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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 hypocrite, first cast out the beam out of thine own eye; and then shalt thou see clearly to cast out the mote out of thy brother's eye.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태복음 7장의 이 말씀을 아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눈에는 들보가 있을 것이라 믿지 않는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사람부터 그럴지도.. 여기 이 말씀의 대상은 a hypocrite 외식하는 자 혹은 위선자를 의미한다. 위선자란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하는 척 하는 자를 말하고, 자신은 죄가 없는 척 하면서 남의 죄를 지적하는 사람을 말한다. 본문을 근거로 하자면 누군가를 비판하고 헤아리는 자를 말한다.
요즘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비판 받는 것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자신이 비판을 받으면 발끈하여 곧바로 "그래? 그런 너는 어떤데?"라고 쏘아 붙일 것이다. 비판은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예수께서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누군가에게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 전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정작 상대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 자신은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다. 누군가의 문제를 지적하기 전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일한 선상에 서서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야 말로 위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와 거짓의 논리는 다르지 않을까? 진리의 편에서 거짓을 지적하는 것은 동일선상이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무엇이 진리인지 서로가 분명하지 않을 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 수 없고 다툼과 분쟁만 발생할 뿐이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진리를 말하는 것에 대해 핍박을 받을지는 몰라도 진흙탕 싸움은 없다. 그러나 거짓에 대하여는 다르다. 진리는 거짓과 동화될 수 없을 뿐더러 그들과 함께 할 수도 없다. 진리에 서지 못한 자들은 문제를 지적 받을 때 반대로 모함과 계략을 사용하여 스스로를 정당화 하려한다. 거짓은 근거없는 모략과 모함을 통해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으로 통쾌함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직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심판은 면하기 어렵다.
진리의 편에 선자는 핍박을 당할지언정 진리를 주장하기 위해 거짓이나 모함을 사용할 수 없다. 결국 이 땅에서의 싸움에 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는 이기는 자리에 설 수밖에 없다. 자신의 눈에 들보는 곧 자신의 위선이며 자신의 위선을 감추기 위해 거짓을 사용하는 것에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 말하는 것은 그의 문제를 지적하여 수치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안고 있는 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이키기 위한 것이라면 핍박을 각오하고라도 문제를 말하되 지혜롭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란 거짓으로 속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깨닫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개선의 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 많은 사람을 지옥의 자녀로 만드는 악독한 자들에게는 예수께서도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이라는 말씀을 거침없이 쏟아내셨다.
우리가 알고 깨달아야 할 들보.. 위선이며.. 거짓이다. 단지 어떤 행위에 대한 문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곧은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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