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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사단의 다른 관점
욥기서 1장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어떤 분이 당시엔 사단도 하나님의 아들들 중 하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 사단이란 이름은 특별한 사명을 가진 존재들이라고도 말하지만 근거가 빈약하다. 단지 구약학 교수라는 분의 생각일 뿐이다. 구약의 사단과 신약의 사단이 다르다는 의미로 들린다. 본문은 명백하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아들들이 섰고, 사탄도 '그들', 곧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에 섰다라고 구분한다. 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특별한 사명 같은 것을 부여할 만한 관계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 서서 여호와 앞에 나아온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단, 곧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존재에게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을 '자랑', 즉 소개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단에게 물으신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은 대답한다.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 자신의 의지를 따라 '두루 돌아'라는 말에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다닌 존재로 보여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 사단의 속성을 모르지 않으실 하나님께서 갑자기 욥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지시한 내용이 아니라 그, 곧 사단과 다른 속성을 가진 존재에 대한 말씀이다.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단 한 명의 존재라는 것이다. 족장시대에 기록된 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창세기에 기록된 족장들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보일 수 있다. 사단은 이런 대답을 한다.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 욥에 대한 말씀을 하셨으나, 욥은 그가 가진 것들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마치 하나님은 사람들의 속성을 모르는 분으로 묘사한다. "이제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주를 향하여 욕하는 자가 될 것이라 말한다. 오늘날 성도들이 말하는 복의 개념과 같은 시각을 가진 존재다. 그것을 거두면 그는 하나님을 욕할 것curse이라고 장담한다. 결론적으로 욥은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 시련의 초기와 시간이 진행되면서 얻는 고통이 커지면서 그의 원망도 혹독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욥이 곳곳에서 원망שִׂחִ֑하는 모습을 보인다. 얼마나 고통이 심하였으면 원망도 혹독해진다. 몰론 사단이나 그의 아내가 말하는 '저주'는 보이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환경속에서 이런 고통과 고난이 하나님의 의지며 뜻이라면 그 누구도 이를 거역하거나 아니라 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고통스러운 상황을 끝내고 싶은 그의 간절한 마음이 곳곳에 드러난다.
친구들과 욥의 다른 관점
그를 찾은 친구들과의 대화가 계속 이어지며, 욥의 당하는 고난이 그의 죄와 허물로 말미암은 것일 뿐 하나님은 죄없는 자를 치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욥은 까닭없이 맞은 것일까? 아니면 친구들이 말하는 바처럼 알려지지 않은 어떤 문제가 그에게 있으나 그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탓일까? 욥은 끝까지 자신은 친구들이 말하는 그런 죄를 짓는 자가 아니며 의를 따른 자라고 말한다. 화두는 욥의 고난이지만, 이를 통해 당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무엇인지 볼 수 있다. 친구들이 보는 절대자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시며, 모든 불행과 아픔은 그 일을 당하는 사람 자신에게 원인이 있는 것일뿐이다. 친구들은 고난을 당하는 욥의 위로자로서 찾아왔으나 결국은 욥의 환난의 현장을 보며 판단하고 정죄하는 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
그래서..
그렇다면 욥의 고난은 정당한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실수일까? 하나님은 그 고난을 허용하신 것은 맞지만, 그에게 고난을 불러 온 것은 사단이었다. 그럼 하나님께서 욥을 통해 사단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일까? 하나님은 욥이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고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사단에게 다시 한 번 말하니 사단은 욥 자신을 직접 쳐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건드리지 않게 하라는 범주에서 또 다시 사단은 욥을 걷잡을 수 없는 고통으로 밀어 넣는다. 사단은 고난이 욥의 마음을 흔들 것이고 하나님을 떠날 것이라 여긴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기사를 통해 하나님을 따르는 백성들이 깨달아야 할 것을 말해주고 계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고난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고난을 가져다 준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존재감이 박살난 상태다. 그러나 욥은 방법이 없었다. 하나님의 허용된 범위 아래 사단이 주는 모든 시련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것밖에 길이 없었다. 친구들과의 논쟁에서 욥은 끝까지 자신의 의를 주장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고, 자신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는 표현으로 결국 하나님을 죄없는 자를 치시는 불의한 분으로 몰아가는 결론에 이른다.
욥의 처음 고난이 시작된 때의 고백과 친구들과의 논쟁속에서 드러난 고백들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욥은 자신의 의로운 행위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고,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당하는 고난은 아니라고 믿었다. 그러면서 전능자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이런 고난을 누구에게든 주실 수 있다고 말한다. 이유없는 그런 고난을 말이다. 우리는 이런 논쟁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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