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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기온 영하5도
오늘 저녁 9시가 되면 영하 9도가 될 것이라는 예보가 있군요. 이 추운 계절에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 덕분에 이렇게 좋은 사무실로 들어와서 그런지 히터를 켜지 않아도 추운지 모르고 지내게 됩니다. 남향이어서 오전 내내 햇살이 강하게 들어와 덥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더 성실히 연구에 매진하라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날이 추워지니 창밖의 하늘도 맑고 푸르게 보입니다.
요즘은 하루의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고 싶은 일들은 많고 해야 할 일들은 너무 많은데 무언가 조금 꿈지럭거리다 보면 하루의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날이 어두워집니다. 이것이 시간의 문제인지 모든 것에 느려터진 나이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지만 젊은 시절만큼의 능률을 올리는 것 같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부실한 능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할 일들을 뒤로 미룰 수는 없으니 느리고 답답하지만 한 걸음씩 전진합니다.
예전 기독강좌사이트 온바이블을 준비할 때 함께 협력하자며 오셨던 여러 기관장들과 요즘 소통을 하면서 20여년 사이 그들의 영역이 얼마나 커지고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는지를 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야말로 저는 25년이라는 시간을 땅속에 파묻고 살아온 느낌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기형적인 가치관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여러 생각들을 갖게 됩니다. 그 중에 목회자와 신학생들이 아닌 일반 성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기회를 더 많이 가졌었더라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서울의 시청앞으로 교육원을 이전하기 전 부천에서 보냈던 시간들은 이 경계선에 구분을 두지 않고 활동을 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육의 효과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틀림없이 부천에서의 시간들이 예전 20년의 시간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가치가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결론을 얻게 된다고 해야할까요? 분명히 어떤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팬더믹이 극성을 부리기 전 교계는 거의 사이비 쓰나미에 무너져 가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들과 싸우던 기독교 방송국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어도 대부분의 교회들은 침묵하는 이런 발칙함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날들이었지요. 교회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크게 대응해야할 필요도 또 문제의식을 갖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볼 도리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차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면서 사이비의 세계를 만천하에 낱낱이 드러나게 하였지만 그때뿐이었다고 해야할까요? 여전히 그들은 암암리에 집회를 갖고 포교활동에 전념하는 사이 교회들은 문을 닫고 예배를 드리느니 마느니 정부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바뀐것일까요?
원인이 없는 현상은 없다.
코로나 팬더믹이 있기 전 한국의 하늘은 교회가 사이비의 그늘에 가려 힘들었던 것처럼 늘 뿌연 안개와 먼지로 가득했었습니다. 우리 교육원이 부천에서 활동을 하던 중 코로나 팬더믹을 맞았고, 이후 시청앞으로 오면서 바라 본 하늘은 늘 맑고 푸른 하늘이었습니다. 하늘이 맑지 않다는 것은 어딘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고, 그 희뿌연 하늘의 문제가 되는 근원지는 중국이라는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으나 나라가 힘이 없으니 은근히 주저앉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그냥 시간을 흘려 보냈습니다. 국민들은 그 오염된 공기와 먼지를 흡입하여 각종 질병을 앓고 각종 병을 얻어 죽어나가도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는 무능하게 보이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분명한 것은 힘없는 정부가 해결하지 못해도 코로나가 그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만천하가 알게 한 것입니다. 중국도 이젠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죠. 생각지도 않은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라 해야겠지요? 아무튼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제거하지 못하는 한 그 고통은 또 앞으로도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죠. 한국교회가 이토록 무능하고 힘없이 무너져 가는 것 역시 어떤 원인이 있을 것은 분명합니다.
밤에 나가 바라 본 시청앞 성탄트리에 십자가가 걸려 있더군요. 이것도 종교적 색채라며 다 떼어냈던 지난 시간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성탄에도 십자가가 세워지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세상에게 너희가 틀렸다고 소리쳐 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리고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부끄럽게 여긴다는 것을 교회는 알까요? 성도가 왜 교회를 부끄러워 해야할까요? 세상을 향해 교회가 대처하는 방식이 상식적으로도 옳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사이비들이 그토록 극성을 부릴만큼 수많은 성도가 그들에게 현혹된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그들이 믿음이 부족하고 연약해서 넘어간 것일까요?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니 어둠을 빛이라 여기는 이들이 그들을 따라간 것은 분명하겠지요? 교회는 왜 빛을 잃어야 했을까요?
우리의 그곳엔 맑은 하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맑고 푸른 공기가 있어야 하늘의 빛이 이 땅에 골고루 뿌려질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과 교회 사이에 가로막힌 뿌연 먼지가 너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 오염된 먼지를 사이비 집단이 뿌리고, 타종교집단이 뿌리고, 악독한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 것일까요? 사실 그들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과 성도의 소통을 가로막는 먼지는 교회가 뿌린 것이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말씀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 길도 없습니다. 엉뚱한 행동과 규칙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고 그것이 우상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죠. 성도들의 눈을 어둡게 하고 병들게 하고 방황하게 한 것은 교회 밖의 어떤 존재들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할 사람들이 그 일을 못한 것입니다.
위드 코로나?
코로나와 함께 살아야 하나요? 궁극적으로 해결할 방도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정말 그럴까요? 코로나와 함께 살 수는 없습니다. 위드 코로나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날짜로 확진자 7천명 찍었습니다. 어제 사망자 70명을 넘겼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더군요. 발표되지 않았지만 백신맞고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신앙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보인다고.. 그들의 신앙의 눈을 바로잡아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오늘도 사무실 창밖 확진자 보호소가 된 호텔엔 번쩍거리는 앰뷸런스가 수도 없이 오가고 있습니다.
영하의 한파에도 광화문 길 백신반대 부스는 아직도 자리를 지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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