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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이제 깊이를 더해 가야 할 때

  • gtbc  (gtbckim)
  • 2024-12-27 15: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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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업의 기억

수강생들에게 첫 수업은 늘 지금까지의 익숙했던 것들로부터의 생소함을 덜어주어야 할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지금까지 설교에 익숙했고 은혜로운 감정이입이라는 어떤 대화들에 익숙해져 있던 이들에게 성경의 문법적 구성원리라거나 문맥적 이해와 사고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것은 생소함을 넘어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설교가 들을 때마다 은혜롭고 기대감을 갖게 할 수 있으나 오랜 기억으로 저장되기보다 즉흥적 감동에 머물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설교자 역시 이 감동이라는 부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 성경공부는 처음 익숙해지기가 어렵게 느껴질 뿐 한 번 배운 학습은 하나의 공식이 되기도 하고, 길잡이가 되어 스스로 성경을 읽고 보는 재미와 감동을 더하게 된다. 지금까지 여러 학습대상을 만나면서 목회자와 성도에게서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둘 다 이런 방식으로 성경을 학습해 본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설교와 성경학습의 차이

한 마디로 설교가 건물 내부의 디테일을 하나 하나 관람하며 설명을 듣는 것에 감동하는 것이라면, 성경학습은 건물 자체의 설계도를 보고 이해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건물의 모양과 속성과 용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내부를 세밀히 들여다 보는 것은 보다 분명한 깨달음으로 남게 된다. 동일한 본문일지라도 들을 때마다 내용이 달라지는 설교와 달리 성경학습은 튼튼히 세워진 기초골조부터 시작해서 내부의 구성과 디자인을 확인하는 것이므로 볼 때마다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볼 때마다 그 깊이와 넓이가 주는 감동이 늘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 말씀과 감동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알고 누리는 것이다.

첫 수업에서 이런 언급을 하면 대부분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첫 만남에 잔뜩 기대한 얼굴들에 찬물을 끼얹지 않기 위해 이런 저런 도입을 준비한다. 지금까지 알던 것들을 깨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알고 있던 것들에 더 분명한 힘을 얻도록 돕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깊이를 느끼며 공감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고정관념의 틀

한 번은 목회자 세미나 시간에 짧은 강의시간을 고려하여 책의 내용 전체 구성과 그 이해의 방식을알려드렸더니 한 분의 목사님은 매우 충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이구~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 이렇게 설교할 수 없어요. 지금까지 내가 배우고 가르쳤던 것들과 너무 달라서 당황스럽습니다."라고 하셨다. 그렇다. 서서히 본문을 보는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급작스럽게 핵심포인트에 접근하면서 부대끼는 마음의 갈등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성도들이 사이비를 만났을 때 그들이 전하는 생소한 것으로 그 목사님과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다면 좋겠으나 성도들은 사이비들이 전해주는 말에서 반대의 의미로 충격을 받는다. "왜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것을 배우지 못했지? 도대체 우리는 무얼 배운 것이지?"라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믿음이 가짜이고 사이비가 진짜라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무얼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런 반응들을 보이는 것일까..

한 권의 학습을 마치면

어렵게 한 권의 책을 학습하거나 마치면 다양한 반응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지금까지 교회는 가르치지 않았을까요? 혹은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신학교에서 배우지 못했을까요?라는 것이다. 왜?라는 질문은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이 있어야 배울 수 있는 것이고 가르치는 사람이 없으면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일단 교회에는 목회자 외에 성경을 가르칠 사람이 없다. 목회자가 배우지 못했다면 교회에서 성경을 제대로 배우기 어렵다. 어차피 신학교에서조차 배우지 못한 것이니 가르쳐 달라고 요구해도 응답해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는 그저 은혜로운 말씀이라는 것에 사로잡혀 오늘 내 감정에 위로가 되고 자극이 될 수 있는 것을 찾게 된다. 가수들이 한 곡 노래로 감동을 주는 것처럼 설교가 또한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노래는 돌아서서 배우고 흥얼거리기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설교는 다시 듣게 될 때 처음의 감동으로 다가가기도 쉽지 않다. 그런 설교에 익숙한 현대의 성도들은 성경학습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피할 방도가 곧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봉사의 시간은 있고 예배에 참석할 시간은 있어도 성경을 학습할 시간은 없다? 그럼 우리의 믿음에 대한 확신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얻게 된 것일까? 물론 설교라고 할 것이다.

믿음의 성장이 없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주일예배를 드리고 봉사하다가 돌아가서 또 다음 주 예배와 봉사.. 이렇게 일 년, 십 년, 오십 년을 신앙생활 해도 성경 한 권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면 그의 믿음의 근거는 도대체 어디서 찾을 것인가? 오늘도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 지으며 더 쉽고 나은 방법을 찾는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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