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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의 기록방식 이해
성경은 비록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한글로 기록되어 있으나 본래의 기록과 몇 가지 다른 부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언어적 차이에서 오는 문법과 문장구성방식의 차이와 시대와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성경에 대한 신학적 관점을 학습한 이들은 성경의 문학적 개념에 대해서는 거의 접근 가능성이 차단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보면 딱맞다. 신학이라는 훈련과정을 통해서 철저하게 선이해의 벽을 쌓으므로 특정한 단어나 용어들 혹은 어떤 내용들에서 모든 생각이 고정된 경향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치 준비된 레파토리를 쏟아내듯 줄줄줄..
이것은 신학이 문제가 아니라 성경의 문학적 구성과 체계에 대한 이해없이 성경을 해석하고 규정해 놓은 신학으로 먼저 성경을 이해해버린 탓이다. 따라서 신학을 전공한 목회자들에게 성경의 문학적 이해에 대한 설명을 할 때는 마치 벽에다 대고 말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물론 그런 본인은 무엇이 자신의 문제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어쩌랴 이것이 넘지못할 산이 되고 말았으니.. 그렇다고 문학적 이해는 접어두고 문법적 구성에 대한 이해를 갖도록 설명해도 어려움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보니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다. 물론 이것은 수사학적 관점을 언급하기도 전 단계를 의미한다. 그러면 사이비 집단은 좀 나을까? 말해 무엇하겠는가만 정상적인 신학을 졸업해도 되지 않는 일을 말도 안되는 주장으로 일관하는 사이비 집단이 해낼 것이라 믿는다면.. 때로 이런 영역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성도들이 더 빨리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언어[문장의 구성을 포함한]적 방식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는 실상 책을 읽으면서도 저자의 생각을 읽어내기는 쉽지 않아 책의 의도와 다른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제일 편하게 접근하는 방법이 신학적 해석이라는 방식을 의지한다. 고민할 이유도 없이 외운대로 말하면 된다. 결국 본문 이해의 반복되는 작은 오해가 큰 오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소지가 생기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 목회자가 성경을 해석하는 방식이 설교적 접근방식인데 이것은 문맥이라거나 문장의 구성방식에 대한 이해와는 전혀 다른 접근이라 할 수 있고 이것은 본문의 의지가 아닌 설교자의 의지에 맞추어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설교는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본문을 가지고 다루게 되므로 문맥의 흐름이나 구성과 동떨어진 전개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한 영역이다. 그렇다고 설교 이외에 성경을 배우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성도들이 성경의 내용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줄어든다.
많은 신학자들이 말하는 성경은 마치 박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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