리고 직분자로서 가져야 할 각종 의무와 규례들은 우리에게 자유가 아닌 족쇄처럼 작용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편리하게 생각하자면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축복은 행위로 받는다'는 퉁치는 듯한 논리도 나온다. 만일 그렇다면 구원은 축복일까 아닐까? 믿음으로 얻는 구원은 영적인 축복이고, 행위는 육체와 물질적인 축복을 불러오는 통로라 여기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행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확실히 오늘날 성도들은 이런 저런 고민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다.

확실히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믿는 믿음이 가져온 축복이다. 이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이며, 이것은 구약의 율법의 행위와 신약의 은혜의 구원으로 확연하게 구분해준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에게 구약의 규례와 조항들이 따라와 있다. 살짝 형식과 이름만 바뀐 것도 있고, 그 이름 그대로 존재하는 것들도 있다. 신약의 우리가 구약의 그것들을 유지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무시해도 되는 것인지가 또 다른 곤혹스러움으로 남는다.

조직공동체로서의 숙명?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유지하게 만드는 조직organization이라는 틀을 무시하기 어렵다.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 공동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또한 조직 공동체라는 틀을 유지하게 한다. 조직의 유지는 몇 가지 필요한 조항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명분은 구약으로부터 가져올 수밖에 없다. 구약은 조직의 역사이지만 신약의 교회공동체는 구약의 그것처럼 조직적이지도 위압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신약의 교회가 확대되고 커지면서 규모의 면모를 갖추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모범을 따르자면 공동체를 유지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바울과 사도들의 전도로부터 시작된 교회들은 지금처럼 거대한 규모의 조직을 이끌기엔 어려움이 있다.

생각해보면 교회의 비약적 성장은 또 다른 조직의 출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조직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다양한 방책이 구약의 규례들로부터 근거를 찾는 것은 매우 위험한 논리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회의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서 믿음이냐 행위냐가 아니라 복음의 원리에 충실한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교회의 모습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말씀의 원칙을 준수하는 것과 낮은대로 흐르는 경제원리다. 부요가 축복이 아니라 부의 나눔과 흐름을 어떻게 운용하고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가 거대해지면 현재의 운영방식으로는 반드시 잉여예결산이 발생하게 되고,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맞는가의 원리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의 부패는 잉여예결산의 적절하지 못한 운용에서부터 시작된다. 구원은 분명히 믿음으로라는 것이 정답이라면 교회의 운용은 적절한 운용으로부터 의로움을 얻게 될 것이다. 구원을 얻은 성도들의 믿음이 거룩한 행위로 이어지는 것은 공동체 단위가 아닌 각자의 삶에서 나타날 수 있도록 이끄는 것도 교회가 숙제처럼 여겨야 할 문제다. 성도가 헌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처럼 여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마땅히 행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깨닫고 행하도록 교회의 리더가 도와야 하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규모가 작은 교회는 출발하는 순간부터 생존과 싸워야 하고, 규모가 커지면 잉여예결산이 발생하는 순간부터 목적과 싸워야 한다. 하나님의 목적인가 공동체 자체의 목적인가의 문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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