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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경계4단계와 올림픽
교회는 모임을 갖지 못한 채 온라인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온라인 예배를 마치고 유튜브를 끄면 곧바로
올림픽 중계방송으로 이어지는 것은
단지 우리집만의 풍경이 아닐 듯합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이어지는 올림픽 중계가
우리 가족들의 관심을 후끈 달아오르게 합니다.
예배를 드리던 그 분위기와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입니다.
예배는 거룩하게 드려야 하고 올림픽은 축제??
아무튼 코로나 팬더믹 덕분에 집에서 편하게 예배하고
또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가지게 됩니다.
식사 중 쒼나게 응원하면서 경기를 지켜봅니다.
바로 전 드려진 온라인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그렇게 응원하고
열정적으로 찬양했나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들자 좀 머쓱해집니다..ㅠ
만일 예배당에서 드린 예배시간이었다면
예배를 마치고 몇몇 모임이나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대면 예배는 공예배가 마치자마자
곧바로 올림픽으로 관심을 전환하게 만듭니다.
교회는 에클레시아입니다.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말씀의 배움이 있고 식탁의 나눔이 있으며 교제가 있는 곳입니다.
모두가 모이지 못하니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기에 집중하며
가족 공동체의 에클레시아의 시간을 갖는 것이죠.
부정적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 기능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의 행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마치 구약의 제사에 참여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오늘도 출근하면서
비대면 예배를 강요하는 정부를 성토하던
어느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성경에 비대면 온라인 예배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예배라는 단어는 존재하는지 한 번 찾아볼까요?
예배 후 곧바로 식사시간이니 식탁 앞에서
올림픽 중계를 보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부분은
그렇게 공동체와의 교제가 서서히 멀어지면서
각자가 섬겨야 할 공동체와 점점 거리를 두게 될런지도 모릅니다.
팬더믹이 곧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처럼..
올림픽과 더불어 팬더믹을 즐기다(?)
화려하고 생생하며 긴장감 넘치는 화면속 경기들에 몰입하며
그 뒤의 감동적인 에피소드에 또 관심을 갖고
감동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면서 보내는 주일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예배가 그런 감동과 즐거움이 있으면 안될까요?
우습게도 코로나 팬더믹이 진행중이어서인지
그런 절망적 상황을 알리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올림픽 개막식의 장면들은 정말 너무 처참했습니다.
흔한 말로 좀비들의 향연이었고..
외국의 어느 평론가들의 말처럼 장례식 분위기였습니다.
축제여야 할 올림픽 분위기마저
일본사람들은 장례식 분위기로 만들어 버린 것이죠.
우리의 예배는 축제인가요, 장례인가요?
올림픽 전 중국의 처참한 홍수소식에 이어
곧 이틀쯤 뒤 도쿄로 다가올 태풍소식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다행히 그런 물난리를 피했는가 싶었는데
연일 폭염이 지속되며 많은 일사병 환자들과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는 축제의 마당이 펼쳐지고
또 다른 곳에서는
재난과 상처의 고통을 안고 몸부림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진정한 예배는
축제의 자리에 머물러 즐기며 흥분하는 것보다
어쩌면 재난과 고통의 현장에 눈을 돌리기를 원하시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는
자기가 재난의 현장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말하기를
자기를 돌아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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