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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알고 싶은데..
왜 성경은 말하는 사람마다, 또 설교를 들을 때마다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전달되는지 그렇게 되면 성경은 아무렇게나 해석해도 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렇다 똑같은 성경 본문을 가지고 말하는데 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아니 납득이 되면 더 이상한 것이 아닐까?
본래 설교는 본문의 내용을 근거로 의미와 해석을 부여하는 것이 정상이다. 본문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일단 신학이 아닌 구문과 문맥이다. 신학은 큰 틀로서 해석이나 주장이 다른 길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잡아주는 다림줄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다. 다림줄이 없는 해석과 주장은 수많은 사이비를 양산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학도 여러 주장에 따라 교단이 형성되니 그 중 어떤 것이 더 옳다거나 그르다고 평가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 됩니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차용하기도 하니 말이죠.
문제는 성경보다 신학을 먼저 배우다 보니 성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지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아마 신학이라는 틀 안에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생각됩니다. 신대원까지 7년을 공부하고도 성경 본문해석에 절절 매는 것은 성경을 읽는 방식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성도들에게 체계적으로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배워서 가르쳐야 하는데 뒤늦게 성경의 구문과 문맥이라는 것을 배우자니 힘겨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적당히 시중에 나온 책들 중 주제별로 정리된 책을 가지고 교육하는 것이 편하니 성경학습과 더 멀어지는 것이 사실이고, 성경을 설교를 위해 사용하다보니 본문강독이 아닌 부분적 해석 차원에 머물러 성경지식이 자라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Say the Bible
세미나 혹은 강좌에서 제가 종종 주문하는 것은 어떤 책이든 성경 66권 중 한 권만 말해보실 분 나와서 발표하라는 것입니다.
책의 저자가 누구고 기록된 시기와 특징은 무엇이며, 배경적 상황은 어떻고 하는 내용을 말하는 것은 익숙해 있지만 그것은 자료를 통해 읽고 외운 수준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 다음 해야 할 일이 저자가 기록한 내용의 구분은 어떻고, 그 기록의 의도와 방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놀랍게도 신학적 주제와 내용은 간단히 말할 수 있는데 본문의 구성과 의도에 대한 언급은 거의 함구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함께 모인 분들의 교단이 다르고 신학이 다르니 다른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 그리고 부분적 이해와 설명은 가능해도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 본문을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학이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일까요? 연구자들 중 신학자들이 많다보니 신학에 대한 자부심이 속칭 '쩌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이야기에 들어가면 엉뚱한 소리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흔한 말로 신학도, 성경도 아닌 내가복음이 되는 것이지요.
교육목사 혹은 부목사일 때 배우면 참 좋겠는데, 그럴 때는 또 왜 그렇게 할 일이 많은지, 성경과 상관없는 불필요한 업무에 치이다 보니 성경을 배울 기회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다 덜컥 담임을 맡게 되면 심방과 모임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별 일 없는 것 같으면서도 시간에 쫓깁니다. 성도들의 기대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데 담임 목사님의 설교는 늘 제자리에서 맴맴 돌게 되죠. 성도들에게는 자기도 알지 못하는 성경을 자꾸 읽으라고만 하고.. 흔한 말로 "기도 많이 합시다"와 비슷한 의미의 구호에 불과할 뿐입니다.
내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성경
자기 입으로 성경의 내용을 말할 수 없다면 우리는 성경을 배운 사람도,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치 어릴적 이솝 우화 혹은 동화나 소설 같은 내용은 기억나고 말할 수 있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 교회를 다녔어도 성경의 내용은 도무지 기억하지 못하는 특징을 가졌습니다. 성경은 경전이라는 생각을 가졌다면 외우기라도 해야하겠지만 외우는 것은 필요한 중요한 성구 몇 가지일 뿐입니다. 책 한 권, 한 권 그 내용을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실력이 필요합니다. 처음엔 옹알이 하는 것처럼 말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전체 내용이 딱 정리될 수 있도록 발전해가도록 돕는 곳이 교회여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자기도 말하지 못하는 성경 66권을 성도들에게 덮어놓고 읽으라고만 하면 스스로를 속이는 자가 됩니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고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합니다. 한 번은 강의에서 한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와우~ 한 방에 뻥 뚫려 버리네요. 너무 쉽게 이해가 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해한 내용을 지금 바로 말씀하실 수 있는가 여쭈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셔서 발표를 시켰습니다. 몇 번을 다시 시도하겠다며 시도했지만 실패하시고, 하시는 말씀이 "난 왜 안되지요? 분명히 알아 들었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한 번에 뻥 뚫린 것 같아도 그런가 아닌가 확인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에게 선명하게 드러나는 본문의 내용들이 보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저자의 생각을 읽고 소통하기 시작했다고 보면 됩니다. GTBC 성경교육원의 목표는 바로 이 Say the Bible에 있습니다. 한 번 찾아오시죠.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
www.saythebibl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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