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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 현장이탈 목회자

  • gtbc  (gtbckim)
  • 2021-12-27 17:16:39
  • hit1441

안부

오랜만의 소식이 궁금해서 전화를 걸면 반갑게 전화를 받기에, 요즘 목회 현장은 좀 어떤지 물으면 갑자기 목소리에 기운이 빠져 묻는 이가 민망해진다. 미자립교회 상당수의 목회자가 목회현장을 벗어나 투잡의 현장에 있다. 학부부터 신학을 전공하고 전형적인 목회를 해온 이들은 특별한 기술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아 그들의 투잡 현장은 주로 인테리어나 노동의 현장이다. 감사하게도 어떤 분들의 경우는 생각보다 괜찮은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힘겨운 목회 현장에 매여있을 때는 이것 저것 눈치보는 일도 많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으로 늘 쪼들리는 상황이었다. 재정적 압박이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택한 노동현장은 모두가 그렇듯 처음엔 노동의 강도를 견디기 쉽지 않았지만 적응되어가면서 수입도 괜찮아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물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많다. 알바를 전전해야 한다.

노동을 하면서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목회에 전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이도 있다. 그리고 뜻밖에도 노동현장을 통해 목회현장에서 얻은 수입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리다 보니 가끔은 다시 목회에 주력하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반응도 있다. 여러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차라리 수입이 생기니 마음은 편하다는 것이다. 역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했던가? ㅎ

사명으로 알고 시작한 목회였는데, 목회 현장을 벗어나 수입이 생기니 편해진다는 것이 참.. ㅎㅎ 섬김도 내 주머니가 넉넉해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인가 싶다.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아가며 불편하게 생활해야 하는 것보다 비록 조금 힘은 들지만 내가 수고한 것으로 수입을 얻고, 비록 많은 성도는 아니지는 예배인도를 위해 성도들 앞에 설 때에 면목이 선다는 눈치다. 이제 여기 저기 손벌리지 않아도 되고 때론 얻어먹기만 하던 밥도 좀 사면서 사람 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처음 노동현장에 들어서기까지가 좀 힘들었다고 한다. 그럴 때 우리 교육원의 목사님 중에서도 노동현장에서 수고하는 분들이 계시다며 이분들의 이야기를 전하면 그 말에서 힘을 얻는다는 분도 있다.

팬더믹 이후 문을 닫은 교회가 1만 교회가 된다. 문을 닫은 사정이야 말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고, 성도는 없는데 월세는 계속 나가야 하니 어떻게 교회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모처럼 통화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상황들이 반복된다. 이 시련의 시간이 어떤 목회자에게는 눈을 뜰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어떤 이에게는 여전히 헤어나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 되고 있다. 

 

문닫는 교회

본인의 의지가 아닌 시대적 현상으로 현장이탈을 할 수 밖에 없는 목회자는 우선 급한대로 직업을 알아보기도 하지만 기도와 끈기로 버텨내려는 이들도 있다. 어떤 결정이든 존중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이기고 더 나은 상황들이 주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할 뿐이다. 부교역자로 섬기던 교회로부터 물러나 쉬고 있는 분들도 있다. 섬기던 교회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아서 개척할 수 있는 부교역자도 있으나 그렇지 못한 목회자가 더 많다. 요즘 같은 경우는 개척이란 꿈꾸기도 쉽지 않다. 어떤 이유로든 교회로부터 이탈한 목회자들의 마음은 기존 교회에 대한 또 자신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목회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존 교회에 대한 불편한 감정들을 갖게 된다.

사실 문닫는 교회가 많아지면 그만큼 교회에 대한 적극적인 부정적 사고를 가진 이가 더 많아질 수 있음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들의 영향력이라는 것도 결코 가볍지 않다. 그들 주변에 쌓이는 부정적 영향력의 전파력은 기존 교회에 거대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이탈자들 중 상당수의 마음에 기존 목회자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 경우가 많다. 하기사 기존 교회들조차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목회자에 대한 신뢰가 그리 깊은 것은 아니다. 마치 도로 위의 모든 운전자에게 나 이외의 다른 운전자가 적이 되듯 자신의 교회 이외의 다른 교회는 신뢰의 대상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설교 중 가끔 하는 말이 (자신을 제외한)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어쩌고 저쩌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하물며 교회로부터 어떤 이유로든 이탈한 목회자가 기존 교회에 대해 곱게 바라볼 일은 흔치 않다.

 

상처입은 하나님의 나라

교회는 곧 하나님 나라의 지상 버전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지만 과연 그럴까.. 교회가 하나님의 거할 성전이라고 에베소서는 말씀하고 있지만 정말 이 땅의 교회들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으로 불려도 괜찮을까.. 그 누구도 쉽게 "예스"라고 대답하기 힘들다. 당연히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이다.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였지만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기 마련이다. 정작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 다움을 배우고 회복해야 하는 곳이다. 육적 공동체이면서 또 영적 공동체여야 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발하고 지속적인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비대면 시대가 되었고 이 확장성에 심각한 제한이 생겼다. 어떻게 해야할까.. 하나님 나라의 확장성은 전도라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성도들의 삶에 나타난 영향력이 미치는 확장성이 가장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비대면은 정말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다. 이때 하나님의 나라 거룩한 백성들이 사랑의 마음으로 주변에 따듯한 정을 나누면 어쩌면 새로운 교회의 도약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영국의 축구선수 손흥민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의 따듯한 마음과 미소에 온 세계가 열광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성도의 작은 실천과 미소가 미칠 하나님의 나라에 미칠 영향력은 지대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힘든만큼 다른 이들도 힘들다. 내가 아픈만큼 다른 사람도 아프다. 내가 위로받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들도 위로 받고 싶어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교회 곧 성도들이 빠른 전파력으로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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