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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까 신앙일까
교회가 발벗고 나서야 할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옳지 않은 일에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의로운 일이지만, 신앙적인가의 문제는 신중히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교회가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영역이다.
최근의 대통령의 불법적 계엄령 선포와 이로 말미암은 탄핵의 여파가 교계에도 치명적 상처를 입힌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 공동체로서 집단의 입장에서 견해를 드러내는 것은 정치적 파급효과가 크기에 교회라는 이름으로 참여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회가 불법의 위치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불법이 아니라고 한다. 사회적 법규가 정하는 불법이 분명할지라도 교회가 불법이 아니라고 말하면 불법이 아닌 것이 될까? 법률가들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현재의 국가 위에 교회가 있다고 믿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정치일까 신앙일까..
신앙은 절대 아니다. 정치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치답게 표현하고 다투어야 하는 것이다. 신앙은 신앙으로서 대답해야 하는 것이 맞다. 교회가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 하게 된 것은 사회적 조직과 집단으로서 규모적 위력을 행사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예수께서 정치적 입장에서 어중 뜬 결정을 내린 빌라도와 그 문제로 다투지 않으셨다. 당시는 조직의 힘이 없어서였을까? 베드로는 칼로 이 사태를 막으려 했으나 예수께서 그 일을 막으셨다. 주께서 막으려 하셨다면 언급하신 열 두 영을 동원해서라도 막으셨을 것이다. 예수께서 보시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떤 이유로든 옳다고 여기지 않으신 것이다. 반면에 헤롯의 부정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는 세례 요한을 볼 수 있다. 어쩌면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을 통쾌하게 만들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의 결국은 매우 의미없는 죽음의 자리에 서게 된다.
교회가 나서서 어느 한 편을 지지하는 것, 심지어 그것이 불법인가 아닌가의 문제를 다루는 것까지 나서서 공개된 법적 타당성을 부정하고 있다. 왜 그럴까? 복음이 아닌 지도자인 목회자 한 사람에 의존하는 신앙적 체계로 말미암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스스로의 생각이 없이 정당의 의견을 따르는 정치인들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 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목회자의 입으로 나온다고 믿는 이들이 교회 안에 적지 않다. 목회자를 거역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왜곡된 사고가 성도들 의식세계를 지배한다.
성경적 지식이 없으니 유명 목회자에 사로잡힌 수많은 성도들은 자신의 가는 길이 무엇인지 따지지도 않는다. 생각지도 않는다. 올인이다. 자신이 믿고 따르는 목회자가 곧 천국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치명적 약점이다. 성경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출 기회를 갖지 못한 성도들은 집단의 이기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굴절된 신앙관 속에서 정상적 사고와 가치관을 갖기 힘들다. 결국 신앙적 판단이라 여긴 그것들이 신앙이 아닌 다른 것이라는 사고 자체를 갖지 못한다.
교회는 이쪽에도 저쪽에도 서지 말아야 할까? 아니다. 교회는 불법에 맞서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적 목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교회가 나서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나서는 것이다. 하물며 최근의 일부 교회들이 정치세력과 야합하므로 교회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성도들이 정신차리지 못한다면 교회는 더욱 깊은 절망속으로 빠져들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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