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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거짓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진실함이 없을 때 이미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위선이며 가증함이며 거짓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삶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이의 삶에 거짓됨과 위선이 있을 수 없습니다. 거짓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것은 제물로 드려져서는 안되는 것이며 제사의 행위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가페인 사랑은 조건없는 자기 희생을 담보로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모범은 진리 사수를 위한 투쟁과 전투가 아니라 진실함으로 보여주는 사랑이었음을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어떤 교회들은 왜 전투에 나섰을까요? 왜 권력과의 전쟁에 나섰을까요? 거룩한 진리를 사수하기 위함이라고 말하나요? 사랑엔 거짓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모범이 아닌 거짓된 선동과 투쟁은 결국 스스로의 힘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진실되지 못한 사심이 담겨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성도는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여기의 '미워하다'에 사용된 아포스튀에오는 '부인'하거나 '거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악poneron, evil과 싸워서 물리치라는 의미보다는 가까이 하지 않으며 피한다는 개념이 더 강한 어휘라고 보면 됩니다. 언젠가부터 우리 교회가 투쟁의 역사에 뛰어들어 정치를 바꾸고 변화시켜야 하는 것처럼 인식되어 가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교회가 거대한 힘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의도가 그런 것이었을까요?
반면에 선에 대하여는 적극적인 의미의 소속, 즉 선에 연합할 것을 권합니다. 피하는 것과 적극적으로 연합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축구와 같은 운동에서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을 하기는 합니다. 신앙은 야고보서 4:7에서 마귀를 향해서는 대적(안디스테미)하라고 하지만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악에 대하여는 가까이 하지 말 것이라권면합니다. 삶에서 부딪는 모든 사안에 대해 성경은 비교적 세밀하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주의를 기울이고 살피면 우리가 어떤 상황들에 대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신령한 영적 예배를 사모하는 이들은 이렇게 말씀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형제에 대하여는 우애를 가져야 할 것을 권하되 사랑으로 할 것을 말합니다. 형제우애는 사랑이 아니면 우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서로에 대하여는 존경의 마음을 먼저 가지라고 합니다. 존경은 나보다 비교우위의 대상에게만 갖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모든 사람에게 존경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를 섬기는 일에 있어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할 것과 열심을 품어야 할 것을 권면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주를 섬기는 일에 부지런하며 열심을 가진 자세가 될까요? 기록된 말씀에 집중하고 그것을 삶으로 나타나도록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바로 앞에 언급한 것처럼 선과 악에 대한 자세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형제에게 대한 자세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또 12절부터 이어지는 여러 환경을 만났을 때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인지 하나 하나 살피며 확인하고 자신에게 적용시켜 가는 것도 바로 부지런히 열정을 다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환난이 있을 때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기도하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며, 어려움 중에 있는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는 것과 손 대접하기를 힘쓰는 것이 또한 사랑으로 해야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가장 어려운 일이 있다면 우리를 직접적으로 박해하는 이들에 대한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를 박해하는 이들을 저주하고 대적하는 일은 쉬울 수 있지만 그들을 축복하고 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시기에 교회는 박해를 받아왔고 심지어 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사도바울의 시대 역시 교회는 존중의 대상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수도 없는 박해의 현장에서 수없이 죽을뻔한 고비를 넘긴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좋아서는 아닐 것입니다. 마땅히 성도가 가져야 할 이런 자세를 통해서 더욱 복음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것에 대한 기대감과 소망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많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누군가를 저주하고 대적하여 싸우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들을 사랑하고 품고 위로하며 그들을 축복하는 성도입니다. 최근 코로나 시대에 정권을 대항해 싸우는 그리스도인들이 마치 정의의 행위를 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성경은 결코 그것을 옳다고 인정한 적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에서 드려지는 산제사가 있고 신령한 예배가 함께하는 오후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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