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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는 끝납니다.
비록 그 끝나는 시점이 언제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어도 온 인류를 공포와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코로나 바이러스는 반드시 종료될 것으로 믿습니다. 비록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독감 바이러스처럼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낼지라도 코로나의 팬더믹 상황은 반드시 종료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 시대와 이후시대로 구분될만큼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막연히 이전 시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는 것이 현명한 생각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코로나가 종식되는 것과 함께 우리와 익숙했던 많은 것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경제, 사회, 정치적인 면에서도 그렇지만 신앙적 요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분야에 관해서는 제가 언급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신앙적인 면에서 앞으로 우리는 어떤 것들이 달라질 것인지에 대해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가치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어쩌면 우리가 달라지려 하지 않아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변화는 의식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알고보면 의식의 변화는 환경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교육으로 달라지는 의식도 있지만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의 변화는 의식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정착하도록 만들죠. 예를 들면 모두가 가난한 시절에 가졌던 생각과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 다릅니다. 모두가 가난하고 어려울 때 가졌던 꿈과 기대감, 그리고 부끄러움과 수치에 대한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가난한 시절의 꿈과 소망은 부자가 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남보다 많이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배움의 기준도 미래 투자적 가치가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안정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라 여긴 의사, 변호사 등이 가난할 때 가진 사람들의 꿈이었고 희망이었지요. 돈과 명예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직업이라 믿었으니까요. 요즘 의사나 변호사를 꿈꾸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요즘은 부자가 되는 것보다 행복이라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기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부여되는 직업을 선호하게 되지요. 오늘날의 꿈은 단순한 부자가 아니라 보람과 행복이라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합니다. 그래서 돈을 모아두는 것보다 의미있고 가치있게 쓰는 것을 더욱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적 우선순위도 달라집니다.
오늘날 교회가 추구하는 신앙적 가치는 무엇일까요? 시대에 따라 신앙적 가치와 추구하는 요소들이 변화되어 왔습니다. 가난한 시절의 신앙적 목표는 자녀들의 성공과 부에 있었습니다. 어릴적 부모님들의 기도를 들어보면 자녀들이 남들의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되고, 빌려줄지언정 꾸지 않는 삶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물론 요즘도 그렇게 기도하는 부모님이 계시긴 합니다. 문제는 자녀들이 그런 기도를 듣는 것이 불편할 뿐일지도 모릅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신앙생활에 큰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올바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는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그런 기도조차 포기하는 분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요즘 성도들은 지금 내가 가진 신앙이 절대적인 가치인 것이 맞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가 주는 믿음과 확신이 이제 점점 흐려져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굳게 믿었던 신앙에 대한 회의가 그들을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사이비 집단에 관심을 갖게 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이런 교회들 덕분에 대한민국 사이비 집단들은 대단한 세력을 얻게 되었고, 이제 자신들이 사이비라는 것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기존교회에 대해 교회가 가짜라고 주장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다고 교회가 분명하게 무엇이 진짜이며 무엇이 가짜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런 교회를 신뢰할 수 있을까요?
교회의 예배는 절대적 가치로 여겨왔습니다. 예배가 그동안의 교회를 지탱시켜 주는 유일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예배가 곧 교회교육의 모든 것이었고, 예배가 곧 신앙의 능력이었으며, 예배가 신앙의 모든 기준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예배 마저도 대예배 중심의 신앙이 되었고 나머지 예배는 거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수준이었음에도 교회는 전혀 위기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예배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성도들 입장에서도 대예배만 참석하면 마치 모든 면죄부를 부여받는 것 같은 신앙생활이 되었습니다. 주일 대예배만 드려도 목장예배 혹은 구역예배와 같은 소그룹 관리 기능이 있었기에 그나마 버텨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온 환경은 그토록 강조하고 자부하던 예배조차도 이제 성도들의 의식속에서 점차 가치의 비중에서 축소되어져 갈 것입니다. 아직 누군가가 예배의 가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뿐 교회가 성도의 신앙적 가치를 실속없는 예배 중심으로 버텨온 것을 알게 되면 점점 예배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예배 말고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요? 아니죠. 여전히 예배 말고 다른 것은 필요없다고 여기는 교회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예배가 마치 구약의 제사라도 되는 것처럼.. 예수께서 원하신 것이 그 예배였을까요?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그 예배였을까요? 교회는 이미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어쩌면 이제라도 그 준비를 하는 교회가 미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의식의 변화는 환경의 변화로부터 시작합니다. 코로나가 사람들의 생각을 이미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무너지지 않은 흔들림일 수 있습니다. 그 속에 균열을 만들어 놓기만 한 지진이었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 균열은 더 작은 흔들림에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하고 거룩하게 여겼던 예배에 대한 생각이 이미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팬더믹으로 인해 알아버린 것들이 있습니다.
캐톨릭을 형식만 남았다고 말하던 교회도 그들과 예배의 형식만 달랐을 뿐 신앙적 위기에 대해 전혀 준비되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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