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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 분리되면 적이 되는 공동체

  • gtbc  (gtbckim)
  • 2020-11-10 21: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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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성이 그런 것일까?

남북이 분단되기 전 갈등은 정말 치열했다. 결국 그 갈등은 분단을 고착화 시키는데 일조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치열한 싸움에 나설 때 자신의 생각이 분명하고 지조가 분명한 것 같았는데, 북쪽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집단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생각이 돌변한다. 강제적 명령 때문이었을까? 반탁에서 갑자기 찬탁으로 돌아섰던 북의 태도가 놀라울 정도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데 이런 것이 정치적 수완일까? 국민성일까? 무지한 사람들의 사상을 조정하는 것은 그리 크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신앙공동체에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을까? 무지를 빌미로 한 이기적 판단 말이다.

신앙공동체에서도 분열과 다툼의 현장이 의외로 많다. 신앙공동체의 분열과 다툼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다툼과 분쟁이 신앙 안에서 하나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일부 교회에서 벌어지는 분쟁 중 이런 분열이 있음을 보았다.

1. 목사님파와 반대파

성도들이 극심한 분열 증상을 나타내는데 목사님파와 부목사님파(혹은 전도사님파).. 한 교회에서 따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본 신입교우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가족 이상으로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갑자기 교회에서 싸늘한 관계가 되어 서로에게 불편한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들어오는 성도를 서로 자기 예배장소로 인도하려고 한다. 이런 경험을 가진 교회가 생각보다 많다. 다시 하나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될 듯하다. 하나된다고 해도 앙금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테니 제대로 된 공동체로서의 활동이 쉽지 않을 것이다. 리더를 중심으로 한 분열이다. 이럴 때 리더는 그 자리에서 그 분열을 지켜보고 있다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이라 해야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물론 그런 성도들도 문제긴 하다.

2. 다른 교회로 떠난 성도

교회를 다니다가 이런 저런 불편한 이유로 인해 조용히 다른 교회로 옮긴 성도들이 있다. 직분이 없는 일반 성도들이야 옮기는 것이 좀더 심적 부담이 덜하기는 하겠지만 직분자들이 교회를 이동할 때는 그만큼 마음의 상처가 컸고 심적 부담감도 컸다고 보면 된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자신의 긴 세월 온 정성과 시간을 다 쏟아 섬기던 교회를 떠날 때는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다. 참고 참다가 더 상처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교회를 떠나면 뒤에 남는 그에 대한 소문이 좋을리 없다. 직분자가 떠난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듣는 풍문에 100% 신뢰를 보내며 교회를 떠난 사람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게 된다. 어떤 경우로든 다시 만날 일이 있으면 어색한 웃음으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아예 모르는 사람인 척 하는 이도 있다고 들었다. 놀라운 일이다. 떠나는 사람은 목회자와의 관계에서 불편했을 수도 있고 성도들 사이에서 불편한 상황이 전개되었을 수도 있으나 정든 공동체를 떠날 때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이렇게 떠나는 것이 배신자일까? 사탄일까?

신앙공동체는 정말 아름답고 귀하다. 그러나 왜 신앙공동체의 구성원이 분리되면 그 순간부터는 원수처럼 불편한 관계가 될까? 꼭 원수처럼 으르렁거리지 않는다고 해도 돌아서면 서로에 대한 평가가 고상하지 않다. 왜 그래야 할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면 모두 적이 되는 공동체가 신앙공동체였던가? 그럴 수 없다.

빌립보 교회 공동체에 나타난 모습이 그러했다. 하나되지 못한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바울은 마음이 심히 괴롭기만 했고, 결국 빌립보 교회가 분위기 좋을 때 자신을 돕는 자로 빌립보에서 파견한 에바브로디도를 다시 돌려보내며 사태를 수습하는 지경에 이른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며 디모데를 보내기를 원하지만 좀더 상황을 지켜본 뒤 보내겠다고 말한다. 바울에게도 한 사람이 소중한 때 빌립보 교회를 위해 섬기던 에바브로디도를 돌려 보내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이다. 4장에 언급된 순두게와 유오디아 그녀들은 모두 바울에게 소중하고 귀한 존재들이었으나 같은 마음을 품지 못한 상태가 되어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모습을 보면 신앙공동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모습을 가졌었던 것 같다.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하셨으나 몸인 공동체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왜? 자신이 머리가 되려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위에 있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섬기는 자가 아니라 존중받기를 원하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자신 보다 낫게 여기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신앙공동체를 빌미로 해서  자신이 머리 되기를 꿈꾸는 불량한 집단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빙자한 자신의 영광을 취하기를 원하는 집단이다.

오래 전부터 미국 대선이 끝나면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모범적 전통이었으나 한쪽이 선거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나서면 결국 국민은 분열과 분쟁의 비극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치적인 환경에서도 자신이 지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은 추하다.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고 진 것을 쿨하게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는 이기는 것보다 아름답다.

하물며 신앙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세상보다 더 신뢰할만 해야하지 않을까? 리더 한 사람의 불편함이 이해관계가 없는 성도들까지도 갈라서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말이야 쉽지!"

그렇다 말은 쉽다. 그러나 분열의 결과는 폐허.. 빌립보서는 각종 허영과 사치를 버릴 것을 말한다. 마음의 사치와 허영이다. 누군가로부터 존중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이미 낮아지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을 수 있다. 스스로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을 굴욕이라 느끼는 한 절대로 하나된 공동체를 이룰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종의 형체로 자신을 낮춘 것처럼 자신을 낮추라는 말씀은 그저 듣기 좋은 말씀으로 여기는 한 우리의 신앙공동체는 분열과 갈등을 멈추게 할 수 없고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추악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성경을 연구하는 이들끼리도 한 번 갈라서면 하나되지 못하는 부끄러움이 실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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