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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종려주일 후 세 번째 날입니다.

  • gtbc  (gtbckim)
  • 2024-03-27 12: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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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3. 27.

오늘은 종려주일 후 세 번째 날입니다.

그러나 내용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두 번째 날을 이어갑니다.
세 번째 날에 대해 성경이 침묵하고 두 번째 날 일정이 무척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바리새인 혹은 서기관(마가의 기록)에게 향한 예수님의 질문을 마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당신들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뉘 자손이지요?"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런가요?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기를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다'고 하셨으니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어떻게 그 곧 다윗의 자손이 되는지요?"


미처 생각해 본적 없는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부분 즉, 아무 생각없이 성경을 읽고 지나치는 부분이 우리에게도 적지 않습니다. 이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마태는 그들의 반응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 중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기록하였고
마가는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고 기록합니다.

함께 있던 백성들이 보기엔 평소 근엄하고 모든 것을 아는 척 하는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예수님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이 매우 생소하면서도 통쾌하게 여겨진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도 한 번쯤 즐거워하는 백성들에게 빙그시 웃어주셨을 것 같습니다.

조금 뒤 예수께서는 성전의 연보궤 앞에 앉아 헌금하는 이들을 바라보십니다. 부자들이 많이 넣는 것을 보시던 중, 한 가난한 과부가 드리는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 것을 보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라고 하십니다. 여러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가난하고 힘겨워 하는 사람을 아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하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렙돈은 가장 작은 단위의 화폐로 구리 동전입니다. 두 렙돈이라면 우리 돈으로 대략 6천원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당시 참새 두 마리의 값이 한 앗사리온이라고 했는데, 한 고드란트라면 이 앗사리온의 4분의 1의 가치를 가지니 참새 한 마리를 살 수가 없는 돈이 됩니다. 그러나 당시 사회적 환경에서 이 가난한 여인에게 이 돈은 적지 않은 금액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신 것은 그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가장 많이 넣었기 때문에 가장 많은 복을 누릴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렇게 드려지는 예물을 제멋대로 사용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의 마음이 더 크셨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께서 이어 말씀하시기를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과부의 드린 헌금을 삼키는 그들에 대한 언급입니다. 과부는 헌금을 드렸으나 예수님 보시기에 가장 큰 돈을 도적질 당한 사람이 된 것이지요.


마태는 이 부분에 대하여 좀더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예수님의 이토록 통렬한 책망과 저주는 길게 이어지는데 마 23:13-39에 자세히 기록되고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성전의 상좌에 앉고 어디서나 대접받기를 좋아하며 백성들의 고혈을 뽑아 먹는 그 불의함을 낱낱이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이 그들에겐 돌이켜 회개할 기회로 여길 수도 있었겠지만 어리석은 그들은 도리어 자신들의 수치를 드러내는 예수에 대한 적개심만 더욱 강하게 키워갑니다.

마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마지막 때의 징조를 말씀하시며 안타까워 하시는 모습을 남기고 있습니다. 무화과 나무의 저주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보는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날의 하루는 길고 고된 하루가 되었지만, 그러나 매우 중요한 일정의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은 이때의 상황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요 12:42-43

물론 오늘날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우리 속에도 이런 이들과 같이 베일 속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이들이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행적을 따르며 우리 자신에 대해 다시한 번 성찰하는 기회로 삼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 날에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부하시기를..

"주의하라 깨어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막 13:33
Take heed, keep on the alert; for you do not know when the [appointed] time is.

주께서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언제 들지 알 수 없는 도적의 비유와 청지기의 비유, 열 처녀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구별에 관한 내용들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 시간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서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모여 예수를 궤계로 잡아죽이려고 모함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이런 죽음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의 종려 주일 후 두 번째 날 일정을 보면 그 안타까워 하시는 모습이 더욱 절절이 드러나게 됩니다.

두 번째 날 일정을 마치고 베다니의 문둥이 시몬의 집에 머물 때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붓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그것을 아까워하며 여인을 힐난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하시며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머리 속에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예루살렘의 분위기였습니다.

이 일 후에 가룟유다가 대제사장들을 찾아가 예수를 넘겨주겠다며 돈을 요구합니다. 다른 제자의 기록을 보면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일에 가룟유다가 가장 분하여 했던 것 같습니다. 내일을 알지 못하는 제자들에겐 자기 생각과 다른 작은 것도 큰 실망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가룟유다의 비틀어진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이 위선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작 그런 자신의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그가 어떤 일을 행할 것인지 이미 알고 계셨으니 그 밤,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같은 밤 제자들은..
예수님을 환호하는 예루살렘의 영광을 생각하며, 즐거운 꿈과 함께 잠을 청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고뇌와 근심이 깊어만 가던 그 밤에..

출처: 김강래의 바이블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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