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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궁금증은 참 다양합니다.
성도들의 수준을 사이비에 대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상태로 유지하게 만든 것은 사역자들의 책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궁금증은 정말 다양하고 포괄적입니다. 이런 질문들을 하나씩 들어가며 함께 대화를 만들어 가면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성도들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많은 부분에서 대화의 제동이 걸립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드려집니다. 신학생들이 논문을 쓰면서 거론하지 말아야 할 대상들이 있는 것처럼 성도들은 어디까지 자신의 질문을 유지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때론 듣기에 불편한 질문도 있고, 때론 한 번쯤 새겨보아야 할 질문도 있고, 간혹 말도 안되는 듯한 질문도 있을 수 있습니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아직 건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역자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사역자는 이 모든 질문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어릴 때 늘 하는 질문 "이게 뭐야?"라는 질문처럼 성도들은 끊임없는 궁금증에 사로잡혀 있기 마련이지만 교회는 그들의 생각을 제한해 버립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질문도 궁금증도 사라져 버리죠. 성장을 멈춰버렸거나 포기해 버린 것과 같습니다. 대화가 없는 가정의 자녀들이 문제아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대화가 없는 교회의 성도들은 그만큼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도 배워야 하고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서로 편안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꽉막힌 소통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신학적 요소들에 관해서도 자유롭게 열어두면 좋습니다.
목회자가 신학교 다닐 때 신학적 제한요소 때문에 지식이 제한된 것이 문제일 수 있으나 도리어 성도들과 신학을 논하다보면 더 풍성하고 다양한 논지들을 접할 수 있게 될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신학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게 될 것이고 말이죠. 소통에 제한을 거는 것은 교회의 미래를 막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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