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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종려주일 후 두 번째 날입니다.

  • gtbc  (gtbckim)
  • 2024-03-26 11: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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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 주일 두 번째 날

뿌리로부터 마른 무화과 나무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기 위해 나서다 만난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에게 하셨던 말씀을 기억한 제자들, 그 무화과 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사건을 기록한 책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입니다. 그러나 마태와 마가의 기록에서 약간의 시간적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복음서에서 종종 등장하는데..

마태는 예수님의 저주가 있은 후 "곧 무화과 나무가 마른지라"고 기록하였으나, 마가의 기록은 화요일 아침 다시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기 위해 나설 때, 마침 어제 예수께서 저주하셨던 무화과 나무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뿌리부터 마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지난 일을 기억하는 것에서 제자들 사이의 약간의 시각 차가 있는 것에 대해 성경은 숨기지 않습니다. 이런 기억의 차이가 성경의 역사적 사실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이때, 궁금한 것을 참을 수 없었던 베드로가 한 마디 합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가 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이적을 지켜보았던 베드로에게도 이 상황은 특별했던 듯 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 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예수께서는 마치 자신의 공생애 마지막을 준비하시는 듯 제자들에게 너희도 믿음만 가진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훗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믿음으로 정말 훌륭한 사역들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순간 주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제자들은 도무지 알 수 없었지요.

이렇게 마지막을 준비하시는 주의 발걸음이 예루살렘을 향합니다.

종려주일 후 두 번째 날은 시기와 질투심에 가득 찬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서기관들이 찾아와 예수께 묻고 질문하며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 합니다. 마치 무화과 나무가 그러하 듯 이스라엘의 정신적, 신앙적 기조를 이룰 그들의 부패와 무능이 얼마나 처참한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찾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와서 예수께 묻습니다.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마치 백성들을 가르치는 것은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듯한 말투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진지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이 대답한다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지요.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 왔습니까? 하늘로서입니까? 사람에게로서입니까?"

순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곤란해졌습니다.

'하늘로서'라 하자니 '그렇다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고,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을 두려워하여 하는 대답이 "알지 못하노라"였습니다. 매우 정치적인 사람들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당신들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사실 그들의 관심은 예수께서 행하는 일이 누구로부터 온 권세인지 알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지위와 권위를 위태롭게 하는 예수를 어떻게 해서든 궁지로 몰아넣어야 할 생각 뿐이었을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초조함은 더해갑니다. 늘 그렇지만 초조한 마음은 불의의 과실을 불러옵니다.

예수님의 비유 세 가지

이어 예수님은 이들에게 몇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 하나는 두 아들의 비유와
두 번째 농부의 비유,
그리고 세 번째 혼인 잔치의 비유였습니다.

두 아들의 비유에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대답은 하였으나 순종치 않은 아들과 싫다고 대답하였으나 순종한 아들에 대한 비유의 결론은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농부의 비유에서는 주인이 농부들에게 일을 맡기고 떠난 뒤 주인이 실과를 받으려고 종을 보내니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돌로 치는 농부들에게 아들을 보내면 공경하리라고 기대했지만, 도리어 이는 상속자니 그를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며 아들을 죽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주인이 올 때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십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당연한 듯 말하기를 이 악한 자를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에게 세로 줄 것이라고 대답하지요. 그러자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당신들이 바로 그들이라는 말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그것이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인 줄을 알고 분노가 차올라 예수를 잡고자 하지만, 그들은 무리를 무서워합니다. 곁에 선 백성들은 지금 당장은 예수를 선지자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 누구로부터도 이런 치욕적인 언사를 들어보지 않았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입니다. 화려하고 거대한 성전과 그럴듯한 의상 뒤에 숨어 있던 그들의 속내가 낱낱이 드러나며, 그들이 가장 더럽게 여기는 세리와 창기만도 못한 자들로 불려질 뿐만 아니라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치명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 것입니다. 명색이 종교의 지도자들입니다. 주 오시는 날 우리 앞에 이런 일들이 또 없으리라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오늘날 신앙적 자기주의에 빠진 성도들 조차 누군가를 조롱할 처지가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예수께서는 한 가지의 비유를 더 말씀하십니다. 천국에 관한 비유입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중략)..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예루살렘 입성부터 모든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수퍼 스타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음을 안 그들은 음흉한 흉계를 꾸밉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부분이 드러나면 죄를 뉘우쳐 돌이키는 회개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의 영적 지도자이며 지혜자라 자칭하는 이들의 선택은 더욱 악한 길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종려주일 이후 두 번째 날 예수께서 행하시는 사역들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근심은 깊어가고 거룩한 휘장 뒤 그들의 음흉한 흉계는 더욱 예리하게 칼날을 갈게 합니다.

그들은 자기 제자들을 헤롯당원들과 함께 예수님께 보냅니다. 헤롯당원이 함께 하도록 했다는 것은 조그만 허물이라도 발견되면 그 자리에서 포박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예수를 찾아온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손에 든 비수를 감춘 채 아첨하는 말을 하는 이들은 기회가 닿는대로 예수를 향해 휘두르려 할 것입니다.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함정입니다. 내라고도 내지 말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속내를 모르실 주님이 아니시니..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Why are you testing Me, you hypocrites?"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신 예수께서 주화를 보이며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하시니 대답하기를 "가이사의 것이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말씀하시기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더 이상 할 말을 잃은 그들은 자리를 떠나갑니다.

사두개인들의 질문..

그러자 이번엔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찾아와 예수께 묻습니다. 대답할 수 없을 것이라 여긴 질문을 던진 것이겠지요?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마디로 이렇게 일갈하십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자들이 성경을 알지 못하는 세대,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세대 그들의 질문은 그저 어리석은 자들의 논쟁일 뿐이었고 이를 딱하게 여기신 예수께서 이 사실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지금 그들이 죽음 이후의 문제를 거론할 처지도 아닌 것이 오죽 궁색하면 죽음 이후의 문제를 들고 함정을 파려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걱정하고 염려하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은 산 자의 하나님이심을 그들이 알리 없었습니다. 죽은 자들의 논쟁은 계속 이어집니다.

바리새인들의 질문..

예수께서 정치적 종교인 사두개인들 조차도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바리새인들이 또 다시 모여 예수를 시험하여 묻습니다. 그들의 집요한 특성이 보여주는 것은 끝장을 보자는 것이지요. 자신들 외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정 받는 자는 용납지 못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리고..

그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해주신 예수께서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무엇일까요?

두 번째 날 사건 중 성전청결사건이 가장 중요한 사건인 것처럼 언급되지만, 성전이 그토록 잡다한 저잣거리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앞에서 본 것처럼 그 성전의 핵심을 이루는 이들의 처참한 모습들이 대변합니다.

둘째날 예수님의 일정이 그를 불편해하는 이들의 방문으로 매우 빡빡하고 바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종려주일 세 번째 날에 대하여는 성경이 침묵하고 있어서 많은 일이 있었던 두 번째 날을 두 번으로 나누어 올려드립니다.

종려주일 후 두 번째 날은 내일도 계속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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