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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사도행전 9장 도입부

  • gtbc  (gtbckim)
  • 2020-12-26 23:14:28
  • hit1435

거룩한 직분의 대명사 대제사장을 만나기 위해 찾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직책이 주는 이미지처럼 거룩하고 온유하며 신앙의 법도를 준수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닐까..

살기와 위협이 등등한 사람이 대제사장을 찾아간다면 도대체 무슨 일일까..

거룩해야 할 대제사장에게 감정이 극도로 격하게 상한 사람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대제사장을 찾아가는 사람의 감정이 그토록 살기가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

스데반의 죽음을 지켜 본 사울이 대제사장을 찾아가는 그 날이 그랬다.

온 집을 찾아다니면서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해 냈던 사울이다. 그들을 탄압하고 고통을 더해 더 이상 이 괴이한 사설이 유대땅 안에서 전파되어서는 안된다는 불타는 사명감으로 충만했던 사울이다. 그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정든 땅을 떠나야만 했던 고통을 안겨준 그 사나이가 바로 이 사울이었는데 그가 이번엔 도대체 왜 대제사장을 만나러 갔을까..

​

그의 그 살기와 위협은 대제사장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에 대한 것이었고, 만일 앞으로 그 도를 전하는 사람을 또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가 누구이든 모조리 잡아다 결박하여 예루살렘에 데려오고자 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박해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을 떠난 사람들 조차도 끝까지 쫓아가 잡아오겠다는 그의 그 살기와 위협은 스데반의 죽음과 함께 더욱 독이 올랐다. 스데반 집사를 죽일 때는 합법적인 행위가 아니어서 자신이 증인이 되는 절차를 통해 죽이는 자들의 행위가 무죄임을 입증해야 했으나, 이제 그들을 잡아 가두는 것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게 하려는 시도가 명백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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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런 분노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일까?

스데반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이런 무도하고 무지한 사람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불타는 정의감이었을까?

​

다마스커스로 향하는 그의 손에는 대제사장의 인장이 깊게 새겨진 공문이 들려있었다. 이제 그 앞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그가 어떤 자일지라도 즉각 포박하고 위해를 가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만일 자신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 지역의 모든 집을 뒤져서라도 찾아내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졌던 스데반과의 논쟁에서 단 한 마디도 이기지 못한 분노와 수치심이었던 것일까? 자존심? 스데반 사건 이전까지 그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위해를 가했다는 기록이 없었음에도 그의 이런 급작스러운 행동엔 분명히 무언가 원인이 있었을터이나 누구도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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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그의 머리속엔 한 시라도 빨리 다마스커스에 도착해서 더 이상 예루살렘에서처럼 그들이 탈출할 수 있는 여지를 두지 않겠다는 결심이 있었을 터였다. 다마스커스로 향하는 길목 정오의 타오르는 태양과 바람에 날리는 건조한 흙과 먼지는 그의 행보에 어떤 장애도 될 수 없었다. 이제는 스데반이라는 작자와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의 논쟁도 필요없고 변명을 들을 필요조차 없다. 보이는대로 잡아들여 가두기만 해도 된다는 공문이 손에 있다. 이단의 괴수들이 겪게 될 처절한 고통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겠노라는 결의에 가득찬 그의 발걸음은 아무리 달려도 빠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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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의 잰 발걸음이 다마스커스에 다가왔음을 알린다. 멀리 평온한 다마스커스의 윤곽이 드러나고 그 성을 바라보는 사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 입에서 나오는 중얼거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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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기다려라. 그놈 스데반이 간 길로 너희들을 보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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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의 미소를 날리며 길을 재촉하려는 순간 정오의 태양보다 강렬한 빛이 하늘로부터 쏟아지며 그의 주변을 둘러 싼다. 세상에서 겪어보지 못한 이 놀라운 상황에 깜짝 놀란 그는 땅에 엎드러졌고 무슨 일인가 묻기도 전에 소리가 들린다.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분명히 자신의 이름을 불렀으나 사울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나를 핍박???’ 사울이 묻는다.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미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이 빛과 음성 앞에 어찌할 바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크고 강한 두려움이다.

소리가 이어진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예수????’ 스데반이라는 자가 말하고 무도한 자들이 말하던... 그럴리가..

소리는 이어진다.

“너는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네게 행할 것을 이를 자가 있느니라”

‘내가 행할 일??? 이단자들을 잡아 들이는 것 말고.. 또.. 무엇이..’

​

만일 이 소리가 사울에게만 들렸다면, 사울은 아마도 자신이 잠시 정신이 없었거나 너무 열정을 불태우다가 착각증세를 일으킨 것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행9:7은 “같이 가던 사람들도 함께 소리를 들었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말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고 기록한다. 상황이 종료되고 사울이 일어났을 때, 그는 눈을 뜨고 있기는 했으나 강렬한 빛 때문일까? 이미 시력을 잃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함께 가던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가면서 그는 수도 없이 동행한 이들에게 물었을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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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도 분명히 들었나?”

“나만 홀로 착각한 것은 아니지?”

“혹, 누군가 선 것을 보았나? 아무도 없었다고? 소리만 들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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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것이 도대체 무슨 날벼락인지 곰곰 생각했을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을 중요하게 여겼을 사울에게 이 일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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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고민을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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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보이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일에 대해 그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음식이 넘어가지 않는다. 도대체 이 무슨 일인가? 성경은 그가 보지도 못하고 먹거나 마시지도 않은 삼일 동안에 그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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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기도하는 중이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행 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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