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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믿음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율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다.
율법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벗어난 유대인들에게 지키도록 명하신
십계명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라는 정도는 안다.
문제라면
그리스도인들과 율법은 어떤 관계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헷갈리는 이가 많다는 것.
율법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에서 벗어났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성경을 제대로 배우고 안다면 이런 문제로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 가운데 이런 문제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공부한 이들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구원을 위해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가
성경의 몇 구절을 들이밀며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이들..
어리석다기 보다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일 뿐이지만
한 번 훅 치고 들어온 의혹은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게 하고
자신의 믿음에 대해 혹은 자신의 섬기는 공동체에 대해 신뢰의 폭이 줄어들게 한다.
사이비들의 전유물?
대한민국의 상당수 사이비들 중 대부분은
이 율법의 문제를 빌미로 삼는 이들이 많다.
믿음으로 구원을 말하는 교회의 신앙에 대해 공격하며
율법이 없는 신앙의 삶은 무가치한 믿음이라 전락시키고
도리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무시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었다는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런 터무니 없는 공격에도 성도들이 쉽게 나가 떨어지는 것은
성경에 대한 무지도 큰 몫을 감당하지만
그것보다 교회가 설교의 여러 맥락에서
그런 생각을 갖도록 주입시킨 영향이 적지 않다.
하나님의 언약과 계시에 대한 이해가 없어
더욱 그런 혼란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고
성경의 책별이해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책 저책의 부분들을 엮어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도 혼란을 야기한다.
결국 이와같은 방식을 더욱 교묘히 활용한 집단에게
교회는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있었고
여전히 그런 방식의 교리와 속임수로
성도들을 미혹하는 집단은 왕성하게 활동중이기도 하다.
무지의 산물
우리의 지식적 한계로 만들어 낸 논리들이 가져다 주는 부실함은
때론 유치의 수준을 넘어 천박하게 느껴질 정도이기도 하다.
신학적 사고와 논리적 한계의 경계선은 존재하지만
다양한 설득과 학자들의 언어를 빌려 그 부실함을 메우려 할 뿐이다.
결국은 스스로 성경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열정의 부족이기도 하고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맹목적적 믿음을 따르는 이들이 문제가 된다.
교회가 흉내만 내는 존재로 전락하는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도 단절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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