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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마지막장인 16장 전체가 문안으로 마무리 하는 것을 보면 15장이 실질적인 마무리 멘트가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복음에 관한 또 성도가 갖추어야 할 자세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다룬 책의 마지막장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질까?
처음 시작은 "(믿음이) 강한 우리가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마땅히 담당할 것"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서신을 받는 이들이 로마교회라는 것을 생각하면 "믿음이 강한 우리"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믿음이 강하다는 것과 믿음이 약하다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본문내용만으로 확인한다면 믿음이 강한 사람은 "타인의 약점을 담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관점에서 본다면 누군가가 약점을 보인다면 그는 바울이 말하는 약한자가 되는 것이다. 강한 자와 약한 자의 기준이 모호할 수밖에 없으나 모두가 누군가 앞에서 강한 자가 될 수도 있고 약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서로가 약점을 지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이 다른 사람의 약점을 보게 되었다면 어쩌면 타인의 약점을 발견한 그는 약점을 드러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강한 자가 되는 것이며, 이때 그는 자신이 본 타인의 약점으로 인해 회심의 미소를 짓는 자가 아니라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리에 서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이 자조적 의미가 섞인 말로 사용하는 말 중에 "타인의 고통은 나의 즐거움"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믿음이 강한 자가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도리어 믿음을 가진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이웃은 나보다 강한 자일수도 있고 나보다 약한 자일 수 있으나 그가 누구일지라도 믿음을 가진 우리 각 사람은 이웃을 기쁘게 하는 일을 위해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선과 덕이라는 것이 신앙적 기준으로 무엇인가를 따지는 것보다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선과 덕이라 여겨야 할 것이다. 믿는 이들을 바라보는 모든 이웃들이 기쁘게 받을만한 것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성도가 이웃을 기쁘게 하여야 할 이유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바울은 시편 69:9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극심한 곤경에 처한 다윗의 고백이다. 주를 따르고 사랑하는 자들의 열심이 도리어 자신을 극심한 곤경에 처하게 하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신 것 역시 하나님의 백성임을 표방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무지한 백성들의 행동이었으나 주는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이땅에 오심이 아닌 것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의지와 뜻을 위해 자신이 당하는 고난과 곤경을 기꺼이 감내하시는 주를 비교대상으로 올린 것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성경에 기록된 이런 기록들은 무엇이든 우리에게 교훈을 남기기 위한 것이므로 우리가 이런 기록들을 통해 위로를 받을 것이며 인내해야 할 것임을 말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소망을 갖게 하려는 것인데 그 소망은 오직 주의 뜻이 구현되기를 바라는 소망인 것이다.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 역시 자신이 드러나고 알려지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의지와 뜻이 드러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달려가는 것임을 알게 한다. 그가 당한 수많은 죽음의 위기와 동족의 위협과 고통은 바로 주의 뜻이 실현되기를 소망하며 달려온 것이다. 오늘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는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 스스로의 자랑과 기쁨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믿음이 강한 자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 우리가 마땅히 약한 자의 약점을 짊어지고 가야 할 이유는 명백하다.
주의 나라가 이 땅에 모든 백성들에게 구현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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