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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팬더믹 앞에 교회의 대처는

  • gtbc  (gtbckim)
  • 2021-12-26 17:37:10
  • hit1899

코로나와 함께 일 년

새해 첫 예배에서 "포스트 코로나"라는 기대감을 갖고 시작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위드 코로나를 꿈꾸는 이들을 비웃듯 이제 알파를 넘어 새로운 변이종 오미크론이 온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교회는 여전히 예배를 위해 입장인원을 제한할 수밖에 없고 성도들 역시 예배를 위해 교회 나가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자칫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혹은 교회에게 코로나 확산의 매개가 될 수 있는 위험을 늘 안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해야 한다며 팬더믹이 끝나기를 기대했던 것과 달리 더 빠른 변이를 양산하면서 더 많은 중증환자와 사망자를 양산하게 된다.

이런 와중에 바이러스의 확산이 지속되는 교회는 백신 무용론을 주장하는 이들과 백신접종을 주장하는 이들 사이의 벽이 생긴다.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정보와 아집 사이에서 극단적 증오를 양산하는 이것은 또 정치적 입장으로 구분되기도 하면서 각기 주장하는 견해를 따라 보이지 않는 벽이 교회와 교회들 사이에 점점 두텁게 쌓이고 있다.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에 따라 정치적 입장으로 갈라지는 교회,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백신 필요론과 무용론을 주장하면서 갈라지는 교회는 지금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세상사람들이 아닌 교회 내 성도들에게도 교회의 이런 정황들이 당황스럽고 혼란하게 만들기만 할 뿐이다. 성도들도 서로 입장을 달리하다 보니 그 안에서의 다툼과 분열이 발생한다. 정치를 정치적 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신앙적 관점으로 해석하려고 시도하지만, 결국은 그 관점이라는 것도 지역적 논리에 의해 달라지기도 하고 정치 진영논리에서 달라지는 것은 동일하다. 모두가 하나 되어 극복하기에도 버거운 상황들이 뿔뿔이 흩어진 논리와 사고로 갈라지기만 할 뿐이니 이를 어쩔까.

본래 교회가 이 정도로 세상적 상황과 주장들에 의해 이리 저리 휘둘리고 나뉘어질 정도로 힘없고 무능한 공동체였던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상황들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것은 서로의 주장에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전문직인 의사나 혹은 정치가들의 주장을 빌려와 교회에서 근거로 차용하고 있으며 교회도 이것을 퍼나르고 있으니 교회가 말하는 주장도 신앙적 근거라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들의 주장을 듣고 있으면 답답함이 더해진다. 정확한 객관적 근거가 아닌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의혹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이들의 주장에 이토록 미혹되는 것일까?

 

어떤 입장이든 그것을 따르면 속게 되어 있다

정치는 소속정당의 주장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다른 소속당의 생각과 주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은, 그 뒤에 어떤 본색을 감추고 있는지 따져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이권과도 계산이 맞아야 한다. 설령 상대당의 의견이 좋은 아이디어일지라도 좋다고 동조해줄 수 없는 것이 표를 잃을 수 있기에 상대당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교회는 이런 정당들의 몇 가지 표면적 우호 뒤에 서서 그들을 응원하는 것이 곧 신앙적 행동인 것처럼 호도하기도 한다. 교회가 정치적 견해의 그 어떤 편에 서는 것일지라도 객관적 진실의 눈이 아닌 이미 전도된 사고와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게 된다. 어느 편이든 그들과 가까이 하는 교회는 그들에게 이용당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문제는 백신조차도 처음부터 등장했던 음모론을 활용한다. 한 번 등장한 음모론은 끝없이 그 증거물이라는 그럴듯한 자료들을 쏟아내게 되고, 그런 것에 한 번 눈이 뒤집히면 다른 의견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게 된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들은 수도 없이 많고 반복되고 있으나 알고보면 그저 음모론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그 모든 음모들이 눈이 뒤집힐 정도로 사실처럼 보이게 되어 있다. 물론 진실을 지키기 위해 경계의 눈을 부릅뜨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야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제한된 지식이나 판단력으로는 오늘날 너무나 교묘한 정보와 음모가 횡행하여 판단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어떤 정당들의 주장이나 신앙인들의 주장에 덮어놓고 신뢰를 심어주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 요즘은 각종 유튜버 영상을 활용하여 정보를 전달하는데 이 유튜버의 정보란 객관적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더욱 신뢰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들은 무엇을 신뢰의 근거로 삼을까... 놀랍게도 교단 혹은 가까운 목회자들의 정보에서 신뢰의 근거를 찾는다. 세상에서 가장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 위험한 정보일 뿐이다. 그러나 목회자들의 자기확신과 미친 전파력은 세계 최고라 할 수 있기도 하다. 그를 따르는 신도들은 그 영향력의 짙은 그늘 아래 있기도 하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역사의 교훈에 주목

역사는반복된다. 인간의 역사는 거의 되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객관적 시각에 눈을 뜨기 위해서 가져야할 지식 중에 가장 중요한 정보는 역사이며, 두 번째는 과학적 지식이며 세 번째는 신앙적 자세다. 문제는 과학적 지식이라는 것에 함정이 있다. 과학은 견해에 따라 다양한 논리를 제공할 수 있고 다른 결과를 제공할 수 있기도 하다. 과학은 신봉하는 이들이 검토과정을 확인할 길이 없으니 결과에 대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검토과정을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과학이라는 것이 정확한 도출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만들고 싶은 방향으로 조작할 수 있는 것도 가능한 것이 과학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존재하지만 바이러스와 백신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게 되는 것은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수치에 진입했는가 하는 것과 그들이 처한 진영의 편에 서서 주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함정이 있으나 일반인들이 그 진위와 의도를 알아낼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지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역사적 경험과 과학적 지식을 적절히 응용될 때 판단의 실수를 최소화 할 수 있다. 특히 진영의 논리는 더욱 곤란하다. 교회는 그 밖에 서서 지켜볼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역사의 기록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성경은 단순한 역사의 기록만을 남기지 않는다. 성경의 역사는 기획된 역사이며 의도된 역사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을 따라 진행되는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기록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신학이란 바로 그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하지만 학문으로서의 역사적 접근과는 확연한 차이를 갖는다. 역사적 관점만을 말한다면 성경의 역사적 관점보다 학문으로서의 역사적 관점이 도리어 더욱 객관적 사실을 볼 수 있게 하기에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판단하고 정의하는데는 학문적 접근이 도리어 더욱 신뢰할 수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전염병은 저주로서의 전염병이 대부분이다. 하나님의 기획이고 의도이며 깨우침을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전염병을 그렇게 해석한다면 심각한 문제 앞에 서게 된다. 교회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전염병은 세상 때문이 아니라 신앙인들 때문에 발생한 것일 수도 있게 된다. 하나님의 기획된 역사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의 역사를 부정하거나 배제하시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 세상의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더욱 빛으로 나타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성경의 역사로 오늘날의 팬더믹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전염병이 돌 때 교회들이 보여준

세상이 전염병으로 고통할 때 교회는 그들을 품고 보호하는 일에 주력하기 보다 그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려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교회는 스스로의 문제를 끌어안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죄와 허물이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주장해왔다. 전염병의 특성상 모임은 독이다. 사회란 모임을 이루지 않고는 돌아가지 않는 곳이 사회다. 교회를 비롯한 종교기관들은 모임이 곧 생명이나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의도였다면 하나님께서 왜 모임을 중단하는 극약처방을 하셨을까?

코로나 팬더믹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바로 자영업자와 종교기관이고 자영업자들은 홀로 싸움을 전개해야 하는 한 편 교회는 집단으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비대면 강화의 포화속에 놓인 자영업자들과 교회는 크게 반발할 수 밖에 없었으나 정부의 시책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교회가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술집은 저렇게 오밀조밀 모여서 마음껏 즐기고 대중교통은 빽빽하게 이동하는데 왜 방역을 철저히 수행하는 교회는 모임을 그토록 제한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항의가 형평성에서의 문제라 할 수 있을까? 자영업자 입장에서 보았다면 교회가 한없이 섭섭하고 불편하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수많은 교회들의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백신 무용론이다. 백신을 맞아도 소용없는 것을 왜 맞게 하는지 심지어 백신으로 사망한 사람이 더 많다는 괴담에 가까운 주장을 퍼옮기기 바쁘다.

아픈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교회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정부와 싸워야 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호하기 위해 싸워야 했다. 그들의 아픔을 공감해야 했고, 그들의 슬픔을 위로해야 했다. 모세가 자기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고백했던 것처럼 교회는 이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희생물로 내놓아야 하지 않았을까? 이 고통의 강은 쉽게 멈출 것 같지 않다. 누가 옳은가 그른가의 논쟁으로 시간을 보내기 보다 우리가 취해야 할 지혜로운 행동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할 때가 아닐까.. 그 지혜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래 링크는 현재 무너지고 있는 교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무종교인 증가, 개신교인 추락.. 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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